“명품은 되고 빵집은 안 된다?”…성수동 ‘입점 규제’의 역설 [임유정의 오프 더 메뉴]
입력 2026.10.20 06:48
수정 2026.10.20 06:48
성동구, 12월부터 성수동 진입 제한 확대
패션·뷰티 브랜드 제외…외식업 ‘이중 규제’ 논란
임대료 억제 효과 미검증…골목상권 보호 실효성 의문
성수동 하츠베이커리에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데일리안
서울 ‘성수동’은 명품 브랜드의 화려한 팝업스토어부터 개성 넘치는 신진 브랜드의 쇼룸, 골목마다 늘어선 감각적인 카페까지 한데 모인 대표적인 ‘핫플레이스’다. 젊은 층의 데이트 명소이자 외국인 관광객들의 필수 방문지로 떠오르며 최신 소비 트렌드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올해 연말을 기점으로 성수동에서 외식 프랜차이즈의 신규 입점 문턱이 한층 높아진다. 골목상권을 보호하기 위한 규제 확대지만 기업의 영업 자유를 제한하면서 특정 업종의 진입을 제한하는 방식이 실질적인 상권 보호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린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서울 성동구는 오는 12월 1일부터 성수동 방송대길과 연무장길 일부 지역에 대기업·프랜차이즈 신규 입점 제한을 적용한다. 기존 318필지(筆地)에 232필지가 추가되면서 일반음식점·휴게음식점·제과점 등 3개 업종에 한해 신규 입점에 제약을 받는다.
이번 조치는 성동구가 지난 2017년 8월부터 서울숲길 일대에서 시행해 온 대기업·프랜차이즈 신규 입점 제한을 확대하는 것이다. 성동구는 지역상권 보호 조례와 서울시가 고시한 성수준공업지역 지구단위계획을 근거로 규제 대상 지역을 넓혔다.
기존 서울숲길 일대에서는 음식점·카페·제과점뿐 아니라 화장품판매업도 입점 제한 대상에 포함됐지만 새롭게 추가되는 구역에서는 화장품판매업이 제외됐다. 다만 법정 규모 이하의 영세 프랜차이즈나 상호협력 주민협의체의 동의를 얻은 업체는 예외적으로 입점할 수 있도록 했다.
규제 확대의 배경에는 성수동의 급격한 상권 변화가 있다. 과거 제조업과 소규모 공방을 중심으로 형성됐던 성수동은 최근 팝업스토어와 유명 브랜드 매장이 밀집한 상권으로 성장했다. 유동인구가 늘고 상업적 가치가 높아지면서 연무장길을 중심으로 임대료 상승으로 이어졌다.
특히 이 과정에서 기존 상인들이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 우려가 확대됐다. 대형 브랜드 중심으로 상권이 재편됨에따라 성동구는 지역 고유의 상권을 보호하고 이러한 현상을 완화하기 위해 규제 범위를 넓히게 됐다.
성동구청 소통담당 관계자는 “10년간 기존 입점 제한 정책을 시행하면서 프랜차이즈 매장은 9곳에 그치고 소규모의 개성 있는 가게들이 자리 잡게 됐다”며 “이번 규제 확대 조치 역시 대기업의 진출로 인한 상권 변화를 완화하고 기존 상권의 특색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기업 및 프랜차이즈 입점제한 구역도ⓒ성동구청
◇ 성수동 임대료 5년 새 40%↑…골목상권 보호 필요성 커져
지역 소상공인과 상인단체 입장에서는 이번 규제가 골목상권 보호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바라보고 있다. 대형 브랜드의 진입이 늘어나면 상권이 획일화되고 기존 상인들의 입지가 좁아질 수 있는 만큼 일정 수준의 진입 제한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실제로 성수동의 임대료 상승세는 가파르다. 서울시 상권분석서비스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성수1가2동의 1층 점포 월환산임대료는 3.3㎡(약 1평)당 19만9595원으로 2021년 같은 기간보다 40.6% 상승했다. 골목상권을 보호할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윤지해 부동산 평론가는 “성수동은 젊은층을 중심으로 유동인구가 지속적으로 유입되는 지역인데다, 자금력 있는 대기업들이 들어와 일부 남아 있는 상업시설을 주 단위 혹은 월 단위로 임차하다 보니 임대료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형태가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서울 성동구 무신사 스퀘어 성수4에서 열린 KBO 팬 페스타(FAN FESTA) 팝업스토어에서 방문객들이 구단별 인기 상품을 둘러보고 있다.ⓒ뉴시스
◇ 외식업만 규제?…업종 간 형평성 논란도
반면 규제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뒤따른다. 성수동의 임대료 상승은 외식 프랜차이즈뿐 아니라 패션·뷰티 브랜드와 팝업스토어 등 다양한 업종의 진출과 맞물려 있다. 외식업종의 신규 입점만 제한하는 방식으로 임대료 상승과 기존 상인들의 이탈을 막을 수 있느냐는 지적이다.
