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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빈칸을 채우는 또 다른 선택지 [관객 주체형 상영 문화①]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6.01.22 07:19
수정 2026.01.22 07:19

소규모 지역 영화제 문턱 높아

영화제, 취향과 관람 방식 중심으로 자체 기획

2025년 한국 극장가는 연간 누적 관객 수 1억 608만 명을 기록하며 외형상 시장 규모를 유지한 듯 보였다. 그러나 세부 지표를 들여다보면 질적 위기는 더욱 뚜렷하다. 극장가의 한국영화 점유율은 41.1%에 그쳤는데, 이는 영화진흥위원회가 공식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4년 이후 팬데믹 시기였던 2021년(30.1%)에 이어 두 번째로 낮은 수치다. 관객 수의 증감보다, 한국영화가 관객의 선택지 안에서 점차 비중을 잃고 있다는 점이 현재 상황을 보여준다.


이처럼 벼랑 끝에 몰린 한국영화계의 활로를 찾기 위해 정부는 '예산 증액'이라는 처방전을 꺼내 들었다. 정부는 올해 영화 분야 예산을 전년 대비 669억 원(80.8%) 증액한 1498억 원으로 확정했다. 코로나19 긴급 지원이 편성됐던 시기를 제외하면 역대 최대 규모다. 그러나 예산의 배분 구조를 살펴보면 지역 영화 생태계의 기반을 떠받치는 항목들은 여전히 공백 상태에 놓여 있다. 2024년 전액 삭감됐던 지역 영화문화 활성화 지원사업(8억 원)과 지역 영화 기획개발·제작지원 사업(4억 원)은 올해도 복원되지 않았다.


기존 사업비 12억 원이 복원되지 않은 가운데, 문화체육관광부는 별도의 정책 목표를 내세운 신규·확대 지원책으로 방향을 설정했다. 정부가 제시한 주요 정책은 ‘국내외 영화제 육성 지원’, ‘독립·예술영화 상영 지원’, ‘중예산 영화 제작 지원’ 세 가지다. 다만 이들 사업은 지역 영화문화 활성화나 지역 제작 기반을 직접적으로 대체하는 성격이라기보다는, 산업 전반의 경쟁력 강화와 유통 확대를 겨냥한 정책으로 설계돼 있다.


이 같은 구조 속에서 현장에서는 정책 효과에 대한 체감이 제한적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영화제 지원 사업은 국제 영화제 기준을 중심으로 설계돼 소규모 지역 영화제가 접근하기에는 여전히 문턱이 높고, 순제작비 20억 원 이상 80억 원 미만을 조건으로 하는 중예산 영화 제작 지원 역시 대규모 제작사가 거의 없는 지역 단위에서는 실효성이 낮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호러무비클럽·안동헤리티지영화제 GV

이로 인해 지역 영화 생태계를 직접적으로 떠받쳐 온 기존 사업의 공백은 해소되지 않은 채, 정책의 무게 중심만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지역 영화제나 소규모 상영 환경을 직접 지원하던 구조가 빠진 상태에서, 새로운 정책들이 그 역할을 충분히 대체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공백이 완전히 방치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공공 지원과 제도권 인프라에 기대기 어려워진 환경 속에서, 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 개인과 소규모 집단이 직접 상영과 프로그램을 조직하는 움직임이 존재한다. 이는 기존 영화제의 기능을 그대로 이어받는 방식이라기보다, 공모 기준이나 규모 논리에서 벗어난 영역을 중심으로 영화적 접점을 새롭게 구성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안동 시민이 참여해 출범한 ‘안동헤리티지영화제’는 이러한 흐름을 잘 보여준다. 지역 유산과 일상을 영화로 기록하고 공유하는 방식은, 영화제가 행정이나 전문 조직의 고유 영역이 아니라 지역 구성원의 참여를 통해 형성될 수 있음을 드러낸다. 이는 영화제를 하나의 고정된 제도로 보기보다, 조건 변화에 따라 재구성되는 문화적 장치로 바라보게 만든다.


대학가에서도 유사한 움직임이 관찰된다. 지난해 처음 열린 것으로 알려진 ‘밤티 영화제’는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출발한 상영 시도다. 완성도나 성과보다 공개와 공유에 방점을 두고 출발했다. 개인이 만든 포스터 한 장에서 시작된 시도는 SNS를 통해 반응을 얻으며 구체화했고, 이후 부산국제영화제 방문을 계기로 영화제의 형식을 갖추게 됐다. 사전에 정교하게 설계된 프로젝트라기보다, 환경 변화와 반응 속에서 점진적으로 형성된 구조에 가깝다.


이 움직임은 더 작고 세밀한 취향 공동체로도 이어진다. 공포영화라는 장르 하나를 보고 모이는 ‘호러무비클럽’이나, 정해진 극장 없이 일상의 공간을 빌려 독립영화를 트는 ‘무중력 상영장’ 같은 모임들이 그것이다. 이들은 영화제를 대체하거나 위기의 결과로 등장했다기보다, 이전부터 제도권에서 충분히 포착되지 않았던 취향과 관람 방식을 중심으로 형성돼 왔다.


최근 지역 영화관과 상영 인프라가 약화된 환경 속에서, 이러한 모임들은 영화가 사회적으로 작동하는 방식 자체를 다시 묻게 만든다. 대규모 극장이나 제도권 지원에 기대지 않더라도, 영화가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이들은 영화를 ‘보는 행위’에 그치지 않고, 함께 보고 이야기하며 관계를 만드는 경험을 중심에 둔다. 제도와 인프라가 축소되는 상황 속에서 등장한 이 작은 상영과 영화제들은, 한국영화계가 말해온 ‘다양성’이 실제로는 어떤 규모와 거리에서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현재진행형의 사례다.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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