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 캐스팅? 엄청 매달렸다”…염규복 첫 장편 ‘긴긴밤’, 경쟁 부문서 첫선 [31st BIFF]
입력 2026.10.09 11:02
수정 2026.10.09 11:03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유일한 애니메이션 초청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동화 원작…국내 첫 원작 기반 3D 장편 애니메이션
광고 감독 출신 염규복 첫 장편… 수지·박기욱·김규나 목소리 연기
광고 감독 출신 염규복 감독이 첫 장편 애니메이션 ‘긴긴밤’으로 부산국제영화제 경쟁 무대에 올랐다.
9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비프힐 기자회견장에서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경쟁 부문 초청작 ‘긴긴밤’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염규복 감독과 정경희 제작자가 참석했다. ‘긴긴밤’은 올해 경쟁 부문에 오른 유일한 애니메이션이다.
‘긴긴밤’은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을 받은 동명 동화를 원작으로 한다. 인간의 탐욕으로 가족과 친구를 모두 잃은 흰바위코뿔소 노든이 버려진 알을 품어 태어난 아기 펭귄 ‘나’와 함께, 펭귄이 살아갈 바다를 찾아 긴 여정을 떠나는 이야기다. 수지, 박기욱, 김규나 등이 목소리 연기를 맡았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전날 국내 첫 상영을 마친 염 감독은 “제목이 ‘긴긴밤’인데 제작 기간 4년이 나에겐 ‘긴긴 악몽의 밤’이었다”며 “어제 처음으로 깊이 잠들었다”고 웃었다. 정 제작자도 “생각보다 많은 분이 와주셔서 놀랐고, 이야기에 깊이 공감해 주셔서 감사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원작과의 인연은 딸에게서 시작됐다. 염 감독은 “이 책은 딸이 나에게 준 것”이라며 “다른 시리즈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너무 매료돼 안 할 수가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원래 구원 서사를 좋아하는데, ‘긴긴밤’은 전형적인 할리우드식 히어로 무비가 아니다”라며 “작은 존재들의 흔들림이 모여 한 개인의 인생에 큰 모멘트를 준다는 점에 끌렸다. 아이에게 읽어주다 정말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기술적 도전도 컸다. 염 감독은 “게임 그래픽 엔진으로 작업했는데, 빨리 만들고 빨리 확인할 수 있고 예산도 적게 들며 빛의 질감이 뛰어나다”면서도 “털, 모래 같은 입자, 반짝이는 빛의 반사감이 부족한데 우리 시나리오에선 그게 필수였다. 그 부분의 연구개발을 오래 한 게 가장 큰 도전이었다”고 설명했다.
정 제작자는 “원작 기반 3D 애니메이션은 한국에서 거의 처음이라 다들 믿기지 않는 프로젝트라고 했다”며 “참고할 레퍼런스가 없어 개발하면서 만드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결과물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염 감독은 “좋게 말씀해주셨지만 사실 많이 싸웠다”며 “제작자는 예산 안에서 아이디어를 펼치길 원하고, 감독은 많은 걸 보여주고 싶은 욕망이 있으니 충돌했다. 그래도 난파되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고 웃었다.
부산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 소식에 대해 염 감독은 “기대를 전혀 안 해서 처음엔 귀를 의심했다”며 “너무 영광스럽지만 그만큼 심적 부담도 크다”고 털어놨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수지 캐스팅 뒷이야기도 전했다. 그는 “CF 감독 출신이라 수지 씨와 광고로 오랜 인연이 있다. 그 인연을 빌미로 한 번 해달라고 엄청 매달렸다”며 “이 정도 배우라면 고민을 많이 할 법한데 의외로 바로 답을 주셨다. 원작의 엄청난 팬이라고 하더라”고 밝혔다.
펭귄 ‘나’의 목소리를 맡은 김규나와의 작업도 특별했다. 염 감독은 “다른 성우분이 어른이 아이 목소리를 내는 건 아닌 것 같다며 추천해줬는데, 처음 시나리오 일부를 건네자 너무 빠르게 체득했다. 당시 초등학교 4~5학년이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작품이 1년 반가량 멈춘 사이 중학생이 되며 목소리가 변할까 걱정이 컸다”며 “어린 시절 녹음본을 살리되, ‘나’가 바다로 떠날 무렵엔 사회로 나가기 직전의 모습이라 조금 더 어른스러워진 목소리를 썼다”고 설명했다.
원작에서 지키려 한 것과 바꾼 것도 분명히 했다. 염 감독은 “큰 상실을 겪은 주인공이 연대로 치유되고, 그 사랑을 내리사랑처럼 작은 존재에게 베푸는 것, 그 과정의 긴긴밤을 어떤 색과 무드로 그릴지는 반드시 지켜야 할 핵심이었다”고 말했다.
반면 유머와 액션은 새로 더했다. 그는 “처음 시나리오는 굉장히 차분했는데, 가편집본을 보니 아이들이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원작을 가장 좋아하는 20~30대만을 위한 영화를 만들 수는 없었다. 부모와 함께 올 아이들을 위해 유머와 액션을 넣었다”고 설명했다.
첫 장편 연출 소감을 묻자 “너무 좋은데 너무 부담스럽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중학생 딸 친구들의 반응을 꼽았다. 그는 “딸 친구들을 강제로 집에 데려와 휴대폰을 다 뺏고 보여줬는데, 전문가나 기자분들보다 그 아이들 반응이 훨씬 소중하고 겁났다”며 “영화가 끝나고 문을 열었더니 다들 너무 울어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고 웃었다.
앞서 상영한 토론토 관객과의 차이에 대해서는 “우는 포인트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똑같다. 결국 자기 자신과 부모님을 투영한다”며 “웃음은 한국 관객이 주변 눈치를 조금 더 보고, 토론토 관객은 박장대소한다”고 비교했다. 그러면서 “토론토에서 외롭게 지내던 20대 유학생들이 눈물 닦은 휴지를 한 움큼 보여줬는데, 어떤 칭찬보다 그 젖은 휴지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