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 재정 적자인데…중증환자보다 대통령 공약 '탈모치료' 먼저?
입력 2026.06.18 10:59
수정 2026.06.18 11:23
복지부, 하반기 국민 의견 수렴 거쳐 급여 확대 검토
건보 재정 적자 전망 속 의료계·환자단체 반발
“한정된 재원, 필수의료·희귀질환에 우선 투입해야”
지난 2022년 대선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선거대책위원회가 공개한 유튜브 영상 ⓒ유튜브 캡처
정부가 탈모 치료 건강보험 적용 확대를 공론화하면서 의료계 안팎에서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건강보험 재정 악화가 예상되는 가운데 탈모 환자의 치료비 부담을 덜어야 한다는 주장과 중증·희귀질환 치료가 우선이라는 목소리가 맞서면서 정책 우선순위를 둘러싼 논쟁도 커지는 모습이다.
18일 의료계에 따르면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11일 기자간담회에서 올 하반기 대국민 의견 수렴을 거쳐 탈모 치료 건강보험 급여 확대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행정안전부와 복지부는 다음 달 해당 사안을 주제로 현장 토론회도 개최할 예정이다.
'탈모 치료 급여화' 화두를 던진 것은 이재명 대통령이다. 이 대통령은 2022년 대선 후보 시절 탈모약 건강보험 적용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지난해 말 복지부 업무보고에서도 청년층이 탈모를 생존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관련 검토를 지시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지방선거 직후 돌출된 탈모 치료 급여화 논의가 대통령 지지율을 염두에 둔 포퓰리즘 정책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현재 건강보험은 자가면역질환인 원형탈모 등 질환으로 분류되는 병적 탈모에 대해서는 급여를 적용하고 있다. 반면 유전적 요인이나 노화 등에 따른 일반적인 탈모 치료는 비급여 항목으로 분류된다.
다만 탈모약 급여화를 둘러싼 가장 큰 쟁점은 건강보험 재정과 정책 우선순위다. 건강보험 재정은 지난해까지 흑자를 유지했지만 고령화와 의료비 증가 등의 영향으로 올해부터 적자로 전환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11일 정부 출범 1주년 계기 출입기자단 정책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건강보험 재정은 올해 약 5조원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며 적자 규모는 점차 확대돼 2035년에는 39조원에 이를 것으로 관측된다. 반면 국내 탈모 인구는 잠재 환자를 포함해 약 100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에 따라 급여화가 현실화될 경우 건강보험 재정에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생명과 직결된 중증질환 치료조차 충분한 급여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탈모 치료에 건강보험 재정을 투입하는 것이 타당한지를 둘러싼 논란도 커지고 있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최근 성명을 통해 “생명과 직결된 중증질환 치료제 급여화는 재정 부족을 이유로 미루면서 탈모 치료에 건강보험 재정을 우선 투입하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처사”라고 비판했다. 대한의사협회 대의원회 역시 필수의료와 중증·희귀난치질환 지원이 우선돼야 한다며 탈모 급여화 논의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치권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야권은 건강보험 재정 부담과 정책 우선순위 문제를 제기하는 한편, 탈모 급여화가 특정 세대를 겨냥한 정책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야당 간사인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은 최근 원내대책회의에서 “암환자, 희귀질환자 등 하루하루를 버티는 환자와 가족들이 있다. 이들보다 M자형 탈모가 먼저냐”며 “포퓰리즘으로 얻는 인기는 짧지만 무너진 건강보험과 환자들의 고통은 길게 남는다”고 정책 추진을 비판했다.
천하람 개혁신당 원내대표도 “지방선거에서 2030세대의 지지가 떨어지는 걸 확인한 뒤 탈모 치료 지원을 하겠다는 건 매표행위와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의료계에서도 현 상황에서 탈모 급여화 논의가 적절한지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아직 건강보험 적용이 이뤄지지 않은 중증·희귀질환 치료제도 적지 않다”며 “탈모 급여화 논의 역시 재정 영향과 정책 우선순위를 충분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공론화 과정을 거쳐 하반기 중 추진 방향을 결정할 방침이다. 행정안전부는 다음 달 4일 ‘모두의 토론회’를 열고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급여 적용 문제를 첫 번째 의제로 다룰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