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진실 공방'까지 불사하는 쿠팡…로저스호 전략에 남는 물음표
입력 2025.12.31 14:51
수정 2025.12.31 14:57
자체 조사 앞세운 쿠팡, 정부 반박에 정면 대응
피해 규모·국정원 개입 놓고 진실 공방 확전
사과보다 해명과 반박에 방점 찍힌 로저스호 행보
"강대강 전략 벗어나 본질에 집중해야"
국회에서 열린 쿠팡 연석 청문회에 출석한 해롤드 로저스 쿠팡 임시대표.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개인정보 유출로 물의를 빚은 쿠팡 사태가 정부와의 진실 공방으로까지 번지면서 더욱 확전되는 모양새다.
대표 교체라는 초강수 이후에도 피해 규모를 둘러싼 쿠팡의 자체 조사 발표와 정부의 공개 반박이 반복되며 갈등은 확산되는 분위기다. 정면 대응 전략을 택한 로저스호가 위기 수습보다는 충돌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 속에, 대응 방향을 둘러싼 의문도 커지고 있다.
쿠팡은 지난 25일 언론을 통해 자체 조사 결과를 밝혔다. 쿠팡은 유출자가 3300만명 개인정보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명분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또 범행에 사용된 데스크톱 하드 드라이브와 노트북 등 관련 장비를 모두 회수했다는 점도 함께 공개하며 추가 피해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쿠팡의 자체 조사 결과에 정부가 반박에 나서면서 상황은 복잡해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쿠팡이 주장하는 내용은 민관합동조사단에 의해 확인되지 않았다"며 일방적인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쿠팡은 정부의 입장에 대해 다시 한 번 해명에 나섰다. 쿠팡 측은 지난 14일 개인정보 유출 혐의를 받는 인물과 최초로 대면한 사실을 관계 당국에 보고했으며, 이틀 뒤인 16일에는 해당 인물이 범행에 사용한 데스크톱 하드디스크를 확보했다는 내용을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18일에는 유출자가 폐기한 노트북을 중국 내 하천에서 수거해 정부에 넘겼다며, 당시 상황을 담은 영상과 사진 자료를 함께 공개했다.
이러한 갈등 양상은 30일부터 국회에서 진행된 쿠팡 침해사고 및 개인정보 유출, 불공정거래, 노동환경 사태 파악과 재발 방지 관련 연석 청문회에서도 계속됐다.
청문회는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정무·국토교통·기후에너지환경노동·기획재정·외교통일위원회 등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했다.
이 자리에서도 쿠팡 측은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정부기관의 지시로 중국에서 유출 용의자를 만났으며, 로저스 대표는 그 기관이 국정원이라고 주장했다.
로저스 대표는 "왜 한국 정부는 이 사실을 공개하지 않느냐, 왜 감추냐"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하지만 국정원은 쿠팡 측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로저스 대표를 위증죄로 고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국정원 측은 자료 요청 외에 어떠한 지시나 명령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국정원은 "'쿠팡은 유출자와 연락을 원치 않았지만, 국정원이 유출자와 연락 및 접촉을 지시했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며 도리어 '유출자 접촉 관련 문의에, 최종 판단은 쿠팡이 하는 것이 맞다'고 수차례 강조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쿠팡 대표의 허위 발언이 국가기관의 신뢰를 저하하는 중대한 사안임을 엄중 경고한다"고 했다.
쿠팡 측이 제안한 유출 보상안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쿠팡이 개인정보 유출 보상으로 '5만원 쿠폰 지급'을 밝혔지만 사실상 이용 금액이 5000~1만원 쿠폰에 불과해 '꼼수 보상안'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그러나 로저스 대표는 "전례 없는 보상안"이라며 여론의 지적을 수용하지 않는 태도를 고수했다.
청문회 내내 쿠팡 측의 태도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특히 김범석 의장이 불출석 한 것과 관련해 책임 부재가 아니냐는 지적이 잇따랐다.
