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은 늘리고 밀도는 지키고…창작뮤지컬의 ‘체급 올리기’
입력 2026.10.15 06:23
수정 2026.10.15 06:23
소극장 검증 마친 창작뮤지컬, 정부 ‘스케일업’ 지원 딛고 대형화
단순 확장 넘어선 전면 재설계 필수…“체급 커져도 작품 밀도 유지해야”
소극장 무대에서 흥행성을 검증받은 창작뮤지컬들이 잇달아 몸집을 키우고 있다. 뮤지컬 ‘렛미플라이’가 세 번째 시즌을 맞아 더 큰 규모의 극장으로 무대를 옮긴 것이 대표적이다. 이에 발맞춰 정부도 올해부터 중소극장 작품을 중·대극장 규모로 키우는 ‘스케일업’ 사업에 본격적으로 예산을 투입하면서 창작뮤지컬의 체급 올리기에 속도가 붙고 있다.
이런 흐름의 배경에는 대극장 창작뮤지컬의 부재가 있다. 올해 무대에 오른 대극장 창작 뮤지컬은 ‘몽유도원’과 ‘유미의 세포들’ 2편에 그쳤고, 올해 상반기 뮤지컬 티켓판매액 상위 10편도 대부분 라이선스 작품이었고, 창작뮤지컬은 7·9·10위의 ‘베토벤’ ‘한복 입은 남자’ ‘스윙 데이즈_암호명 A’ 세 편뿐이었다. 막대한 제작비와 흥행 불확실성 탓에 처음부터 대극장 신작을 만들기는 어렵다. 이 때문에 관객 반응을 이미 확인한 작품을 키우는 방식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렛미플라이' 프레스콜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정부 지원도 이 방향에 맞춰졌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해 31억원이던 뮤지컬 지원 예산을 올해 244억원으로 늘렸고, 이 가운데 180억원을 창작뮤지컬에 배정했다. 예술경영지원센터(예경)는 올해 3월 ‘대형 뮤지컬 지원 공모’를 신설했다. 이 사업은 낭독공연과 비섬공연 두 갈래로 나뉘는데, 그중 낭독공연은 신작 개발과 함께 기존·신규 중소형 뮤지컬의 대형화를 지원한다. 예경은 8월 낭독공연 2차 공모를 내 지원작을 늘렸고, 내년에도 사업을 이어갈 계획이다.
실제 낭독공연 선정작에는 중소극장 작품이 여럿 포함됐다. 중소극장에서 공연했던 ‘그레이하우스’와 ‘이솝 이야기’, 아동가족극 ‘고양이 탐정 조르바: 시즌2’와 ‘하이팝’이 스케일업 작업을 하고 있다. 5인극으로 기획된 웹툰 원작 뮤지컬 ‘살인자ㅇ난감’도 규모를 키우는 중이다. ‘오디세아: 키르케의 섬’은 선정작 가운데 가장 먼저 지난 8월 유료 리딩공연을 마쳤다.
앞서 길을 낸 작품도 있다. ‘마리 퀴리’는 2017년 창작뮤지컬 개발 프로그램 ‘글로컬 뮤지컬 라이브’에 선정된 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과 ‘올해의 레퍼토리’를 거쳤다. 300여석 규모의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초연한 이 작품은 지난해 1000석 규모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 올랐고, 영국 웨스트엔드에도 진출했다. 2016년 300석 규모 대학로 소극장에서 초연한 ‘어쩌면 해피엔딩’은 브로드웨이에서 등장인물을 늘려 약 1000석 규모 극장에 올랐고, 지난해 토니상 6관왕에 올랐다. 한국에서도 지난해 10주년 기념 공연을 550석 규모의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을 올렸다.
지난해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공연한 뮤지컬 '마리 퀴리' ⓒ라이브
‘렛미플라이’는 캐스팅으로 확장에 대비했다. 개발 단계부터 모든 시즌에 참여한 안지환·나하나, 초연부터 함께한 오의식·이형훈·김지현·홍지희를 유지하면서 안재욱, 이희준, 배해선을 새로 들였다. 이 작품은 미국 쇼케이스에 이어 오는 11월 런던 쇼케이스를 여는데, 두 행사 모두 예경 지원금을 받았다. 홍윤경 프로듀서는 동서양 정서 차이를 반영한 각색을 진행 중이며, 2029년 초까지 런던 트라이아웃 공연을 올리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다만 모든 작품이 커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홍련’ ‘빨래’ 등은 400석 이하 극장에서 공연하면서도 올해 상반기 1000석 이하 공연 가운데 판매 상위권에 올랐다. 소극장 규모에 맞춰 설계된 작품이 그 규모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는 뜻이다.
한 공연 관계자는 “대극장으로의 확장은 단순히 인물과 장면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서사 구조와 음악, 앙상블, 무대미술 전체를 다시 설계해야 하는 작업”이라며 “모든 작품을 대극장으로 보내기보다, 각 작품이 자신의 규모에 맞는 경로를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결국 관건은 객석이 늘어도 작품의 밀도를 지킬 수 있느냐에 달렸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