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내수 위기 넘긴 기재부…조직개편 시험대 [2025 정책뷰]
입력 2025.12.26 15:41
수정 2025.12.26 15:41
12·3 비상계엄…내수 부진·수출 하락
새정부 출범…추경 후 ‘소비쿠폰’ 지급
APEC서 한미 관세협상 극적 타결
18년 만에 ‘재경부·기획처’…예산 잃은 재경부
서울 시내의 한 전통시장에서 시민들이 채소를 구매하고 있다.ⓒ뉴시스
기획재정부는 2025년 한 해 동안 유달리 험난한 경제의 파고를 넘나들었다. 12·3 비상계엄 직후 내수 시장은 급격히 얼어붙었고, 대외적으로는 한미 관세협상이 압박으로 작용하며 수출 여건마저 위태로워졌다.
짙은 불확실성에 휩싸였던 한국 경제는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전환점을 맞았다.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침체된 내수에 숨을 불어넣었고, 동시에 한미 관세협상을 타결하며 대외 리스크도 일정 부분 해소했다.
이제 기재부는 또 다른 관문 앞에 서 있다. 18년 만에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로 분리되는 조직 개편을 앞두고, 단기 경기 부양과 중장기 성장 전략을 동시에 시험받는 국면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 사상 최악 성적표…성장률 0~1%대 최저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에 수출입 컨테이너가 쌓여 있다.ⓒ뉴시스
한국 경제는 올해 사상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지난해 12·3 비상계엄 이후 정치적 불확실성이 급격히 확대되면서 내수 시장이 얼어붙은 데다, 한미 관세협상이라는 대외 과제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26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88.4로 전월 대비 12.3포인트(p) 급락했다. 소비자심리지수는 100을 기준으로 이를 웃돌면 소비자들이 경제 상황을 낙관적으로, 밑돌면 비관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급격히 위축된 소비심리는 연초까지 이어졌다. 올해 1월(91.2), 2월(95.2), 3월(93.4) 모두 기준선인 100을 넘지 못하며 부진한 흐름을 지속했다. 새 정부 출범 전까지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으면서 내수 부진이 장기화됐다는 평가다.
실제 소비 지표도 이를 뒷받침한다. 국가데이터처의 ‘2024년 연간 산업활동 동향’에 따르면 민간 소비 흐름을 보여주는 소매판매액지수는 전년 대비 2.2% 감소했다.
소매판매액지수는 2022년(-0.3%), 2023년(-1.4%)에 이어 감소세를 이어왔는데 계엄사태 이후 감소 폭이 눈에 띄게 커졌다.
경제 전망 역시 비관적이었다. 국내외 주요 경제 기관은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0~1%대로 낮춰 잡았다. 기획재정부는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을 0.9%,로 제시했고, 한국개발연구원(KDI)도 0.9%로 전망했다. 한국은행은 1.0%로 소폭 높게 잡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0.9%,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1.0%를 각각 전망했다.
대외 상황도 녹록지 못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1월 출범하면서 관세를 둘러싼 통상 마찰 가능성이 커졌고, 이는 수출 불확실성을 한층 키웠다.
여기에 국정 공백이 장기화되며 미국과의 협상은 수개월간 지연됐고, 대외 리스크 관리에도 차질이 불가피했다. 정치적 불확실성, 내수 침체, 대외 통상 리스크가 동시에 겹치며 올해 한국 경제는 삼중고에 직면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새정부 출범…추경 집행, 관세협상
서울 시내의 상점가에 민생회복 소비쿠폰 사용 가능 안내문이 붙어 있다.ⓒ뉴시스
한국 경제는 새정부 출범을 기점으로 전환점을 맞았다. 6월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20조원 규모의 2차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고, 지역 상권 활성화와 소비 진작을 위한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내놓았다.
두 차례에 걸쳐 이뤄진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은 내수 반등을 견인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KDI에 따르면 소비쿠폰 지급 후 6주간 소비쿠폰 사용 가능 업종의 매출은 지급 직전 2주 대비 평균 4.9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업종별로는 의류·잡화·미용(12.1%), 음식점·식음료(6.4%) 등 분야에 매출 진작 효과가 컸다.
