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 밀가루 업체담합 적발…공정위, 과징금 6710억원 ‘역대 최대’
입력 2026.05.20 12:00
수정 2026.05.20 13:45
공정위, 독자적 가격재결정 명령
2006년 제재 이후 재차 담합해
2019년부터 가격·물량 담합 시도
원맥값 상승기 가격 신속 인상
서울 서초구 하나로마트 양재점에 밀가루가 진열돼 있다.ⓒ뉴시스
공정거래위원회가 약 6년에 걸쳐 밀가루 공급 가격·물량을 담합한 7개 밀가루 제조·판매 사업자(제분사)에 6700억원대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지난 2006년 담합으로 한차례 제재를 받고도 재차 가격 담합을 실행한 데다 정부의 물가안정 보조금을 받고도 담합을 지속한 점이 중대 위반으로 판단됐다. 공정위는 과징금과 더불어 독자적 가격재결정 명령을 등 시행명령도 내렸다.
2019~2025년 총 55차례 담합 회의
공정거래위원회.ⓒ연합뉴스
공정위는 대한제분, CJ제일제당, 사조동아원, 삼양사, 대선제분, 삼화제분, 한탑 등 7개 제분사가 2019년 11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라면·국수·제과·제빵 업체 등에 공급하는 B2B 밀가루 가격과 공급 물량을 담합한 행위에 대해 독자적 가격재결정 명령 등 시정명령, 과징금 6710억4500만원을 부과했다고 20일 밝혔다.
적발된 7개 제분사는 국내 B2B 밀가루 판매시장의 87.7%를 차지하는 과점 사업자들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이들은 담합 기간 동안 총 24차례에 걸쳐 가격 인상·인하 폭과 시기, 거래처별 공급 물량과 공급 순위 등을 사전에 합의하고 실행한 혐의다.
조사 결과, 담합은 2019년 제분업계 경쟁 심화 이후 시작된 것으로 파악됐다. 대한제분은 2018년 11월쯤 농심에 대한 견적제출 시 경쟁사 중 가장 낮은 금액을 제출해 전체 물량의 약 30%에 달하는 최다 공급물량을 확보했다.
이에 대한 제분, CJ제일제당, 사조동아원 등 시장점유율이 높은 상위 3개사 대표자급 임원들과 삼양사 임직원이 식장에서 회합해 농심을 포함한 전체 B2B 거래처들을 상대로 ‘서로 과도한 경쟁 자제’·‘적정 가격 유지’·‘안정적 물량 확보’ 등에 공감대를 형성하며 담합이 시작됐다는 게 공정위의 설명이다.
조사 결과, 7개 제분사는 2019년 11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농심, 팔도, 풀무원 등 대형 수요처 대상 밀가루 공급가격 및 물량 담합(19차례) ▲중소형 수요처 및 대리점 등 전거래처 대상 밀가루 공급가격 담합(5차례)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담합 기간 중 대표자급·실무자급 회합은 총 55차례 걸쳐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다.
대표자급 회합을 통해 큰 틀에서 합의한 후 실무자 회합에서 합의 내용을 구체화했다는 게 공정위의 설명이다.
이들 제분사는 개별 합의 당시 상황과 자신들의 이해관계 등 필요에 따라 상위 3개사, 4개사(상위 3개사+삼양사), 7개사 회홥 등 다양한 형태의 회합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국제 원맥 가격 상승기였던 2020~2022년에는 원가 상승분을 빠르게 반영하기 위해 전거래처에 대한 가격 인상폭과 시기를 합의했고, 수입 원맥 시세 하락기인 2023년 이후에는 가격 인하 시점을 늦추는 방식으로 담합을 이어간 것으로 조사됐다.
농심 등 대형 수요처에 대한 가격 인하 폭과 시기 등을 합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정부가 국제 원맥 시세 상승 기간 동안 물가안정을 위해 2022년 하반기 이후 가격안정 지원사업 보조금 471억원을 지급했음에도 담합은 중단되지 않았다고 공정위는 밝혔다.
제분사들은 2022년 8월 정부 물가안정지원 사업에 따른 보조금을 지급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보조금 수령 시점 이전에 가격 인상 합의를 실행하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제분사들은 공정위 담합조사를 받게 될 상황을 우려, 제분사별 가격 인상 시기를 조정했다고 공정위는 설명했다. 제분사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공정거래법상 담합에 해당될 수 있다는 점도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2022년 밀가루 가격 최대 74% 상승
담합 영향으로 2022년 9월 기준 밀가루 판매가격은 2019년 12월 대비 제분사별로 최소 38%에서 최대 74%까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위는 원가 상승기에는 가격 인상이 신속하게 이뤄진 반면 원가 하락기에는 가격 인하가 지연됐고, 담합 참여 업체들의 영업이익률도 공동행위 이전보다 개선됐다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따라 총 6710억45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한편, 공정위는 올해 1월 검찰 고발요청에 따라 7개 제분사와 임직원 총 14명에 대한 고발도 완료했다.
남동일 부위원장은 “이번 조치는 라면, 빵, 과자 등 국민 먹거리의 핵심 원료이자 대표적인 국민 생활 밀접 품목인 밀가루의 가격 등을 놓고 시장점유율 90%에 이르는 제분사들이 약 6년에 걸쳐서 은밀하게 실행한 담합을 적발·제재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며 “향후 밀가루 판매시장에서 경쟁질서가 확립되는 한편, 가격재결정명령 등 적극적인 시정조치가 이뤄져 담합에 가담한 사업자들의 부당이득이 환수되고, 나아가 가계 부담도 크게 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담합’ 과징금 역대 최대…인쇄용지 이어 가격재결정 명령
밀가루 유통구조.ⓒ공정거래위원회
과징금 규모는 담합 사건 사상 역대 최대 규모인 6710억4500만원이다. 제분사별로 보면 사조동아원이 1830억9700만원으로 가장 많았고 대한제분 1792억7300만원, CJ제일제당 1317억100만원, 삼양사 947억8700만원 순으로 부과됐다. 공정위는 이번 담합과 관련된 매출액 규모를 5조6900억원으로 산정했다고 밝혔다.
독자적 가격재결정 명령 카드도 꺼냈다. 앞서 4년간 인쇄용지 가격을 담합한 주요 제지사에 3000억원대의 과징금을 부과함과 동시에 20년 만에 가격재결정 명령을 부과한 바 있다.
남 부위원장은 “민생·소비자와 직결되는 부분에서 담합이 깨졌을 때 가격 인하 효과가 소비자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소비자 밀접 품목들, 국민 생활과 밀접한 품목에 대해 가격재결정 명령을 사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가격재결정 명령)이행 과정에서 밀가루 가격이 경쟁 회복 수준의 가격으로 찾아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독자적 가격재결정 명령이 내려지면, 3개월 내 독자적으로 가격을 재결정해 보고해야 한다.
이외에도 ▲법 위반행위 금지명령 ▲가격 변경내역 보고명령 ▲법위반사실 통지명령 ▲임직원 교육실시 및 보고 명령 ▲담합 여부 자체조사 및 보고 명령 ▲담합 가담자에 대한 징계규정 신설 및 보고명령 등 7개 시정명령을 부과했다.
이 중 가격 변경내역 보고명령은 향후 3년간 밀가루 가격의 변경 현황을 연 2회 공정위에 서면 보고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