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 달러 벌어도 미회수…‘주당 100만 달러’ 장벽 부딪힌 K뮤지컬 [메이드 바이 코리아②]
입력 2026.10.14 06:58
수정 2026.10.14 06:58
‘위대한 개츠비’ 누적 매출 1898억 원 돌파에도 손익분기점은 2028년 전망
인건비 등 물가 급등으로 브로드웨이 신작 평균 제작비·운영비 2배 폭등
거대 자본 감당할 대형사 외엔 진입 어려워… 개막 이후 장기전 딜레마
9월 마지막 주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가 올린 매출은 84만1025달러(한화 약 11억 2600만원)였다. 브로드웨이 공연에는 극장 대관료와 출연료 등으로 매주 80만~100만 달러(한화 약 10억 7000만~13억 4000만원)가 드는 만큼, 이 주에는 공연을 하고도 손에 남은 돈이 거의 없었던 셈이다.
브로드웨이 공연 성적은 주 단위로 매겨진다. 공연은 보통 일주일에 8회 열리고, 미국 브로드웨이 리그가 매주 작품별 매출과 관객 수, 객석 점유율을 집계해 공개한다. 공연 기간도 미리 정하지 않는다. 흥행하는 동안 계속 공연하는 ‘오픈런’ 방식이다. 대신 극장과 맺는 계약에는 주간 매출이 정해진 금액 아래로 몇 주 연속 떨어지면 극장주가 공연을 내릴 수 있는 조항이 들어간다. 매주 운영비 이상을 벌어야 이익이 나고, 일정 수준 이상의 매출을 유지해야 극장에 간판을 걸어둘 수 있다. 업계에서 주간 매출 100만 달러를 흥행의 기준으로 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위대한 개츠비' 브로드웨이 공연 매출 ⓒ플레이빌
한국 제작사 오디컴퍼니가 단독 리드 프로듀서를 맡은 ‘위대한 개츠비’는 2024년 4월 개막 이후 9월 27일까지 누적 매출 1억 4176만 달러(한화 약 1898억원), 누적 관객 136만명을 기록했다. 그러나 개막 전 들인 제작비 2500만 달러(한화 약 335억원)는 아직 다 돌려받지 못했다. 제작비는 절반가량을 오디컴퍼니가 대고, 나머지는 인터파크·SBS·위지윅스튜디오 등 국내외 투자자가 채웠다. 개막 직후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는 회수 기간을 1년 안팎으로 내다봤지만, 현재 제작사 측은 공연이 이어진다는 전제로 손익분기 시점을 2028년으로 보고 있다.
‘위대한 개츠비’의 최근 주간 매출은 운영비 선을 오르내린다. 8월 마지막 주 83만 달러였던 주간 매출은 할인 행사인 ‘브로드웨이 위크’가 끝난 9월 20일 주간 101만 달러로 올랐다가, 다음 주 다시 84만 달러로 내려왔다. 객석 점유율도 91.68%에서 78.38%로 낮아졌다.
신 대표는 “인플레이션과 현지 인건비 상승으로 브로드웨이 신작의 평균 제작비와 주간 운영비가 과거 대비 2배 가까이 늘었다”며 “역대급 흥행 매출을 기록하더라도 순수익을 통한 전액 회수까지는 산업 전반적으로 과거보다 훨씬 긴 호흡이 필요해졌다”고 설명했다.
이는 비단 ‘위대한 개츠비’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현지 업계 분석에 따르면 신작 뮤지컬의 평균 제작비는 약 2000만 달러로 10년 전의 두 배 수준에 달한다. 지난해 말 기준 최근 5년간 2000만 달러 이상이 투입된 뮤지컬 중 제작비 전액 회수를 선언한 작품은 마이클 잭슨의 삶을 다룬 ‘MJ’ 한 편뿐이었다. 미국 시리우스XM의 브로드웨이 채널 책임자 줄리 제임스는 지난 7월 한 방송 인터뷰에서 “주간 운영비가 100만 달러에 육박하는 상황에서는 객석의 94%를 채워 100만 달러를 벌어도 겨우 본전”이라고 말했다.
ⓒ오디컴퍼니
그럼에도 현지에서 ‘1000회 공연 돌파’가 갖는 산업적 상징성은 크다. 오디컴퍼니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브로드웨이에서 개막한 신작 뮤지컬 중 1000회를 넘긴 작품은 ‘물랑루즈!’ ‘하데스타운’ 등 9편에 불과하다. 브로드웨이 리그 집계로 2017-18시즌부터 지난 시즌까지 9시즌 동안 개막한 신작 뮤지컬만 78편이다. 코로나19로 극장이 문을 닫았던 2020-21시즌을 빼면 한 시즌에 5~16편씩 새 뮤지컬이 막을 올렸다.
