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수청 보완수사, 여성폭력 피해자 구제역량 의문…전문성·인력·예산 모두 부족
입력 2026.10.14 03:52
수정 2026.10.14 03:52
검사 직접 수사 대신 중수청에 재수사 요구…실효성 의문
사건 분류·처리 과정 혼선 우려…정부 지원책도 한계 지적
서울 중구 중대범죄수사청.ⓒ데일리안DB
검찰청 폐지와 수사·기소 분리로 형사사법체계가 개편되면서 여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보완수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공소청 검사가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에 성폭력 등 일부 범죄의 보완수사나 재수사를 요구할 수 있도록 제도가 마련됐지만 신설 수사기관의 전문성과 인력이 충분한지를 놓고 의문이 나온다.
공소청 검사는 성폭력과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스토킹, 아동학대, 장애인학대, 노인학대, 가정폭력 등 7개 범죄 유형에 대해 중수청에 보완수사 또는 재수사를 요구할 수 있다. 중수청이 본래 수사하도록 설계된 7대 중대범죄와는 별개로 검사의 직접 보완수사권 폐지에 따른 피해자 보호 공백을 줄이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여성단체들은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 논의 과정에서 피해자 권리 보호 장치가 약화될 수 있다고 우려해 왔다. 경찰의 초기 수사가 부실하거나 사건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았을 때 다른 기관이 이를 다시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다.
"수사 요청과 직접 수사는 달라"…견제 기능 약화 지적
여성학자이기도 한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예전에는 경찰이 사건을 들여다본 뒤 보완수사권이 있는 검사가 다시 한번 사건을 검토할 수 있는 경로가 있었다"며 "이를 통해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거나 추가 증거를 확보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허민숙 조사관은 "보완수사 요구권은 수사를 요청하는 권한일 뿐 직접 수사할 수 있는 권한은 아니다"라며 "수사를 요청하는 것과 직접 수사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젠더폭력 사건은 목격자가 없거나 피해자 진술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 수사기관의 전문적인 판단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허민숙 조사관은 "젠더폭력은 사회적 통념의 영향을 많이 받는 범죄"라며 "기존에 가지고 있던 편견이나 오해, 불확실한 정보에 근거해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중수청이 보완수사를 맡을 사건의 분류 기준도 과제로 꼽았다. 여러 범죄가 복합적으로 얽힌 사건은 관할과 처리 절차를 둘러싼 혼선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허민숙 조사관은 "이런 사건을 어떻게 구분하고 처리할 것인지가 문제"라며 "관련 지침까지 충분히 보완하지 않는다면 이번 조치가 단순히 우려를 달래기 위한 수준에 그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 중구 중대범죄수사청.ⓒ데일리안DB
"내 사건 어디 있나"…복잡해진 절차에 피해자 부담
서혜진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는 중수청이 본래 중대범죄 수사를 중심으로 설계된 기관인 만큼 여성폭력 사건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했다. 수사관 충원과 전산체계 정비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보완수사 대상까지 확대되면 수사 역량이 분산될 수 있다는 우려다.
피해자가 사건 처리 상황을 파악하기 어려워질 가능성도 지적했다. 서혜진 이사는 "피해자들 입장에서도 굉장히 헷갈릴 수 있다"며 "사건이 어디로 가 있는지도 계속 따라가야 하고 변호사들도 사건을 파악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의 초기 대응 역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혜진 이사는 "초기 대응에서 무너지면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며 "경찰이 초동 수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나중에 보완수사를 요구하더라도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피해자 보호 공백을 줄이기 위한 지원책을 마련했다. 성평등가족부는 지난 8일 전국 625개 피해자 지원기관을 통해 상담과 의료 지원, 수사·재판 동행 등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형사사건 수사·1심 단계의 법률지원 한도를 기존 150만원에서 250만원으로 높이는 방안도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된다.
또 '젠더폭력 피해자 권리체크 10'을 배포하고 민관 태스크포스(TF)를 통해 사건 접수부터 수사와 기소·재판에 이르는 과정에서 피해자 권리 보장 실태를 점검하기로 했다.
허민숙 조사관은 성평등가족부의 지원책에 대해 "현재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본다"면서도 "피해자에게 법률 지원과 심리 상담을 제공하고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결국 수사가 얼마나 제대로 이뤄지는지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혜진 이사는 지원 예산과 변호사 처우 개선을 주문했다. 그는 "연말이면 예산이 부족해 변호사들이 우선 사건을 맡고 나중에 비용을 지급받는 경우도 있다"며 "피해자 지원에 참여하는 변호사들의 보수도 현실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경찰도 달라져야"…전담 수사체계 구축 주문
양이현경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는 경찰의 수사 역량 강화와 정부 차원의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양이현경 대표는 "그동안 검찰과 경찰 모두 여성폭력 사건 처리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이번 제도 변화를 계기로 경찰이 여성폭력과 젠더폭력 사건을 어떻게 수사하고 피해자를 지원할 것인지 새로운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경찰의 업무 부담이 상당한 상황에서 범죄 유형별 대응 계획을 다시 세워야 한다"며 "여성폭력처럼 심각한 문제에는 전문 수사 인력을 별도로 두는 등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양이현경 대표는 "성평등가족부는 성평등 정책과 젠더 정책의 컨트롤타워인 만큼 수사기관과 유기적으로 연계하고 협력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여성단체들이 매년 요구해 온 피해자 지원 예산 확대도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