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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봉투법 첫 인정에 재계 진퇴양난..."법 지키면 불법 함정"

백서원 기자 (sw100@dailian.co.kr)
입력 2026.04.03 11:55
수정 2026.04.03 13:42

충남지노위, 공공기관 4곳 ‘사용자성’ 인정

포스코 등 대기업 ‘도미노 신청’ 우려 확산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 법률) 시행 첫날인 지난 10일 서울 세종로에서 열린 민주노총 투쟁 선포대회에서 집회를 마친 민주노총 조합원 등이 행진하고 있다.ⓒ연합뉴스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 시행 이후 처음으로 원청 기업이 하청 노조의 ‘진짜 사장’으로서 직접 교섭에 나서야 한다는 노동위원회의 판단이 나온 가운데 재계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이번 판정은 법 시행 24일 만에 나온 첫 사례로, 그간 교섭 의무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거부해온 민간 대기업들을 향한 하청 노조의 압박도 전방위로 확산될 전망이다.

‘사용자성’ 빗장 푼 노동위...“안전관리가 지배 지위”

3일 재계와 노동계에 따르면 충남지방노동위원회는 전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공공연대노조가 한국자산관리공사 등 4개 공공기관을 상대로 낸 ‘교섭요구 사실 공고 시정 신청’을 모두 인용했다. 이는 지난달 10일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하청 노조가 원청으로부터 교섭 자격을 얻어낸 첫 판정이다.


지노위는 용역계약서와 업무 일지 등을 근거로 해당 기관들이 하청 근로자의 안전 관리 및 인력 배치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사용자’ 지위에 있다고 인정했다. 이에 따라 이들 기관은 7일 이내에 교섭 요구 사실을 공고하고 협상에 임해야 하며, 이를 거부할 경우 부당노동행위로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부당노동행위는 법정에서 치열한 유무죄 공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재계는 노동위가 하청 노조의 전략적 교두보인 ‘안전 보건’ 의제를 사용자성 인정의 주요 근거로 삼은 점에도 주목하고 있다. 원청이 사업장 내 사고 예방을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안전 조치가 오히려 ‘교섭 강제’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경영계는 이 테이블이 결국 임금 인상 요구로 번져 교섭 비용 급증과 사업장 내 합법적 쟁의라는 이중고를 불러올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현장 혼란 가속...3주 만에 조정 신청 260건 돌파

법 시행 이후 현장의 혼란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중앙노동위원회에 따르면 지난달 10일 법 시행 이후 30일까지 접수된 교섭 관련 조정 신청은 총 267건에 달한다. 특히 교섭요구 공고와 관련한 시정 신청은 시행 1주차에 5건에 불과했으나, 2주차에 44건으로 늘어난 데 이어 3주 차에는 104건으로 급증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초기 공공기관 중심이었던 시정 신청은 최근 주요 대형 건설사와 제조 대기업으로 급격히 확산되는 양상이다.


이번 판정의 영향력은 당장 이날 예정된 경북지방노동위원회의 판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경북지방노동위는 당일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 포스코하청지회가 신청한 교섭단위 분리 결정에 대한 판정을 내린다. 포스코의 사용자성이 인정될 경우 민간 대기업으로서는 첫 사례가 돼 파급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금속노조는 이미 19개 원청을 상대로 64개 지회(조합원 1만8433명)가 원청교섭 요구 공문을 발송한 상태다. 별도로 포스코와 동희오토를 상대로는 7개 지회·분회(조합원 2116명)가 교섭단위 분리 신청에 나섰다. 사측의 대응은 엇갈리는 분위기다. 한화오션·HD현대중공업·HD현대삼호 등 조선업 원청 3곳은 사용자성이 인정되는 범위 내에서 제한적 교섭 의사를 밝혔다.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와 한국타이어, 한국지엠 등은 여전히 무대응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에 금속노조는 이달 원청교섭 상견례를 시작으로 내달 교섭 거부 사업장에 대한 규탄 집중 투쟁, 7~8월 파업을 검토 중이다.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 법률) 시행 첫날인 10일 서울 세종로에서 열린 민주노총 투쟁 선포대회에서 양경수 위원장을 비롯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연합뉴스
전문가 “어느 쪽 선택해도 불법...실질적 안전에도 찬물”

다만 학계에서는 이번 판정과 노란봉투법의 구조적 결함이 기업들을 ‘불법의 늪’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지적한다. 기업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내몰렸다는 것이다. 특히 법과 법 사이의 충돌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는 “산업안전보건법이나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라 하청 근로자에게 안전 조치를 강제하고 있어 원청은 이를 안 할 수가 없다”면서 “그런데 법에 따라 안전 조치를 충실히 하면 노란봉투법상 사용자의 지위에 서게 돼 하청 노조의 교섭 요구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함정에 빠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어느 쪽을 선택하든 불법이 되는 상황에서 기업들은 진정성 있는 안전 조치보다는 ‘하는 척’만 하는 형식적 대응에 치중하게 될 것”이라며 “글로벌 스탠더드와 거리가 먼 이 법은 결국 노사 관계를 불안하게 하고, 노동자의 실질적인 안전에도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백서원 기자 (sw10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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