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견제 개혁, 권력자부터 빼겠다는 역설 [기자수첩-사회]
입력 2026.10.16 07:00
수정 2026.10.16 07:00
민주당 일부, 대통령·국회의원 제외하고 사법·수사기관 비위 수사 집중 구상
공수처 수사 부진이 최고 권력자에 대한 독립 수사권 축소 근거 되나
장관 지휘 받는 중수청…수사 주체 바뀌면 견제 구조도 달라져
법 만드는 의원들이 수사 대상서 빠지는 개편…입법 공정성도 쟁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데일리안 DB
권력자를 견제할 수사기관을 개편하면서 정작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수사 대상에서 빼겠다고 한다. 김기표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 일부 의원이 논의 중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개편 구상이다. 수사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말만으로 최고 권력자에 대한 독립 수사 통로를 줄이는 일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지난 7일 여당 의원들이 주최한 토론회에서는 대통령·국회의원 등 정치·행정 분야 고위공직자 수사를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경찰에 맡기고, 공수처는 판·검사와 경찰 등 사법·수사기관 종사자의 비위 수사에 집중하는 방안이 논의됐다. 이달 1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공수처 국정감사에서도 이 구상을 둘러싼 공방이 이어졌다.
공수처의 수사 지연과 부실 논란은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나 성과 부진의 원인을 따지는 일과 대통령·국회의원을 수사 대상에서 제외하는 일은 별개다. 인력 부족 때문이라면 인력과 사건 배분을, 수사 역량의 문제라면 지휘와 인사 체계를 먼저 살펴야 한다. 수사 실적을 높여야 한다는 과제가 대통령과 의원을 수사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바뀌어서는 안 된다.
수사기관 사이의 차이는 법률에 명시돼 있다. 공수처법 제3조는 독립적인 직무 수행을 보장하고 대통령과 대통령비서실 공무원의 업무보고 요구나 지시 등 직무 관여를 금지한다. 반면 중수청법 제6조는 행정안전부 장관이 중수청장과 소속 직원을 일반적으로 지휘·감독하고, 구체적인 사건에 대해서는 중수청장을 지휘·감독하도록 규정한다. 두 기관의 수사권을 단순히 업무 중복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데일리안DB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의 지휘 구조 안에 있는 기관에 최고 권력자 수사를 맡기면서, 그 구조 밖의 독립 수사 통로는 줄이겠다는 것이다. 다른 기관에 수사권이 남는다는 설명만으로 독립성에 대한 우려가 해소되지는 않는다. 권력 수사에서는 수사할 수 있느냐만큼 누가, 어떤 지휘 구조에서 수사하느냐가 중요하다.
김기표 의원은 13일 국감에서 중수청이 수사하고 공수처가 중수청의 무리한 수사나 정권의 압력을 견제하는 구상을 설명했다. 오동운 공수처장은 "수사를 직접 할 수 없으면서 제대로 된 감시가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공수처와 중수청의 고위공직자범죄 수사권이 병존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중수청 수사관의 위법행위를 수사하는 권한과 대통령·국회의원의 범죄 혐의를 직접 수사하는 권한은 다르다. 수사기관을 감시한다고 해서 그 기관이 맡은 권력자 사건을 직접 수사할 권한까지 자동으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중수청의 수사가 미진할 때 공수처의 감시만으로 그 공백을 어떻게 메울 수 있는지부터 따져야 한다.
개편을 추진하는 국회의원들의 위치도 문제다. 의원은 수사기관의 권한을 정하는 입법자인 동시에, 이 구상대로라면 공수처의 수사 대상에서 빠질 당사자다. 다른 기관의 수사를 받을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에게 적용되는 독립 수사 통로를 줄이는 입법의 공정성이 확보되지는 않는다. 대상 조정을 주장하는 의원들에게 더 엄격한 설명이 요구되는 이유다.
사법·수사기관 종사자의 비위를 더 촘촘히 감시할 필요가 있다면 그에 맞는 권한과 조직을 논의하면 된다. 여기에 대통령·국회의원을 제외하는 조치까지 묶어야 할 필연성은 없다. 개편을 추진하는 민주당 의원들은 두 조치를 한꺼번에 추진해야 하는 근거와, 줄어드는 권력 견제 기능을 대체할 장치부터 제시해야 한다.
권력 견제 제도를 고치는 기준은 집권 세력의 편의가 될 수 없다. 어느 정당이 대통령과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하더라도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개혁을 말하는 의원들이 자신과 대통령을 독립 수사 대상에서 빼는 데 앞장선다면, 국민은 최고 권력자를 견제할 수단 하나를 잃는다. 권력자가 자신을 감시할 통로부터 줄이는 개편을 권력 견제 개혁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