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조남대의 은퇴일기(96)]
입력 2026.04.07 14:01
수정 2026.04.07 14:02
겨울이 깊어질 무렵이면 남쪽을 향해 길을 나선다. 딸네가 사는 라오스다. 두꺼운 외투를 여미고 인천을 떠나 몇 시간을 날아가면, 그곳은 아직 가을의 온기를 품고 있다. 공항 문을 나서는 순간, 계절만이 아니라 삶의 속도까지 달라졌음을 온몸으로 느낀다. 우리는 흔히 소득과 행복이 비례한다고 믿으며 살아간다. 라오스에 서 있으면 그 공식이 얼마나 맹랑한 환상인지 금세 깨닫게 된다.
라오스에 도착하여 공항을 나서는 순간 달라진 분위기 ⓒAI 제작
나는 운전대를 잡을 때마다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다. 신호등 맨 앞에 대기하는 순간 마음이 조급해진다. 파란불이 켜지자마자 출발하지 않으면 뒤에서 경적이 등에 쏟아진다. 4~5초의 머뭇거림도 용납되지 않는다. 낯선 길에서 방향을 잘 몰라 어쩔 수 없이 끼어들기라도 하는 날에는 경적은 물론이고 열린 창문으로 빗발치는 눈총과 손짓까지 감당해야 한다. 미안함은 곧 반항심으로 바뀌고, 도로 위는 양보 없는 전쟁터가 된다. 우리는 왜 이토록 서둘러야 하는가. 목적지에 몇 분 먼저 도착하는 것이 삶의 여유를 그토록 앗아갈 만큼 중요한 일일까.
운전대를 잡고 신호등 앞에 서면 긴장되는 모습 ⓒAI 제작
라오스의 도로는 전혀 다른 풍경을 보여 준다. 수도 비엔티안의 출근 시간, 손주들을 등교시키려 시내를 지날 때면 교차로마다 오토바이와 자동차가 뒤엉켜 있다. 그 틈을 제시간에 빠져나갈 수 있을지 조마조마해진다. 신호등은 드물고, 대부분이 로터리다. 짧은 틈만 보이면 재빨리 비집고 들어가지만, 끼어들었다고 경적을 울리거나 눈치 주는 일은 없다. 수용과 양보가 일상인 삶이다. 속도를 낼 수 없는 도로 환경이어서 큰 사고도 없고, 문제가 생겨도 다툼으로 번지지 않는다. 자동차나 오토바이가 조금 찌그러져도 운전하는 데 지장이 없으면 툭툭 털고 일어나 “괜찮아”(보팬양) 하며 헤어진다. 자동차가 재산의 상징이 아니라 이동 수단에 불과하기에 가능한 풍경일지도 모른다. 역주행도 잦고 질서는 느슨하지만, 분위기는 부드럽다. 서두르지 않는 마음이 도로 위에도 스며 있는 듯하다.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의 출근길 풍경 ⓒAI 제작
비엔티안에서 방비엥 방면으로 한 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남 피엔 욜라파’라는 숲속의 아름다운 리조트에서 또 다른 라오스를 만났다. 울창한 밀림 사이로 이어진 출렁다리와 나무 그림자 아래 놓인 수영장, 그리고 우리 가족을 한나절 안내해 준 젊은 직원이 있었다. 월급은 우리 돈으로 20만 원 남짓이라고 했다. 가장의 급여로는 턱없이 적어 보였지만, 얼굴에는 불만 대신 밝은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측은한 마음에 팁을 건네자 몇 번이나 고개 숙여 감사 인사를 하며 “괜찮아요, 저는 지금이 좋아요” 하고 수줍게 웃었다. 금액의 많고 적음보다 주어진 환경에 만족해하는 태도가 생활에 배어 있어 보였다. 어느 한국식당에서 본 장면도 인상 깊었다. 적은 손님에 비해 홀에는 종업원이 대여섯 명이나 보였다. 주인은 여기 사람들은 주방일보다 홀 서빙을 선호한다고 했다. 월급은 주방이 더 높지만, 힘들고 복잡한 일을 굳이 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괜찮아” 하고 지금의 자리에 만족해한다고 할까. 돈보다는 자신의 안락을 선택하는 마음, 우리는 흔히 이를 ‘발전 의지 부족’이라 말할지 모르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삶의 피로도를 스스로 조절하는 지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자부심을 갖고 외국인들을 안내하는 라오스 청년 ⓒAI 제작