실제로 데일리안이 성동구에 규제 효과를 입증할 객관적인 자료를 요청했으나 별도로 조사하거나 분석한 자료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조치가 임대료 상승을 억제하거나 기존 상인들의 이탈을 막는 데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검증되지 않은 셈이다.
규제 대상 업종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성수동에는 대형 패션·뷰티 브랜드가 잇따라 들어서고 있지만 신규 입점 제한은 음식점과 카페·제과점 등 외식업종에 집중돼 있다. 상권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대형 자본의 진출을 특정 업종에 한해 제한하는 것이 타당하냐는 지적이다.
특히 제과점의 경우 ‘이중 규제’ 논란도 예측된다.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 등 대형 프랜차이즈 제과점은 동반성장위원회의 상생협약에 따라 연간 신규 출점이 전년도 말 점포 수의 5% 이내로 제한되며 수도권에서는 기존 중소 제과점과 400m 이상 거리를 두도록 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프랜차이즈 가맹점주 역시 상당수가 개인 자본을 투자해 매장을 운영하는 소상공인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대기업 브랜드라는 이유로 신규 출점을 제한할 경우 골목상권을 보호한다는 취지와 달리 예비 창업자의 영업 기회까지 위축시킬 수 있어서다.
성동구청 관계자는 “외식 프랜차이즈는 여러 매장이 들어서는 경우가 많은 반면 패션·뷰티 브랜드는 개별 브랜드 매장이나 플래그십 스토어 형태로 입점하는 경우가 많다”며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운영하는 골목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외식업종을 중심으로 입점을 제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카페거리 한 식당에서 시민들이 오픈을 기다리고 있다.ⓒ뉴시스
◇ 겹겹이 쌓이는 입점 규제…실효성은 여전히 물음표
서울시는 입점 제한 구역을 점차 넓혀가고 있다. 서울시는 2016년 5월 종로구 서촌 일대에 프랜차이즈 입점을 제한하는 지구단위계획을 마련한 데 이어 같은 해 9월 혜화동 일대에도 유사한 제한을 추진했다. 이듬해인 2017년에는 성동구에 신규 입점 제한을 도입했다.
골목상권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는 국가 차원에서도 마련됐다. 2021년 제정돼 이듬해 시행된 지역상권법은 지역상생구역에서 일정 기준 이상의 가맹본부가 운영하는 직영점 등의 영업을 제한할 수 있도록 했다. 구역의 지정 목적을 해칠 우려가 있는 시설의 영업에 대해서도 지자체 조례를 통해 규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두고 프랜차이즈업계에서는 가뜩이나 침체된 업황 속에 각종 출점 규제까지 중첩되면서 사업 확장에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입점 제한 규제 확대가 확대되는 12월에는 가맹점사업자단체 등록제와 가맹본부의 협의 의무도 시행될 예정이다.
전문가들 역시 규제의 취지와 별개로 정책의 실효성과 시장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정 업종의 성장을 위축시킬 수 있는 데다 신규 입점을 제한하는 것만으로 기존 상인들의 영업 기반까지 보호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윤지해 부동산 평론가는 “주택시장 규제처럼 단기적으로 시장을 억제하는 효과는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인 효과는 불확실하다”며 주택은 필수재라는 특성상 정부의 직접적인 시장 개입이 일부 필요할 수 있으나 상업용 부동산은 소비자의 선택과 민간의 자율적인 활동에 따라 성장하거나 쇠퇴하는 특성이 강해 통제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권의 자연스러운 변화 자체를 막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지자체가 직접적인 입점 제한을 확대하기보다 기존 소상공인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당 업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방식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일침했다.
ⓒ데일리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