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은 단단하게, 물은 뜨겁게"…달라진 정수기 경쟁
입력 2026.07.05 06:00
수정 2026.07.05 06:00
물맛 넘어 홈카페·간편식 수요에 역할 확장
큰 얼음·100도 온수 앞세워 교체 수요 공략
ⓒ데일리안 A I이미지
정수기 시장이 포화 상태에 접어들었다는 평가 속에서도 얼음정수기 경쟁은 오히려 달아오르고 있다. 집에서 커피와 음료를 즐기는 '홈카페' 문화가 확산하고 컵라면, 차, 간편식 조리 수요까지 늘면서 정수기가 단순히 물을 마시는 기기에서 주방 편의 가전으로 바뀌고 있어서다. 생활가전 업체들은 큰 얼음과 100도 안팎의 초고온수 기능을 앞세워 교체 수요 공략에 나서고 있다.
5일 생활가전 업계에 따르면 코웨이와 청호나이스, 쿠쿠, SK매직, 교원 웰스 등 주요 렌털 가전업체들은 얼음정수기 제품군을 앞세워 여름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여기에 제습기와 공기청정기 등 계절가전으로 알려진 위닉스까지 얼음정수기 시장에 처음 진출하면서 경쟁 구도가 한층 넓어졌다. 최근 LG전자와 삼성전자도 차례로 얼음정수기 제품을 출시하며 시장 공략에 나선 상태다.
정수기는 이미 렌털 중심 구조가 자리 잡은 대표 생활가전 시장이다. 보급률이 높은 수준에 도달하면서 단순 신규 보급보다 기존 고객의 교체와 프리미엄 전환 수요를 잡는 것이 중요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체들이 얼음정수기에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얼음정수기는 일반 정수기보다 렌털료가 높고 소비자가 기능 차이를 체감하기 쉬워 포화된 시장에서 교체 수요를 자극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정수기 시장에서 중견 렌털가전 업체들이 강세를 보이는 것도 이 같은 시장 구조와 맞닿아 있다. 정수기는 한 번 팔고 끝나는 일반 가전과 달리 필터 교체, 위생 관리, 정기 점검이 뒤따르는 서비스형 가전에 가깝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자체 제품 성능만큼이나 누가 정기적으로 관리해주는지, 필터를 제때 교체해주는지, 문제가 생겼을 때 얼마나 빨리 대응하는지가 구매 기준이 된다.
최근 대기업들도 정수기 관리와 정기 점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기존 렌털업체들이 쌓아온 고객 계정과 방문관리망, 교체 영업 노하우를 단기간에 넘어서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 업계 평이다.
정기적으로 제품 상태를 점검하고 필터를 교체하는 것은 물론, 약정 만료 시점에 맞춰 신제품 교체를 제안하는 방식이 정수기 시장의 핵심 영업 구조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최근 경쟁의 중심은 제빙 능력과 초고온수 기능으로 옮겨가고 있다. 과거 정수기의 핵심 경쟁력이 정수 성능과 물맛, 기본 온수 기능이었다면, 최근에는 얼음을 얼마나 크게, 단단하게, 위생적으로 만들 수 있느냐와 100도 안팎의 뜨거운 물을 바로 사용할 수 있느냐가 주요 선택 기준으로 떠올랐다.
특히 얼음정수기 경쟁은 단순히 얼음이 나오느냐를 넘어 얼음의 크기와 밀도, 투명도, 위생 관리로 세분화되고 있다. 크고 단단한 얼음은 작은 얼음보다 상대적으로 천천히 녹아 커피나 음료의 맛이 빨리 옅어지는 것을 줄일 수 있다. 집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나 과일 음료를 즐기는 수요가 늘면서 정수기의 역할도 기존 '깨끗한 물 공급'에서 '음료 경험을 좌우하는 주방 가전'으로 확장되는 모습이다.
업체들도 이 같은 수요 변화에 맞춰 제품 차별화에 나서고 있다. SK매직은 최근 얼음정수기 판매량이 전년 대비 50% 증가했다고 밝혔다. 특히 최근에 출시한 'MEGA ICE 얼음정수기’ 신제품이 약25g의 큰 사이즈의 얼음을 제빙할 수 있다는 기능을 앞세워 소비자 관심을 끌고 있다.
코웨이 역시 얼음정수기 제품군을 미니, 스탠다드, 맥스, 오리지널, RO 등으로 세분화하고 여름 프로모션에 나섰다. 초소형 제품부터 쾌속 제빙, 대용량 모델까지 라인업을 넓혀 주방 공간과 사용량, 취향에 따른 선택지를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코웨이는 공식 홈페이지에서 얼음정수기 신규 렌털 고객에게 최대 18개월 렌털료 반값 혜택을 제공하는 '아이스 페스타'도 진행하고 있다.
쿠쿠 역시 '제로 100 미니 얼음정수기'를 앞세워 여름 수요를 공략하고 있다. 여기에 야외 활동 수요를 겨냥한 '쿠쿠 인스퓨어 풀 스테인리스 포터블 제빙기'를 앞세워 캠핑과 차박 문화를 겨냥 중이다. 별도 수도관 연결 없이 전원만 연결하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얼음을 만들 수 있는 제품이다.
위닉스의 첫 진출도 눈에 띈다. 위닉스는 그동안 제습기와 공기청정기 등 계절가전에서 강점을 보여온 업체다. 얼음정수기 시장 진입은 계절에 따라 매출 변동성이 큰 제품군에서 벗어나 렌털 기반의 반복 매출을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정수기 렌털은 가입자를 확보하면 매월 안정적인 매출을 기대할 수 있고, 필터 교체와 정기 관리 서비스를 통해 고객 접점을 꾸준히 유지할 수 있다.
100도 안팎의 초고온수 기능도 프리미엄 정수기의 주요 차별화 요소로 부상했다. 기존 온수 기능이 차나 커피를 타는 정도에 머물렀다면, 최근에는 컵라면과 간편식, 조리 보조 용도로 바로 쓸 수 있는 수준의 뜨거운 물을 원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전기포트로 물을 따로 끓이지 않아도 된다는 편의성이 부각되면서 초고온수 기능은 얼음 기능과 함께 프리미엄 정수기의 핵심 사양으로 자리 잡는 분위기다.
업계에서는 얼음정수기 경쟁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폭염과 홈카페 문화, 1~2인 가구의 소형 주방 수요가 맞물리면서 제품 크기와 얼음 품질, 위생 관리, 초고온수 기능을 둘러싼 경쟁은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생활가전 업계 한 관계자는 "사실상 정수기 시장은 다소 성숙기라 단순 정수 성능보다는 소비자가 바로 체감할 수 있는 기능이 프리미엄 정수기 경쟁의 핵심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