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빚 2000조 시대…무작정 '탕감' 대신 '자립' 사다리를 [기자수첩-금융]
입력 2026.09.28 07:07
수정 2026.09.28 07:07
고금리 장기화, 취약계층 부실 '경고등'
신용사면 6명 중 1명은 재연체
명목적 시혜 아닌 금융 방어선 구축 필요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함에 따라 한계 상황에 내몰리는 취약차주는 더 늘어날 우려가 커졌다.ⓒ연합뉴스
한국은행이 7월과 8월 기준금리를 두 차례 연속 인상해 연 3.0%까지 금리가 올라섰다.
여기에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본격적인 통화 긴축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포용금융' 명목으로 상환 능력을 잃은 부실 차주들의 빚을 사실상 대신 갚아주거나 탕감해주는 정책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단순 빚 탕감보다 실질적인 자립 방어선을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올 2분기 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은 전 분기보다 25조9000억원 늘어난 2019조8000억원으로 사상 처음 2000조원을 돌파했다.
고금리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빚을 내 버티던 기존 차주의 이자 부담도 점차 가중되는 모양새다. 가계의 상환 여력에 한계가 오는 셈이다.
지난 6월 말 국내 은행의 원화대출 연체율은 0.63%로 1년 전보다 0.11%포인트 상승했다.
금융권 안팎으론 가계 건전성 부실에 대한 경고등이 켜졌단 평가가 나온다.
타격이 큰 건 아무래도 다중채무자와 중저신용자들이다.
가계대출 총량 규제에 따라 은행권이 대출 문턱을 높이고 차주 선별을 까다롭게 하면서 1·2금융권에서 밀려난 취약차주들은 불법 사금융까지 내몰리는 실정이다.
치솟는 대출 이자 부담과 꽉 막힌 대출 절벽의 '이중고'를 온몸으로 겪는다.
정부는 '포용금융' 일환으로 상환 능력을 상실한 장기연체자들의 적극적인 채무 탕감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장기연체자들의 빚을 소각해주는 새도약기금을 신설했고, 같은 해 8월에는 서민,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신용사면 정책도 내놨다.
올 들어 금리 인상이 본격화하자 금융당국은 '금리 상승기 대비 취약차주 지원방안'을 통해 적극적인 채무조정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올 하반기 유동화회사와 대부업체가 소유한 5000만원 이하, 7년 이상 연체 채권을 전수조사해 새도약기금을 통해 최대한 매입해 소각한단 방침이다.
유동화회사 1조1000억원, 대부업체 최대 4조5000억원 규모가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공공기관이 보유한 20년 이상 장기연체채권도 일괄 소각된다.
고신용자 차별, 도덕적 해이 우려에 대해선 선을 그었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빚을 갚을 능력이 없다면, 면책시켜 재출발을 돕는 것이 사회적 이익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부채의 꼬리표만 떼어주는 일방적인 탕감 정책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지난해 신용회복 지원을 받은 개인·개인사업자 292만8000명 가운데 48만3000명(16.5%)은 올 1분기 중 다시 신규 연체가 발생했다.
연체 기록이 삭제된 6명 중 1명은 또다시 빚을 제때 갚지 못했단 의미다.
특히 신용사면을 받은 개인 257만2000명 중 45만6000명에게서 연체가 반복됐다.
차주별 재무 관리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괄적으로 기록을 지워주는 방식의 포용금융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에 그칠 공산이 크다.
빚을 갚지 않아도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 줄 것이라는 잘못된 시그널은, 팍팍한 살림 속에서 묵묵히 빚을 갚아나가는 성실차주 대다수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길 수 있다.
고금리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한계 상황으로 내몰리는 취약차주와 장기 연체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취약차주 지원 정책은 단순 '목숨 연명'이 아닌 '자립과 재기'로 전환해야 한다.
저신용자들이 장기연체에 빠지기 전 채무조정 제도가 적기에 작동하도록 사후관리 체계를 촘촘하게 마련해야 한다.
또 비교적 낮은 금리로 갈아탈 수 있는 대환대출 기회를 체계적으로 제공해 실질적인 이자 부담을 덜어주는 지원이 필요하다.
나아가 금융 지원이 취약계층의 안정적인 소득 창출을 위한 맞춤형 직업 훈련 및 재무 교육 등 복지 시스템과 유기적으로 연계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위기에 놓인 서민을 위해서 정부가 마련해야 할 금융 방어선은 일회성 시혜가 아닌 스스로 딛고 올라설 수 있는 튼튼한 사다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