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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하지 않아도 작동하는 문화: 로마의 대성전과 템플스테이 [김희선의 글로벌 K-컬처 이야기⑫]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6.01.23 14:00
수정 2026.01.23 14:00

아침의 로마는 생각보다 조용합니다. 관광객의 발걸음이 본격적으로 도시를 채우기 전, 오래된 돌바닥 위로 빛이 천천히 내려앉는 시간. 저는 그날 특별한 계획 없이 숙소 근처를 걷다가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앞에 섰습니다. 로마에는 성당이 너무 많아 어디까지가 특별한 장소인지조차 흐려질 만큼 익숙한 풍경이지만, 그중에서도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은 ‘대성전’이라 불릴 만큼 유서 깊고 유명한 곳입니다.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필자 촬영

성당 안은 대성전의 명성에 걸맞게 매우 화려했습니다. 금으로 장식된 천장과 진귀한 모자이크, 예수의 성물과 교황들의 무덤까지. 이곳이 세계 4대 가톨릭 대성전이라는 사실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분명했습니다. 가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대성전에 온 김에 한 시간에 한 번씩 진행된다는 미사에 참석해 보았습니다. 거대하고 화려한 공간 안에서 진행되는 미사가 놀라울 만큼 조용하고 나긋하다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화려함이 사람을 압도하는 대신, 그 안에서의 미사는 차분하고 조심스럽게 사람을 낮추고 있었습니다.


가톨릭 신자도 아니고 이탈리아어도 알아듣지 못했기에, 제가 이 미사에 참여하는 방식은 조금 달랐습니다. 의미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일찌감치 내려놓은 채, 주변 사람들을 따라 일어섰다가 앉고, 고개를 숙이고, 노래를 부르고, 행렬 뒤에서 성당 안을 천천히 한 바퀴 돌았습니다. 말의 의미는 사라졌지만 감각은 또렷해졌습니다. 노래와 오르간의 울림, 반복되는 동작의 리듬,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공간감, 마지막에 퍼지던 향의 냄새까지. 그 시간 동안 마음은 자연스럽게 가라앉았고, 흩어져 있던 감정들이 가슴속에서 정돈되는 듯했습니다. 이유 없이 눈물이 울컥 차오르기도 했습니다. 슬픔이라기보다는 욕심이 한 겹 내려앉는, 낯설지만 편안한 감각이었습니다.


이 감정은 종교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제가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걸까요.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순간, 우리는 해석하려는 욕망을 잠시 멈춥니다. 이해해야 할 대상이 사라지면 감각이 앞에 나섭니다. 익숙한 세계가 낯설어지는 순간, 낯선 세계는 오히려 새롭게 열립니다. 말을 알아듣지 못했고, 모든 것이 낯설었기 때문에 저는 그 미사에 더 깊이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지점에서 저는 한국의 절을 떠올렸습니다. 한국인들에게 절은 비교적 익숙한 공간입니다. 종교가 있든 없든 우리는 절을 발견하면 종소리를 듣고 향 냄새를 맡으며 잠시 머물다 내려옵니다. 불교를 깊이 이해하지 않아도, 그 공간에서 마음이 느려지는 경험은 낯설지 않습니다. 반대로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에게 절은 언어도, 의식도, 상징도 모두 낯선 장소일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낯섦 때문에, 그들은 그곳에서 우리와 비슷한 방식의 몰입을 경험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필자 촬영

그래서 템플스테이는 흥미로운 현상입니다. 불교 신자가 아님에도 많은 외국인들이 절에서 깊은 정서적 반응을 경험합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경험”이라는 표현이 반복됩니다. 더욱 인상적인 점은, 이렇게 조용하고 비언어적인 콘텐츠가 결코 방치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한국의 몇몇 사찰은 템플스테이라는 경험을 의식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정교하게 번역해 왔습니다. 해외를 향한 안내와 홍보는 꾸준히 이어지고, 신청 방식은 쉽고 친절하며, 그 과정에서 다양한 언어를 충실히 지원합니다. 유혹하지 않으면서도 외부의 사람이 그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문턱만을 낮춘 태도. 저는 이것이야말로 문화의 성숙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경험은 K-컬처를 다시 보게 합니다. 우리는 K-컬처를 종종 음악과 드라마, 영화 같은 ‘콘텐츠’로 설명해 왔습니다. 그러나 현장에서 해외의 반응을 가까이서 보다 보면,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은 이야기의 구조나 메시지보다 그 콘텐츠를 경험한 뒤의 ‘상태’라는 것을 자주 확인하게 됩니다. 무엇을 이해했는지가 아니라, 그 시간 동안 내가 어떤 마음이 되었는가 하는 기억 말입니다.


한국 문화가 해외에서 강하게 작동하는 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설명이 줄어드는 지점에서 자주 발생합니다. 침묵이 허용되고, 여백이 남아 있으며, 굳이 의미를 붙이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들. 템플스테이는 그런 점에서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오래된 K-컬처일지도 모릅니다. 설득하지 않고 가르치지 않으면서도, 어느 순간 사람을 다정한 상태로 데려가는 문화의 구조.


로마의 대성전에서 저는 종교를 믿게 된 것이 아닙니다. 대신 낯선 언어와 낯선 의식이 사람을 어떻게 열어놓는지를 경험했습니다. 이 경험은 제게 오래 남을 것입니다. 문화란 어쩌면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언제 말을 멈추느냐의 문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조용한 멈춤의 순간이,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김희선 Team8 Partners 대표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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