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갈등의 이면, 묵묵히 환자 곁을 지키는 사람들 [기자수첩-ICT]
입력 2025.12.24 07:00
수정 2025.12.24 07:16
정책 공방에 가려진 병원의 풍경
‘집단 이기주의’ 시선…사명감으로 버텨온 시간 생각해야
ⓒ데일리안 AI 포토그래피
“에이, 무슨 말씀이세요. 이런 걸로 힘들어하면 의사 못하죠.”
의사들은 신체 일부가 절단되거나 피를 흘리는 환자를 대상으로 응급수술을 하는 일이 일상이다. 심적으로 힘들지 않냐고 묻자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담담한 말 속에는 환자에 대한 의사의 당연한 책무가 녹아 있었다.
우리는 드라마 속 의사들의 이미지를 쉽게 떠올린다. 뛰어난 실력의 에이스이거나, 갈등을 빠르게 중재하거나,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인물들이다.
현실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좀 더 세속적인 부러움이 담겨 있다. 높은 연봉과 안정적인 지위를 보장받는 ‘성공한 직업’의 대명사가 의사다. 일반인과 비교할 수 없는 보상과 정년 걱정 없는 삶을 누린다는 이미지가 따라붙는다.
이렇게 대단하고 똑똑하며 많은 것을 가진 이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얽힌 부분에서 목소리를 낼 때 그들을 향한 부러움의 시선은 분노로 바뀐다. 정부 정책에 대해 의사단체가 밝힌 ‘반대 입장’은 종종 ‘집단 이기주의’로 치부된다. 이미 충분히 좋은 조건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기득권이 줄어들자 반발하는 것 아니냐는 시선이다.
그러나 병원 현장에서 마주한 풍경은 이처럼 단순한 구도와는 거리가 멀었다. 많은 의사들은 오늘도 묵묵히 진료실과 수술실을 오가며, 맡은 환자를 먼저 생각하기 바쁘다. 논쟁에 참여하기보다 눈앞의 환자를 우선해야 한다는 판단, 그리고 그 판단이 일상이 된 상태다. 생명을 살린다는 사명감 하나로 부족한 잠을 견디며 수술실에 서는 의료진에게,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은 또 하나의 피로로 더해지고 있었다.
취재를 마치고 병원 엘리베이터에 올랐을 때도 그 차이는 분명했다. 전공의로 보이는 의료진이 엘리베이터에 같이 탔을 때, 마스크 너머로 짙은 다크서클이 보였고 손에는 보고서로 보이는 종이 뭉치가 들려있었다. 손목에 테이핑을 한 의사도 종종 볼 수 있었다. 피곤에 찌든 표정으로 말없이 서 있던 그의 모습은 그날 마주한 가장 현실적인 ‘의사’의 얼굴이었다.
환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 개선, 분명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의료비 부담을 줄이고, 과잉 진료를 관리하는 장치는 강화돼야 한다. 다만 그 과정에서 의사들이 지속가능하게 일할 수 있는 조건까지 함께 설계되지 않는다면, 의료현장은 다시 '개인의 헌신'에 의존하는 구조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갈등은 일단락됐지만, 구조는 여전히 정리되지 않았다. 이제 필요한 것은 다시 편을 가르는 일이 아니라, 병원을 지키는 사람들이 버틸 수 있는 힘을 유지시켜주는 일이다. 이들의 에너지가 헛되이 소진되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의정 갈등 이후 우리가 마주한 가장 현실적인 질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