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 공화국’ 탈출하려다 실수요 잡을라 [기자수첩-부동산]
입력 2026.10.12 07:00
수정 2026.10.12 07:00
이 대통령 "투기공화국 반드시 탈출…집값 안정" 약속
투기 수요·실수요자 구분 관건…"정교한 정책 설계 절실"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 모습.ⓒ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이 부동산 시장을 향해 연일 강한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 최근에는 “부동산 투기 공화국 탈출 약속을 반드시 지킬 것”이라며 “당장 힘들더라도 부동산을 둘러싼 폭탄 돌리기를 끝내야 한다며 가계대출 조정, 세제 개혁, 주택 공급 확대 등을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부동산 시장의 과도한 투기를 막아야 한다는 데는 공감대가 모인다. 집값이 단기간에 급등하고 주택이 시세 차익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될수록 매매·전월세 시장의 불안이 커지고 무주택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현재 서울 아파트값은 10월 첫째 주까지 87주 연속 오르며 역대 최장 상승 기록을 새로 썼다. 같은 기간 전셋값 역시 상승세다. 집값 불안을 잠재우고 투기 수요를 차단해야 할 필요성이 커진 이유다.
그러나 부동산 투기 공화국 탈출이라는 목표를 현실로 옮기는 과정은 단순해 보이지 않는다. 주택시장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시세 차익만을 노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결혼이나 출산을 앞두고 처음 집을 마련하려는 무주택자도 있고, 자녀가 크면서 더 넓은 집으로 옮기려는 가구도 있다. 또한 직장과 교육, 가족의 사정으로 거주지를 옮겨야 하는 이들도 존재하고, 오랜 기간 모은 자산에 대출을 보태 더 나은 주거환경으로 이동하려는 수요도 있다.
이들에게 집은 삶의 터전이자 투자자산인 셈이다. 집을 사려는 수요와 단기 차익을 노린 투기를 같은 선상에서 보기 어려운 대목이다.
물론 이 대통령이 주택 매수자를 모두 투기세력으로 규정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투기 억제를 앞세워 대출과 세제 등 수요 관리에 나서는 과정에서는 정책의 경계를 보다 세밀하게 할 필요가 있다.
특히 대출 규제는 금융기관의 돈을 빌려 집을 마련해야 하는 실수요자에게 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투기를 막기 위한 규제가 무주택자의 내 집 마련이나 실수요자의 정상적인 주거 이동까지 어렵게 한다면 정책의 취지와 실제 효과 사이에 괴리가 생기게 된다.
정부는 투기를 잡겠다는 의지를 밝히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실수요와 투기 수요를 어떻게 구분하고, 실수요자의 주거 선택은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
공급도 마찬가지다. 이 대통령은 최근 인허가와 착공이 늘고 있다며 공급 확대에 대한 자신감을 보였다. 공급이 충분해지고 수요자가 원하는 지역에 적정한 가격의 주택이 꾸준히 나오면 집값 상승에 대한 불안 때문에 무리해서 주택을 사려는 수요 역시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투기를 잡는 것과 집을 사려는 사람을 막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일이다. 부동산 투기 공화국 탈출이라는 약속의 성패도 결국 이 둘을 얼마나 정교하게 구분하느냐에 달려 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집을 사지 않아야 안정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 감당할 수 있는 가격으로 원하는 집을 살 수 있는 세상일 것이다. 정부는 부동산 투기 공화국 탈출이라는 목표가 실수요자의 주거 안정을 위한 약속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세심한 정책 설계를 고심해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