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소프트파워 외교력을 키우자
입력 2026.01.02 08:00
수정 2026.01.02 08:00
‘헬조선’에서 대~한민국으로
한국, 외교의 전통이 없다
이재명 정부의 외교, 갈 길이 멀다
지난해 11월 31일부터 1박 2일 일정으로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폐막하고 있는 모습. ⓒ 데일리안 DB
‘헬조선’에서 대~한민국으로
20년 전인가? 한때 ‘헬조선’이란 말이 대유행했다. 입시지옥에 취업지옥, 취업해도 직장 상사 갑질 지옥, 운 좋게 훌륭한 상사 만나도 출근 지옥에 퇴근 지옥. 결혼 상대 만나기도 어렵고, 운 좋게 천생연분 만나 결혼해도 집 한 칸 마련하기 하늘에 별 따기. 결혼도 하고 몸 뉠 집 한 칸 장만하고 귀여운 애 낳아도 육아지옥에 교육지옥. 모든 게 지옥같다고 헬조선이었다. 과연 한국은 헬조선인가?
현대 21세기 문명사회 문명인은 일할 때 컴퓨터, 쉴 때 대화면TV, 움직일 때 승용차 그리고 항상 손에는 핸드폰이 쥐여 있어야 한다. 문명인의 4대 필수품을 자급자족하는 나라가 과연 지구상에 몇 나라나 될 것 같은가? 선진국이니 G-7이니 해도 4개 필수품 모두 자급자족하는 나라 몇 안 된다. 독일만 해도 자동차는 강해도 핸드폰, 컴퓨터, TV가 약하고, 어떤 나라는 모두 약하다. 의외로 몇 없다. 미국, 일본, 중국, 한국 정도? 한국은 4대 필수품 모두 저가품이 아니고 프리미엄 제품으로 생산하고 남겨서 해외 수출한다. 미국만 해도 TV 수출 없다. 그렇다면 한국은 세계 4대 국가인가?
한국 반도체는 1, 2위를 다툰다. 조선은 미국에 기술을 전수해주는 수준이다. 6.25 때 탱크 한 대 없던 나라가 U-보트의 나라 독일과 잠수함 수출을 놓고 경쟁한다. 전투기까지 수출한다. 이제는 방산 수출 10위권이다. 대~한민국, 만세! 대~한민국으로 부르는 데 익숙해져서 한국이 정말 위대한 나라라고 착각할 때가 많다. 그러나 어떤 점에서는 한국은 아직도 멀었다. 소프트파워가 그렇고 외교가 그렇다. 한국의 외교력은 아직 G-7에 크게 못 미친다.
한국, 외교의 전통이 없다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는 외교가 없었다. 주변국이래야 중국과 일본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워낙 중국은 거대한 선진국이었고 일본은 오랫동안 미개한 후진국이었다. 16세기 접어들어 처음으로 외교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주변국 일본이 오랜 전국시대를 끝내고 강력한 군사대국으로 성장해 한반도를 침략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을 간신히 견디자 이번에는 대륙의 정세가 크게 변했다. 17세기 명청 교체기에 접어들었는데, 여전히 조선은 외교 감각이 없어 명나라에 미련을 두다가 정묘호란, 병자호란의 참화를 겪게 된다.
다시 200년 뒤인 19세기, 이제는 동아시아 정세만 바뀐 것이 아니라 세계정세가 바뀌었다. 아편전쟁과 난징 조약으로 어제까지 세계의 중심이던 중국이 동네북으로 전락했다. 아직도 조선은 외교를 알지 못했다. 중국인 황준헌이 쓴 조선책략에 의지해, 친중결일연미(親中 結日 聯美), 중국과 친하고 일본과 결속하며 미국과 연대하는 전략을 채택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거대 강대국 청나라와 러시아가 차례로 맥 없이 일본에 무너질 줄 누가 알았으랴? 믿고 의지하던 미국이 일본에 조선반도의 종주권을 양해해주고, 일본이 조선을 합병할 줄 누가 알았으랴?