우리 사회는 어떤가. 더 높은 연봉과 나은 조건을 향해 끊임없이 이동한다. 평생직장은 사라졌고 직업 선택의 기준은 점점 수입 중심으로 기울어 간다. 대학입시에서도 소득이 높은 직종이 최상위에 놓인다. 부의 가치를 부정할 수는 없지만, 치열함이 우리를 지치게 만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직장 안에서도 경쟁은 일상이 된다. 근무 시간이 끝나도 사무실 불은 쉽게 꺼지지 않는다. 벌어도 늘 채워지지 않는 느낌이 들고, 허전함은 더 많은 노동으로 이어진다. 직업은 꿈이기보다 생존전략이 된다. 각박함이 만연해도 어쩌지 못하는 우리, 그럴 때면 라오스에서 만난 젊은이들의 미소가 떠오른다. 월급에 연연하지 않는, 평온을 잃지 않는 얼굴을 보며, 우리는 왜 이토록 바쁘게 살아가는가 자문해 본다. 그들의 표정을 떠올릴 때마다 풍요의 기준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더 좋은 조건을 얻기 위해 힘들게 일하는 직장인들 ⓒAI 제작
한평생 살면서 가장 슬플 때는 가족이나 배우자 등 가까이 있는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가 아닐까.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라는 속담은 아무리 고되고 천한 삶이라도 살아 있는 이 세상이 죽음보다 낫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그런 이승을 떠나는 슬픔은 얼마나 크겠는가. 특히 배우자를 잃었을 때의 스트레스는 이혼이나 교도소 수감보다 훨씬 높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기도 했고, 우리가 어릴 때만 해도 굴건제복에 문상객이 찾아오면 눈물 없는 곡으로 슬픔을 표현해야 했다.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라오스 풍습 ⓒ직접 촬영
라오스에서는 죽음을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국민 대부분이 불교다 보니 환생을 믿으며, 죽음은 육체라는 낡은 옷을 벗고 새로운 생으로 옮겨가는 윤회의 과정이라 생각한다. 지나치게 슬퍼하거나 통곡하는 것은 떠나는 이의 영혼을 현세에 머물게 하여 다음 생으로의 여행을 방해한다고 여긴다. 그들은 눈물 대신 미소로 “괜찮아, 편히 가” 하고 등을 다독이듯 영혼을 떠나보낸다. 장례식장에서 술을 마시며 시끌벅적하게 축제같이 지내기도 하는데, 이는 망자가 좋은 곳으로 가는 것을 축하하는 의미도 담겨 있단다. 죽음은 그동안 쌓은 업에 따라 결정되는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믿는다. 그들에게 삶과 죽음은 단절된 두 세계가 아니라, 흐르는 강물처럼 연결된 하나의 과정이라 여겨진다.
너그러운 라오스 분위기에 취해 다시 찾고 싶어진다 ⓒAI 제작
라오스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 또한 닮고 싶다. 경적 대신 기다림이, 경쟁 대신 수용이, 집착 대신 흘려보냄에 녹아들고 싶다. 물론 경제적으로 부족한 삶이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너그럽고 여유로운 삶을 살려면 결핍으로 인한 불편함을 얼마간은 감내해야 하지 않겠는가. 라오스의 따뜻한 바람 속에서 배운 것은 “괜찮아”라고 말해 주는 삶의 태도다. 그래서 나는 해마다 겨울이 오면 다시 느린 나라를 찾는다. 추위를 피하고 보고 싶은 얼굴을 만나러 가지만 실은 조급해진 마음을 식히러 가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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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대 작가ndcho55@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