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저작권 전쟁’ 속 한국형 AI 학습 해법 과제[AI시대와 저작권③]
입력 2026.01.19 15:01
수정 2026.01.19 15:02
속도 VS 허락…‘선사용 후보상’ 딜레마
출처 모호한 저작물…‘클리어링 하우스’ 제시
AI산업계 “공공 인프라라도 풀어야…”
전문가 “과잉 규제 경계…AI 시장 창출 모색”
서울 서초구 aT센터에서 열린 2023 스마트 워크 엑스포 코리아 & 스마트 컨택센터 엑스포 코리아에서 관계자가 고객과 대화를 스스로 학습하는 AI상담 코파일럿에 대한 시연을 하고 있다.ⓒ뉴시스
인공지능(AI)과 저작권의 충돌이 ‘전쟁’이라 불릴 만큼 격화되고 있다. AI 학습을 위해 저작물을 사전 동의 없이 활용하고 사후 보상하는 ‘선사용 후보상’ 방식이 대안으로 부상했으나 이를 둘러싼 산업계와 창작계의 평행선은 좁혀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전면 금지도, 무제한 허용도 정답이 될 수 없는 지금, 한국 사회는 산업 경쟁력 확보와 창작 생태계 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한국형 해법’의 분수령에 서 있다.
과거에서 찾는 힌트…‘대화’가 ‘부흥’ 만든다
임문영 국가인공지능전력위원회 부위원장이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출범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뉴시스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대한민국 인공지능(AI) 행동계획(AI액션플랜)’은 세계 3대 AI 강국 도약을 향한 정부의 강한 의지를 담고 있다.
하지만 장밋빛 청사진 이면에는 AI 학습 데이터의 활용 범위와 권리 관계를 둘러싼 해법 없는 공방이 연일 평행선을 달리는 모양새다.
AI학습과 저작권은 지난 2011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당시 전면 개정이 이뤄진 저작권법이 변곡점이다.
당시 정부는 일시적 복제 개념을 도입하고 공정이용 규정을 구체화하는 한편, 온라인서비스제공자(OSP)의 책임 범위를 재정립하는 등 파격적인 체계 개편을 단행했다.
창작자의 권익 보호와 산업적 이용의 균형을 꾀했던 이 룰의 재정립은 결과적으로 ‘K-콘텐츠’가 글로벌 무대로 도약하는 결정적 토양이 됐다.
다만, 현재의 갈등은 과거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게 문제다. 전문가들은 규제에 앞서 복잡하게 얽혀있는 이해관계자와의 의견 수렴을 거쳐 주장의 간극을 좁혀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지식재산연구원 관계자는 “주장의 간극이 크다면 그 차이에 해당하는 부분을 기금으로 조성해 우회하고, 이를 사후 배분하거나 시장 인프라 구축 비용으로 활용하는 유연함이 필요하다”며 “특히 저작권자 미상인 저작물에 대해서는 이해관계자가 공동 운영하는 ‘클리어링 하우스(Clearing-house)’를 통해 투명한 거래 체계를 만드는 것이 실질적인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제시했다.
클리어링 하우스는 서로 다른 시스템이나 서비스를 연결한 통합 지원을 통해 서로 다른 인증 방식이나 과금 방식을 처리하고, 정산해주는 서비스를 의미한다.
스타트업엔 ‘장벽’ 된 규제…공공 인프라로 뚫어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 2026 LG전자 전시관에서 관람객들이 LG전자의 AI 기반 차량용 솔루션을 체험하고 있다.ⓒ뉴시스
AI산업 현장의 목소리는 절박하다. 한국인공지능·소프트웨어산업협회 관계자는 “기업들은 AI학습 관련 법적 우려 때문에 검증된 데이터만 쓰려다 보니 성능 개발에 한계가 있다”며 “치열한 글로벌 경쟁 속에서 공공저작물이라도 우선적으로 개방해 숨통을 틔워줘야 한다”고 토로한다.
특히 고영향 AI 판단 기준은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에게 또 다른 진입장벽이 될 우려가 크다.
오는 22일부터 시행되는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AI기본법) 제2조에 따르면 고영향 AI는 사람의 생명, 신체의 안전·기본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거나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인공지능시스템이다.
그러나 고영향 AI의 기준이 불분명해 소규모 기업의 경우 이를 판단할 역량이 부족, 관련 비용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여기에 더해 추후 AI 학습과 저작권을 둘러싼 부작용을 막기 위한 정부 차원의 인프라 구축도 시급하다.
지난해 9월 정부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이 ‘AI 기본법 하위법령집’을 공개하면서 ‘고영향 AI 판단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까닭이다.
한국지식재산연구원 관계자는 “중소·중견기업의 경우 이같은 가이드라인이 장애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며 “고영향 AI로 판단될 경우 AI기본법 제34조에 따른 사업자 책무가 부과되므로 업계는 법 시행 전 관련 시스템에 대한 내부 컴플라이언스 체계를 선제적으로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판단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판단을 의뢰하면 신속하게 판단해 위험성을 필터링을 할만한 기조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뒤처진 추격자’의 숙명…과잉 규제 경계해야
학계에서는 한국이 AI 분야에서 미국, 중국을 뒤쫓는 ‘추격자’라는 냉정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형 해법은 정부가 모든 것을 획일적으로 결정하는 과잉 규제를 경계하고, 사회적 합의가 도출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등 시장이 작동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인프라를 지원하는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병태 KAIST(카이스트) 경영대 명예교수는 “AI 학습은 영화를 그대로 상영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데이터를 통해 학습하는 과정이다. 학생이 고전을 읽고 글쓰기를 배운 것을 저작권 침해로 보지 않듯, AI 학습을 저작권의 틀 안에 가둘 것인지에 대해서는 국제적으로도 합의된 바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은 2012년부터 이미 AI 투자를 시작했는데 우리는 10년이나 늦었다”며 “지금은 예산을 따질 때가 아니라 AI로 돈을 벌 수 있는 시장을 만들어주는 것이 우선”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