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비 지고 하이엔드 떴다…오픈런 시장의 세대교체
입력 2025.12.24 14:32
수정 2025.12.24 14:32
대학로의 상징이자 ‘가성비’ 공연의 대명사였던 오픈런 연극 시장이 저물고, 그 빈자리를 독보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고가의 ‘하이엔드’ 이머시브 공연이 채우고 있다. 관객의 소비 성향이 단순 관람에서 직접 참여하는 체험으로 이동하면서 공연 시장의 생존 방정식이 급변하는 모양새다.
ⓒ미쓰잭슨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의 최신 지표는 이러한 오픈런 시장의 위기를 수치로 증명한다. 2025년 상반기 기준, 대학로 오픈런 연극 및 뮤지컬 티켓 판매액은 약 124억 7487만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약 12.5% 감소한 수치다. 같은 기간 티켓 예매 수 역시 131만 건으로 약 12.3% 줄어들며 시장의 하락세를 여실히 드러냈다.
더 주목할 지표는 전체 연극 시장 내 오픈런 공연이 차지하는 매출 비중이다. 2022년 팬데믹 회복기 당시 약 60%(해당 값은 여러 특성에 포함된 작품들로 인해 중복값이 존재함. 예를 들어 대학로 공연이면서 오픈런 공연인 경우)에 달했던 오픈런 티켓 판매액 비중은 2024년 약 27%로 하락한 데 이어, 2025년 상반기에는 12.9%까지 추락하며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2024년 연극 부문 티켓 판매액 상위 10위권 내에 이름을 올린 작품도 ‘한뼘사이’ 단 1개에 불과하다.
이러한 시장 변화를 상징하는 단적인 사건이 지난 8월 발생한 연극 ‘옥탑방 고양이’의 종연이다. 15년간 대학로를 지키며 누적 관객 260만 명을 기록한 이 작품은 오픈런 시장의 신화로 불렸다. 그러나 2만 원 이하의 저렴한 가격과 보편적인 로맨스 서사에 의존하던 기존 모델은 변화한 관객의 눈높이를 충족하지 못하고 끝내 막을 내렸다.
반면, 서울 충무로 대한극장을 개조해 매키탄호텔로 재탄생시켜 오픈런 공연 중인 ‘슬립노모어’는 정반대의 행보를 걷고 있다. 평일 16만 원, 주말 21만 원에 달하는 고가 티켓임에도 불구하고 5개월째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이는 대학로 오픈런 연극 평균 티켓 가격의 약 10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관객들은 이제 ‘저렴한 관람’보다 ‘비싸더라도 특별한 경험’에 지갑을 열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연 시장의 중심축이 ‘보는 공연’에서 ‘참여하는 공연’으로 완전히 이동했다고 분석한다. 천편일률적인 로맨틱 코미디에서 탈피해, 관객이 극 중 세계관에 직접 개입하고 배우와 상호작용하는 ‘이머시브’ 형식이 침체된 시장의 강력한 타개책으로 부상했다. 가성비를 중시하던 관객층은 OTT 등 대체 콘텐츠로 이탈한 반면, 오프라인 현장에서만 누릴 수 있는 고유한 가치를 쫓는 하이엔드 소비는 더욱 강화된 결과다.
한 공연 관계자는 “결국 대학로 오픈런 시장의 쇠퇴는 단순한 경기 침체의 영향이라기보다, 시장 패러다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구조적 한계”라며 “오픈런 공연이 신인 배우의 등용문이자 공연 입문자의 관문 역할을 해왔던 만큼, 기존 모델의 질적 고도화와 새로운 형식의 결합이 생존을 위한 필수 과제”라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