신 대표는 “1000회 돌파는 이 작품이 브로드웨이 주요 레퍼토리로서 확실한 지속 가능성을 증명했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오디컴퍼니는 투어 공연으로 활로를 넓히고 있다. 지난해 런던과 서울을 거쳐 올해 1월부터 북미 투어에 돌입해 총 26개 지역에서 2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만났다.
이러한 버티기와 성과는 곧 ‘글로벌 신용도’로 돌아왔다. 현지 극장주와 투자자들이 오디컴퍼니를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뒤바뀐 것이다. 신 대표는 “과거엔 극장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극장주를 설득하고 협상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공이 들었지만, 이제는 검증된 제작사로서 유력 극장들과 안정적인 조건에서 협상 테이블에 앉는다”며 “현지 투자자들도 후속 프로젝트를 논의할 때 자금 조달의 폭과 속도가 훨씬 유연해졌다”고 말했다.
차기작 ‘어거스트러쉬’는 이 같은 신뢰를 바탕으로 원작 영화 제작사 사우스파우 엔터테인먼트의 리처드 바턴 루이스와 공동 리드 프로듀서 체제로, 워너브러더스 극장 벤처스와 계약해 제작한다. 신 대표는 “두 배 가까이 오른 제작비를 단일 자본으로 감당하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다”며 “투자자를 다각화해 리스크를 분산하는 것이 브로드웨이의 표준”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신시컴퍼니는 과감하게 외부 투자를 차단하는 방식으로 활로를 모색했다. 신작 ‘네로’의 런던 트라이아웃까지 외부 투자 없이 제작사 자본만으로 끌고 온 것이다. 신시컴퍼니는 2022년 합류 이후 뉴욕과 런던에서 여섯 차례 워크숍과 쇼케이스를 거쳤다.
신시컴퍼니 박명성 예술감독은 “작품 개발 초기 단계에서는 투자금을 얼마나 빨리 회수할지보다 ‘이 작품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먼저”라며 “외부 투자를 받으면 일정과 성과에 대한 부담이 생기는데, 작품의 뼈대를 만드는 시기인 만큼 자유롭게 수정하고 보완할 수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제작자는 좋은 결과에만 책임지는 사람이 아니라, 작품이 제대로 만들어질 수 있는 시간을 책임지는 사람”이라고 했다.
대극장용 스케일임에도 310석 규모의 오프웨스트엔드 극장에서 시험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박 감독은 “지금은 얼마나 많은 좌석을 채울지가 아니라 관객이 누구에게 공감하는지 확인하고, 편곡을 정하고, 덜어낼 장면을 찾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이어 “극장이 런던 중심부에 있어 현지 공연 관계자와 평론가가 찾기 쉽다는 점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주목할 부분은 거액의 자본 압박과 기다림의 시간을 뚝심 있게 감당할 수 있는 제작사가 국내에 극소수라는 점이다. 영미권 현지 개발에 뛰어든 곳이 모두 1세대 대형 제작사에 국한된 것도 이 때문이다. 본공연 개막 이후 수년간 투자금 회수를 기다리며 버틸 수 있는 생태계 조성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6 뮤지컬 창작진 글로벌 아카데미 1차 공개 특강 ⓒ예술경영지원센터
정부 지원 역시 아직은 진출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예술경영지원센터(예경)의 지원 사업은 K-뮤지컬국제마켓 발굴, K-뮤지컬 로드쇼, 영미권 중기개발 및 시범공연 지원 등 타당성 검토와 안착에 집중돼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올해 뮤지컬 예산 역시 244억원으로 지난해 31억원에서 크게 늘었지만, 이 가운데 180억원은 국내 창작 뮤지컬 지원에 배정됐다. 예술 분야 전반을 대상으로 한 예술산업 융자(500억원)와 보증(237억원) 제도도 올해 새로 생겼다. 본공연 개막 이후 천문학적인 주간 운영비를 버티는 후반부 단계에 대한 제도적 완충 장치는 사실상 전무하다.
서유미 예경 공연예술본부 팀장은 “정부지원은 마중물 역할을 하는 것으로 국내외 장기 공연의 경우, 제도 개선 등과 더불어 다각도로 접근되어야 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영국의 ‘시어터 택스 릴리프’(공연 제작비 환급제도)를 모범 사례로 꼽았다. 영국은 2025년 4월부터 자국 내 제작비 중 공제 대상 비용의 최대 40%(투어 공연은 45%)를 법인세 감면이나 현금으로 돌려준다. 서 팀장은 “영국에 진출하는 한국 뮤지컬도 실질적인 혜택을 받고 있다”며 “제작사의 재정 부담을 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연구를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 대표는 “수백억원대 자본이 움직이는 브로드웨이 메인스트림과 웨스트엔드는 요구되는 역량과 생태계가 완전히 다르다”며 시장별로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안정적 작품 개발을 위한 전용 펀드 조성, 트라이아웃 전용 극장, 글로벌 네트워킹 플랫폼 구축 등 구조적 전환이 이뤄져야 개별 제작사가 흘린 땀과 시행착오가 산업 전체의 자양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