이재명 정부의 외교, 갈 길이 멀다
한국이 경제 대국, 군사 대국을 자랑하지만 과연 그에 걸맞은 외교력을 갖고 있는가? 문재인 대통령은 국제회의에만 참석하면 외톨이로 지냈다. 중국에 방문해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노영민 대사를 데리고 밥을 먹었다. 외국 나간 대통령에게 밥 같이 먹어줄 중국 고위관리 하나 없었다. 대통령 전용기는 김정숙 여사님 차지였다. 그게 세계 6대 강대국의 외교인가? 이재명 대통령 취임 후 두 차례의 국제회의에서도 한국 외교의 민낯이 드러난다.
먼저 지난해 6월 캐나다 G-7 정상회의. 이재명 대통령은 인도, 영국, 일본, 캐나다 등 4개국 정상과 연쇄 회담을 가졌다고 국내 언론은 보도했다. 4차례 정상 회담이 모두 6월 17일 ‘하루’에 이뤄졌다. 오찬·만찬 전혀 없이. 한-인도 정상회담은 오전이었지만, 영국, 일본, 캐나다와의 정상회담은 ‘오후’에 몰아 진행됐다. 각 정상회담 소요 시간은 기껏 30분. 더군다나 통역이 끼어 있기 때문에 통성명하고 공식 수행원 몇 명 소개하고 날씨 인사 나누는 게 고작이었을 것이다. 가장 오래 지속된 한일 정상회담의 논의결과가 셔틀 외교를 복원하자는 것이었다. 내일 모레 이임하는 일본 총리의 약속이었다. 이렇게 진행하는 정상회담은 없다. 국내에서 정당 중진들이 만나도 이런 식으로 가볍게 만나지는 않는다. 미리 일정 잡고 장소 정하고 의제 조율하고 메뉴 정하고 식후 차는 무엇으로 할지까지 세심하게 정한다.
국가 간 하물며 정상회담이야 말해 뭐하랴? 보통 정상회담은 몇 달 전부터 세심하게 두 나라 정부가 협의하고 조율한다. 정상회담 준비 자료를 보면 각국 정상은 물론 공식 수행원들의 취향까지 낱낱이 정리해두고 준비한다. 커피는 블랙인지 크림을 넣는지 설탕을 빼는지 설탕을 넣으면 각설탕을 몇 개 넣는 지까지 미리 파악해 준비한다. 찻잔도 아무 브랜드나 꺼내지 않는다. 중부 유럽식 마이센이나 헤렌드를 고집할 수도 있고, 프랑스나 영국은 자국의 세브르, 웨지우드나 로얄 앨버트로 자존심을 내세우기도 한다.
물론 의전은 허례허식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사소한 것까지 신경 써서 치밀하게 준비하는 것이 정상 외교다. 한국 외교는 의전도 제대로 못한다. 지난 경주 APEC 정상회의에서도 그랬다. 회의장에 입장하는 국가 정상이 엘리베이터를 내려 기다리는 한국 대통령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한참 걸어가 이재명 대통령과 악수한 뒤에는 돌아서서 회의장에 들어가도록 동선이 설계됐으니 말이다. 심지어 엘리베이터를 따라 내린 공식 수행원들이 정상을 따라 걸어가려다 한국측 실무자가 제지하는 장면이 TV 중계 화면에 그대로 잡혔다.
희망은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그런 식으로 정상회담을 후다닥 해치웠다. 여름 방학 끝날 즈음 밀린 방학 숙제하듯이. 아마도 유럽 외교가의 복잡한 의전은 대통령 스타일이 아닐 것이다. 그렇게 해치운 방학 숙제가 실력이 될 수는 없듯이, 이런 식으로 억지로 해치운 정상회담이 국가 간 협력에 큰 도움될 수는 없을 것이다. 유럽 외교의 오랜 관행과 전통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나폴레옹 전쟁 후 1812년 빈 궁정에서 확립됐으니 모두 따라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은 외교 DNA가 있다. 후발 약소국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꺾고 3국을 통일한 비결은 김춘추, 김인문 부자의 외교력이었다. 고려의 서희 장군이 거란의 1차 침입을 격퇴한 것도 분명 외교력이었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지원군을 끌어들여 왜군을 물리친 것도 역시 외교였다. 대한민국이 진정 대~한민국이고자 하면 외교 역량을 키워야 한다. 진정한 강대국이 되려면 소프트파워가 필요하다. 그리고 외교 역량은 소프트파워의 핵심이다.
ⓒ
글/ 김구철 금강대 연구교수·전 TV조선 선거방송기획단 단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