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학개미 압박하는 정부…원화 외면받는 국내 투자 환경 [추락하는 ₩ ②]
입력 2026.01.21 16:31
수정 2026.01.21 16:32
현금 살포 정책에 늘어난 원화 유동성
떨어지는 원화가치…구조적 개선 시급
“정치 목적 현금 살포 정책 중단해야”
21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뉴시스
원·달러 환율이 1500원 선을 위협하는 배경에는 대외적 불확실성뿐만 아니라 국내 정책 기조와 자본 시장의 구조적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특히 급격히 늘어난 원화 유동성과 국내 투자 환경을 저해하는 입법 기조가 원화 가치 하락을 가속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확장재정’의 함정…원화 유동성 과잉과 가치 하락
원화 가치 하락의 직접적인 원인 중 하나로 시중 통화량(M2)의 급격한 증가가 꼽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한국의 M2 증가율은 8.5%를 기록하며 동시기 미국의 증가율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준을 보였다. 이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와 정부의 확장적 재정 정책이 동시에 맞물린 ‘쌍둥이 확장’ 결과로 해석된다.
한국은행은 2024년 10월 이후 경기 침체 대응을 위해 9개월간 기준금리를 총 100bp 인하했다. 이와 함께 이재명 정부는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 등 현금성 지원을 포함한 대규모 확장 재정을 단행했다.
2026년 본예산은 전년 대비 8.1% 증가한 727조9000억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이같은 정책 조합은 시중에 원화 공급을 대폭 늘려 원화의 상대적 가치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특히 소비쿠폰 등으로 풀린 유동성과 부동산 규제를 피한 자금이 수익성을 찾아 해외 주식 시장으로 유입되면서 환율 상승 압력을 가중시키는 순환 구조가 형성됐다.
염명배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 지출이 증가하면 국내 유동성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고, 이는 환율을 끌어올리는 악순환을 초래한다”며 “민생을 명분으로 현금을 살포하는 정책이 원화 가치를 떨어뜨려 오히려 서민의 삶을 더 힘들게 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일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투자 매력 저하시키는 反기업 정책
국내 투자 환경의 매력 저하 역시 원화 약세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노란봉투법, 중대재해처벌법 강화, 상법 개정 논의 등 기업 규제를 강화하는 입법 기조가 이어지면서 국내 자본 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이탈하고 국내 자본은 해외로 이동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이 커짐에 따라 기업들은 해외 자회사의 배당금을 국내로 들여오는 대신 현지 투자를 늘리거나 달러로 보유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국내 기업의 해외 미환류 보유금은 1144억 달러(약 170조원)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환율 상승 주범은 서학개미”
당국은 환율 상승의 주요 원인으로 개인 투자자(서학개미)의 해외 투자를 지목하며 증권사 마케팅을 압박하는 등 수급 관리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실질 지표를 보면 자본 유출의 주체는 개인보다 기관, 특히 국민연금의 비중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2025년 1~3분기 일반정부(국민연금 등)의 해외주식 투자는 전년동기대비 92% 증가하며 개인 투자자(비금융기업 등)의 증가폭 74%를 크게 앞질렀다. 투자 금액 면에서도 국민연금의 해외 주식 투자 규모는 개인 투자자의 1.5배에 달한다.
현재 고환율은 정부가 추진하는 유동성 확대 정책과 기업 규제 입법이 맞물려 발생한 구조적 문제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염 교수는 “개인 투자가 환율을 흔들 정도의 규모도 아닐뿐더러, 투자자가 수익을 쫓아 이동하는 것을 탓해서도 안된다”며 “정부의 서학개미 규제는 시장을 왜곡하고 외국에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언급했다.
당국이 개인 투자자의 외화 수요를 억제하는 미시적 대응에 집중하는 사이, 정책 모순으로 인한 원화 가치 하락과 투자 환경 악화라는 근본 원인은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내세우는 서학개미 책임론이 정책 실패의 원인을 외부로 돌리는 ‘번지수 잘못 짚은’ 대응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염 교수는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적 목적의 돈 풀기를 중단하고, 경제 원칙에 충실한 원인 치료에 나서야 환율을 안정시킬 수 있다”며 “원화 가치를 올리고 국내 투자 매력을 높여서 자본이 스스로 머물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