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은 숫자가 아닌 구조…보여주기 물가 정책의 한계 [기자수첩-유통]
입력 2026.03.27 07:00
수정 2026.03.27 07:00
생태계 교란의 교훈…정책 개입이 부른 역효과
마오쩌둥·로베스피에르 사례…가격 통제 실패 반복
임대료·인건비 구조가 핵심…해법은 경쟁과 비용 개선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소비자들이 장을 보고 있다.ⓒ뉴시스
자연이나 시장의 원리는 늘 인간의 판단 앞에서 쉽게 무시된다. 중국 공산당 지도자 마오쩌둥(毛澤東)의 판단도 그랬다. 마오쩌둥은 대약진운동 당시 곡식 보호를 위해 참새 박멸을 지시했지만, 메뚜기 창궐과 대기근으로 이어졌고 농업 붕괴와 대규모 인명 피해를 불러왔다.
이런 정책 개입의 역효과는 역사적으로도 여러 차례 확인된 바 있다. 대표적인 게 프랑스 혁명 후 로베스피에르의 ‘반값 우유 정책’이다. 1793년, 물가 급등으로 민심이 악화되자 혁명기 권력 실세 로베스피에르는 서민 부담을 낮추기 위해 우유에 대한 가격상한제를 시행했다.
그러나 정부의 우유 가격 통제는 결국 건초 값 하락을 강제하게 됐다. 결국 건초를 만드는 농부는 수익이 나지 않자 건초더미를 다 태워 버리기 시작했다. 그 결과 우유 가격은 폭등했고, 버터·치즈 등 유제품 전반으로 가격 상승이 번지며 물가 불안을 키우는 도화선이 됐다.
이와 유사한 장면은 한국 경제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최근 이재명 정부는 라면과 식용유, 과자 등 생활 밀착 품목을 중심으로 가격 인하를 유도하며 시장에 직접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다. 과거 정부들이 보여온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은 흐름으로 물가 정책을 펼치고 있다.
기업들은 내수 침체 속 가격 인하 압박까지 겹치며 수익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원가 부담을 떠안은 채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지만, 이마저도 여건이 녹록지 않다. 결국 투자와 고용 축소, 품질 조정 등으로 대응해 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여당은 여전히 인기 위주의 물가 정책을 반복하고 있다. 스스로를 시장을 바로잡는 주체로 상정한 채 기업을 통제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라면 등의 품목이 내려봤자 국민이 체감하는 물가에는 거의 영향을 주지 못한다.
물론 사태를 이렇게 까지 만든 기업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가격 담합이나 원가를 빌미로 한 과도한 인상, 불투명한 유통 구조 등은 시장 질서를 훼손하는 명백한 문제다. 일부 기업의 일탈은 소비자 불신을 키우고, 결국 정책 개입의 명분을 제공하는 측면도 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가격 형성 과정을 ‘악의’로 단순화하거나, 행정적으로 눌러 해결하려는 접근은 또 다른 왜곡을 낳을 수밖에 없다. 시장의 문제와 정책의 한계를 구분해 보는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한 시점이다. 기업은 이익 집단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물가를 실질적으로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개별 품목 가격을 누르는 방식에서 벗어나 비용 구조 전반을 들여다보는 접근이 필요하다. 외식비와 생활비를 끌어올리는 핵심 요인인 임대료와 인건비, 배달 수수료, 물류비 등 고정비 부담을 완화하는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
아울러 경쟁을 촉진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근본적인 해법이다. 특정 산업에 대한 과도한 규제를 걷어내고, 신규 진입을 유도해 시장 내 경쟁을 활성화해야 가격이 자연스럽게 조정될 수 있다. 보이는 숫자를 누르는 대신 구조를 바로잡는 정책이 뒤따라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