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미 오른 캣츠아이…확장된 케이팝, 흐려지는 정체성 [D:이슈]
입력 2026.02.03 12:23
수정 2026.02.03 12:28
케이팝 외연 확장의 이면, 태권도처럼 '본진' 비어가는 국내 상황 경계해야
그래미 어워드(Grammy Awards) 무대에 오른 노래와 그룹을 두고 한국과 해외의 반응은 미묘하게 엇갈린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 OST '골든', 그리고 하이브와 게펜 레코드가 공동 제작한 글로벌 걸그룹 캣츠아이(KATSEYE) 모두 한국 제작진과 시스템에서 출발했지만 이를 '케이팝의 성과'로 볼 수 있는지를 두고 의견은 갈린다.
ⓒ그래미 공식 인스타그램
캣츠아이는 지난 1일(현지시간) 오후 열린 제68회 그래미 어워즈 '베스트 뉴 아티스트'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며 신인상 후보 자격으로 '날리'(Gnarly) 무대를 선보였다. 이외에도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부문 후보에도 이름을 올리며 두 부문 모두 수상은 불발됐지만, 케이팝을 기반으로 한 그룹 최초로 신인상 후보에 올랐다는 것 만으로 큰 성과를 남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내에서는 "케이팝 시스템으로 만든 그룹이 그래미에 섰다"는 평가가 뒤따랐지만 해외에서는 이들을 케이팝 그룹이 아닌 글로벌 팝 그룹으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더 짙다. 막내 윤채를 제외하면 모든 멤버가 미국, 스위스, 필리핀 등 국적의 외국인이며 활동 언어와 시장 역시 철저히 북미를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식 트레이닝과 제작 시스템을 거쳤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결과물은 기존 케이팝 그룹과는 다른 결로 소비되고 있다.
이 같은 경계의 혼란은 캣츠아이만 겪는 것이 아니다. 일본 현지화 그룹인 하이브의 앤팀(&TEAM), JYP엔터테인먼트의 니쥬(NiziU)·넥스지(NEXZ), 전원 일본인 멤버로 활동하며 글로벌 성과를 내는 엑스지(XG)와 중국 현지화 그룹인 SM엔터테인먼트의 웨이션브이(WayV)까지 한국 제작진과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되 각국 시장을 주무대로 삼는 그룹들이 코로나 전후를 기점으로 꾸준히 나오고 있다. 이들은 케이팝 산업의 확장선에 놓여 있지만 동시에 '이들을 케이팝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반복적으로 불러온다.
여기에 '케이팝 데몬 헌터스' OST '골든'의 사례는 논의를 한층 복잡하게 만든다. 해당 곡은 미국 애니메이션을 위해 제작됐지만 한국 작곡가가 참여해 음악적 완성도를 끌어올렸고 글로벌 차트에서도 성과를 냈다. 한국인이 만든 음악이라는 이유로 케이팝의 세계화 사례로 평가하지만, 가창자가 한국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도 아니며, 가사 역시 한국어가 아닌 이 노래를 케이팝으로 묶는 데에는 분명한 거리감이 존재한다.
이 같은 논쟁을 두고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지금은 '이게 케이팝이냐 아니냐'를 단정하기보다 케이팝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혼선으로 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재즈가 미국에서 시작됐지만 영국이나 유럽에서 만들어졌다고 해서 재즈가 아닌 것이 아니듯, 케이팝 역시 한국에서만 만들어지고 한국에서만 활동해야 하는 장르는 아니다"라며 "문제는 국적이나 언어가 아니라 그 결과물과 수익 구조가 어디로 귀속되느냐는 지점"이라고 짚었다.
지금은 케이팝이 '한국 가수가 부르는 음악'에서 '한국식 제작 시스템과 감각이 반영된 음악'으로 이동하는 과도기에 있다는 설명이다. 김 평론가는 "경계가 흐려졌다고 해서 케이팝의 가치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영향력이 넓어졌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외연 확장에만 집중하다 보면 정작 국내 기반이 약해질 수 있다는 점도 함께 경고했다. 김 평론가는 "해외 현지화와 글로벌 협업은 필요하지만 케이팝의 중심이 되는 국내 활동과 팬층을 동시에 단단히 하지 않으면 태권도처럼 전 세계에 퍼졌지만 정작 본거지는 비어 있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