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은 숫자가 됐다, 진짜 시작은 지금부터 [안덕기의 프리에이전트]
입력 2026.09.12 07:00
수정 2026.09.12 07:01
2년 만에 2797억→4484억, 체육회 예산 역대 최대 규모 회복
문체부 체육 예산 증가율 웃돈 성과…현장 중심 협상력으로 입증
‘되찾은 예산’ 넘어 중기 재정 안정성 확보로 이어져야
유승민 대한체육회장. ⓒ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지난 2025년 대한체육회 예산이 1년 만에 1388억원 사라졌다. 이전 해 4087억에서 2698억으로, 33% 삭감이었다. 조직 하나가 통째로 휘청일 규모다.
그해 잘려 나간 것은 총액만이 아니었다. 2024년 8월, 문화체육관광부는 생활체육 예산 가운데 416억원을 체육회를 거치지 않고 지방자치단체에 직접 교부하기로 했다. 돈이 지나가던 길 자체를 바꾼 것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따로 있다. 같은 해 문체부 체육 부문 예산은 1조 6751억원으로 587억원 늘었다. 파이는 커졌는데 체육회 몫만 잘렸다.
당시 체육회와 주무 부처의 관계가 어떠했는지는 굳이 복기하지 않겠다. 예산은 감정을 기록하지 않는다. 결과만 기록한다.
2025년 2월 취임한 유승민 회장은 취임 직후 인터뷰에서 문체부와 관계를 다져 삭감된 예산을 차차 복구하겠다고 했다. 그해 예산은 이미 편성이 끝난 뒤였으니, 그가 손댈 수 있는 첫 예산은 2026년도였다.
그리고 지난 4일, 두 번째 편성인 2027년도 정부 예산안에서 대한체육회 몫은 4484억원으로 확정됐다. 전년 대비 1007억원 증액, 창립 이래 최대다. 2년 전 2797억에서 1687억이 늘었다. 약속은 숫자가 됐다.
이 숫자는 배경과 함께 읽어야 제대로 보인다. 같은 날 발표된 문체부 2027년 예산안은 9조 6345억원으로 22.6% 늘었다. 부문별 증가율은 문화·예술 44.6%, 관광 18.8%, 콘텐츠 9.5%, 그리고 체육 7.9%다. 네 부문 중 꼴찌이고, 정부 전체 총지출 증가율 12.8%에도 미치지 못한다.
체육은 여전히 문체부 안의 막내다. 그런데 그 막내 안에서 대한체육회 몫은 29% 늘었다. 소속 부문이 자라는 속도의 3.7배다. 좁은 문에서 큰 몫을 받아냈다는 뜻이다.
정권이 바뀐 프리미엄이 있었다는 분석은 타당하다. 그러나 프리미엄이 있어도 못 받아오는 조직이 있고, 프리미엄이 없어도 지켜내는 조직이 있다. 체육회는 주무 부처와 싸우는 대신 현장을 보여주는 쪽을 택했다. 지난 5월 8일 기획예산처 장관이 진천국가대표선수촌을 찾아 선수와 지도자들을 직접 만났고, 그 자리에서 나온 요구가 예산안에 그대로 담겼다.
협상은 실력이다. 실력의 차이가 결과의 차이를 만드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누가 앉아도 같은 숫자가 나온다면 체육회장 선거를 할 이유가 없다. 공약이 숫자로 확인된 이상, 그 성과는 성과대로 기록되어야 한다.
체육회 예산 삭감의 피해는 오롯이 선수들에게 돌아간다. ⓒ 연합뉴스
두 가지를 함께 기록해 둔다.
첫째, 되돌린 것과 나아가는 것은 다르다. 2022년 예산 4210억원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2027년 가치로 환산하면 4700억원대가 된다. 명목상 역대 최대인 4484억은 실질 기준으로 5년 전 수준을 아직 넘지 못했다. 무너진 자리를 2년 만에 메운 것은 대단한 일이지만, 이제야 출발선이다.
둘째, 삭감의 대가는 선수가 치른다. 올해 종목단체에 지원하는 경기력향상지원비는 정부 평가에서 '미흡' 판정받아 22억 6800만원, 27.7%가 깎인 59억원으로 확정됐다.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는 해에 준비 예산이 줄었다. 총액이 커졌다고 모든 자리가 저절로 메워지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삭감의 폭이다. 협상 결과에 따라 예산이 더 늘고 덜 느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선수의 훈련비와 종목단체의 기본 운영비까지 한 해에 3분의 1이 사라지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어느 해에 얼마가 들어오든 최소한 이만큼은 보장된다는 선이 어디에도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선수의 4년은 예산의 부침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다음 약속은 체육 재정의 중기계획이어야 한다. 5년 단위 계획을 법에 명시하고, 종목단체 지원의 최소 규모와 삭감 요건을 문서로 남기는 일이다. 바닥은 제도가 깔고, 그 위에 얼마를 더 쌓느냐로 회장을 평가하면 된다. 그때 비로소 4484억원은 운이 좋았던 해의 기록이 아니라, 협상력이 만들어낸 성과로 온전히 남는다.
임기는 2029년 2월까지로 예산을 편성할 기회가 두 번 더 남았다. 협상으로 숫자를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증명했다. 남은 시간은 그 숫자가 사람이 바뀌어도 지켜지도록 만드는 데 쓰여야 한다.
국회 심의가 남았다. 4484억원이 온전히 지켜지기를, 그리고 다음 예산은 되찾는 숫자가 아니라 넘어서는 숫자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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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안덕기 대한체육회 홍보미디어위원회 부위원장
※외부 필진 칼럼입니다.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