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쌈짓돈 아니다' 해명에도 의문 남긴 미래대응기금 [기자수첩-정책경제]
입력 2026.10.12 07:00
수정 2026.10.12 08:18
162조3000억원 규모…30% 자체변경·104조4000억원 여유자금 운용 기준 도마
명절 할인 지원 엇박자까지…국회 사전 심의 범위·용처 기준 구체화 필요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 ⓒ뉴시스
"쌈짓돈은 아니다." 지난 8일 국정감사에서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은 미래대응기금이 국회 통제를 우회하는 대통령의 쌈짓돈이라는 야당의 비판을 부인했다. 국가재정법에 따라 설계된 만큼 자의적으로 운용할 수 없다는 취지다. 기금운용계획 자체가 국회 통제 밖에 놓이는 것도 아니다. 쟁점은 통제의 유무보다 정부에 허용되는 재량의 범위가 적정한지에 있다.
정부안에 따르면 내년도 미래대응기금 162조3000억원 가운데 45조4000억원은 청년, 성장동력, 지방, 교육·인재 분야에 투입된다. 12조5000억원은 국채 신규 발행을 줄이는 데 쓰고 104조4000억원은 여유자금으로 운용한다. 미래 분야에 장기적으로 투자하면서 세수 여건이 악화할 때 재정을 보강하는 장치로 활용하겠다는 구상이다.
두 기능을 한 기금에 담는 것 자체를 문제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더 중요한 것은 재원을 언제 적립하고 어떤 상황에서 꺼내 쓰는지다. 미래 투자와 세수 결손 보전 사이의 우선순위를 무엇으로 정할지도 분명해야 한다. 100조원이 넘는 여유자금을 운용하는 기금인 만큼 적립과 인출 기준이 구체적일수록 정부 재량을 둘러싼 논란도 줄어들 수 있다.
국회 심의 없이 기금운용계획을 바꿀 수 있는 범위도 따져볼 대목이다. 정부안은 미래대응기금 주요항목 지출금액의 30%까지 국회의 사전 의결 없이 자체 변경할 수 있도록 했다. 일반적인 사업성 기금에 적용되는 20%보다 높고 금융성 기금과 같은 수준이다.
미래대응기금은 사업성 지출이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금융성 기금과 지출 구조가 다르다는 지적도 있다. 4개 사업 프로그램을 기준으로 30% 한도를 모두 적용하면 자체 변경이 가능한 금액은 약 13조6000억원에 이른다.
정부는 경기와 산업 환경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려면 운용의 신축성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초과세수를 활용한 변경은 지체 없이 국회에 보고하도록 하는 장치도 뒀다. 그러나 사후 보고 장치와 별개로 사전 의결 없이 변경할 수 있는 금액이 적정한지는 입법 과정에서 따져볼 필요가 있다. 신속한 집행이 필요한 범위와 국회가 사전에 심사해야 할 범위를 구체적으로 나누는 작업이 필요하다.
명절 할인 지원을 둘러싼 이재명 대통령과 박 장관의 발언은 기금의 용처가 어디까지인지 다시 묻게 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명절 농축산물 할인 지원을 1조원 가까이 확대하는 방안을 거론하면서 미래대응기금을 활용할 수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박 장관은 국감에서 명절 할인 지원은 미래대응기금 성격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다른 재원을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이 사례만으로 기금이 임의로 운용될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대통령이 활용 가능성을 언급한 사업을 주무 장관이 기금 용도에 맞지 않는다고 정리했다는 사실은 어떤 사업을 미래대응기금에 넣을 수 있는지 판단 기준을 보다 선명하게 할 필요성을 보여준다.
법률안이 청년, 성장동력, 지방, 교육·인재 사업뿐 아니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업까지 기금 용도에 포함하도록 한 만큼 그 경계를 구체화하는 작업도 중요하다.
국회입법조사처도 비슷한 지점을 짚었다. 초과세수를 기금에 넣거나 세수 결손을 기금에서 보전하는 일이 국회의 사전 심의를 거치지 않아도 될 만큼 긴급한 사안인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가 재정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면 사전 심의·의결을 거치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냈다. 추가세수 규모의 적정성을 검증할 수 있도록 산출 방식과 관련 자료의 투명성을 높이고 기금운용계획 변경 범위도 재검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현재로서는 미래대응기금이 대통령이나 정부가 마음대로 사용하는 '쌈짓돈'이라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법안 심사에서 확인해야 할 것은 정치적 수사보다 제도다. 재원의 산출 기준은 검증 가능한지, 사업 선정 기준은 충분히 좁혀져 있는지, 여유자금을 언제 꺼내 쓸 수 있는지, 계획 변경에 국회가 어디까지 사전에 관여할지가 핵심이다.
'쌈짓돈이 아니다'라는 해명을 설득력 있게 만드는 것도 결국 이런 통제 장치를 얼마나 구체적으로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