기재부는 “매출액 증가분은 보수적으로 추정했다. 3분기에는 소매판매가 13분기에 플러스 전환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고환율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이 다시 부각되면서 향후 소비 회복세가 재차 둔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수개월간 이어져 온 한미 관세협상도 매듭지었다. 한미 양국은 지난 10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계기로, 한국산 자동차·부품에 대한 관세를 25%에서 15%로 인하하고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에 1500억 달러를, 연간 200억 달러 한도 내에서 2000억 달러 투자를 추진하는 조건으로 협상을 타결했다.
이에 따라 올해 3분기 우리나라 해외직접투자는 총투자액 기준 160억6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146억9000만 달러) 대비 9.3% 늘었다. 대미 관세협상 타결로 불확실성이 해소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기재부 관계자는 “글로벌 경기둔화 우려가 상존하고 공급망 및 국제통상 질서가 재편되고 있는 상황에서 해외로 진출하는 우리 기업이 안정적인 경영활동을 영위할 수 있도록 주요 투자 대상국가와 다각도로 소통과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소비 반등했지만 고환율이 변수…‘환율플레이션’ 경고등
외환당국 고강도 구두개입의 영향으로 원달러 환율이 하락세를 이어가는 가운데 26일 서울 중구 명동의 환전소에 환율이 표시되어 있다.ⓒ뉴시스
다만, 고환율발(發)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추후 소비 회복세가 다시 꺾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른바 ‘환율플레이션’이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장중 1450원대까지 치솟았다가 하락 전환했다. 이같은 원·달러 환율 상승은 원화 가치 약세를 의미하며 이는 곧 에너지와 수입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 결국 수입 물가 상승은 소비자 물가를 자극하고, 가까스로 되살아난 소비 심리를 다시 위축시킬 가능성도 있다는 의미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환율이 높은 상황이 유지되면 경기 회복을 방해하는 요소가 될 것”이라며 “산업 구조 상 중간재를 수입·가공하는 중소기업 등이 영향을 받게 된다. 또 우리나라의 경우 에너지 수입을 많이 한다. 이 과정에서 전반적인 물가 상승에 전가·발현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환율 변동성 대응에 나서고 있다. 국민연금의 외환시장 대응을 유연하게 하기 위해 전략적 환헤지 협의체를 신설했고, 기재부는 국내 시장 복귀 계좌에 대한 세제지원과 기업의 해외자회사 수입배당금 익금불산입률 상향 조치를 내놓기도 했다.
환율 안정 여부가 향후 소비 회복의 지속성과 하반기 경기 흐름을 가를 핵심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내년 1월 기재부 해체…예산권 잃은 경제부총리
기획재정부 전경.ⓒ데일리안DB
기재부는 내년 1월 2일부터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로 쪼개진다. 정부 조직 개편에 따라 현행 기재부 체제는 해체되고, 경제 정책과 예산 기능이 각각 나뉘게 된다.
이에 따라 재경부를 이끌게 될 구윤철 경제부총리 산하에는 기존 차관보실을 비롯해 국제경제관리관실, 세제실, 기획조정실, 국고실 등이 신설된다. 재경부는 거시경제·재정·조세·국고 관리 기능을 중심으로 경제 정책 전반을 담당하게 된다.
기획처는 국무총리 소속으로 편제되며, 예산 편성 기능과 미래 전략 기능을 맡는다. 특히 기존 미래국을 확대 개편해 중장기 국가 발전 전략을 총괄하는 ‘미래전략기획실’이 신설될 예정이다.
이 같은 조직 개편으로 재경부 수장이 된 구 부총리는 다시 한 번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그동안 기재부의 핵심 권한으로 꼽혀온 예산 편성권이 기획예산처로 이관되면서 경제 부총리의 정책 추진 동력이 약화됐다는 지적이 거듭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금융정책 부문을 통합하려던 구상마저 무산되면서 역할 축소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조세 업무는 재경부가 유지하게 됐지만, 조세추계과 신설을 제외하면 조직과 기능 전반에서 큰 변화는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따라 재경부가 향후 경제 정책 조정 과정에서 얼마나 실질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구 부총리는 조직 개편안 발표 이후 줄곧 “다른 부처와 적극적으로 소통해 나가겠다”고 강조해 왔지만 예산 기능을 상실한 상황에서 부처 간 조정과 정책 컨트롤타워 역할을 원활히 수행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