앞서 김 의장은 이미 예정된 해외 일정이 있어 출석하기 어렵다는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 이런 비판에도 쿠팡은 청문회 내내 철벽 방어를 이어갔다.
이에 국회의 반응은 더욱 격앙됐다.
안호영 의원은 "쿠팡 최고책임자가 나와 국민 앞에 사과한 뒤 사고의 원인을 밝히고 재발 방지를 위해 분명한 약속을 해야 한다"며 "출석을 회피하는 것은 국회와 우리 국민을 무시하는 오만불손한 태도"라고 비판했다.
로저스 대표의 태도 논란도 빚어졌다.
전날 청문회에서 로저스 대표는 영문 사과문에 쓰인 'false'(사실이 아닌) 표현에 대한 질문에 "한국 정부의 지시에 따라 성실하게 협력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저희가 정부에 협력하지 않고 있다는 허위정보(misinformation)가 있다. 저희가 자의적으로 했다고 생각하느냐"고 발언하면서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들기며 격앙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질의를 한 정 의원이 "됐다. 그만하라"며 답변을 끊자 그는 불쾌감을 감추지 않고 "Enough"라고 맞받았다.
이러한 태도 문제는 이튿날 청문회에서도 논란의 대상이 됐다.
정일영 의원은 "(전날) 제가 질의할 때는 (로저스 대표가) 큰 소리로 흥분해 책상까지 쳤다. 안하무인격"이라며 "김범석 (쿠팡Inc) 의장이 나오지 않아 할 수 없이 로저스 대표를 상대로 하고 있는데 그런 식으로 답변하고 한국 국회, 정부, 국민을 무시할 것이라면 한국에서 떠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청문위원들은 단순한 태도 논란을 넘어 로저스 대표의 위증 혐의 고발과 국정조사 추진 등 강경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황정아 의원은 "범 킴(김범석 의장 영어 이름)을 지키고 미국만 신경 쓰겠다는 저 오만방자한 외국인을 즉시 위증 (혐의로) 고발해야 한다. 대한민국 공권력을 능멸한 책임도 물어야 한다"며 국회 모욕 혐의도 추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최민희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은 로저스 대표의 위증 고발에 더해 김범석 의장 등 핵심 증인들의 불출석을 거론, "(조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오기형 의원은 "(쿠팡이) 오늘 (청문회가) 끝나면 더는 논쟁이 안 될 것이라 착각하는 게 아닌가 싶다"며 "국정조사 등을 통해 후속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로저스 대표는 질타가 쏟아지자 "한국 국회와 본 위원회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며 "제 답이 완벽히 통역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이처럼 쿠팡 사태는 개인정보 유출이라는 단일 사고를 넘어 정부·국회·정보기관까지 얽힌 전면 충돌 국면으로 번지고 있다.
자체 조사 결과를 앞세워 정면 대응에 나선 쿠팡과, 이를 공개적으로 반박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는 정부·국회의 대치가 이어지면서 사안은 수습 국면에 들어서기는커녕 오히려 확전되는 양상이다.
특히 로저스 대표 체제 출범 이후 쿠팡이 선택한 대응 방식은 ‘사과와 수습’보다는 ‘해명과 반박’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피해 규모, 유출 경위, 정부 개입 여부 등을 둘러싸고 쿠팡의 주장이 반복적으로 부각되면서 논점은 복잡해졌고, 그만큼 논란의 범위도 확대됐다.
실제 국회에서 국정조사가 거론되는 상황에서 로저스호가 선택한 ‘강대강’ 전략이 위기 수습의 해법이 될 수 있을 지에 대한 의문은 더욱 짙어지고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쿠팡이 정부·여당과의 대치 국면을 자제하고 다시 사과와 보상이라는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본질은 이런 진실 공방이 아니다. 정말 중요한 개인정보 유출 부분과 향후 대응 전략 등 실질적인 문제는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이런 소모적 논쟁에서 벗어나 다시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