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카카오톡
블로그
페이스북
X
주소복사

각자도생에서 공동전략으로, 생존의 법칙 [위기의 K콘텐츠, 연합 빅딜 시대①]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5.12.23 07:30
수정 2025.12.23 07:30

한국 콘텐츠 산업이 단독 경쟁 구도에서 벗어나 ‘연합 체제’로 이동하는 흐름이 눈에 띄게 빨라지고 있다. 제작·투자·배급·극장·유통 등 산업의 주요 축들이 거의 동시에 제휴를 발표하고 있는 최근의 흐름은, 개별 기업이 공격적 확장을 꾀한 결과라기보다 팬데믹 이후 누적된 시장 압박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신호에 가깝다. 하이브미디어코프–마인드마크, 쇼박스–KT스튜디오지니, 롯데컬처웍스–메가박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바벨 레이블, 플러스엠–KDDI 등 서로 다른 영역의 기업들이 비슷한 시기에 협력 구조를 선택한 점 역시 우연이라기보다 구조적 환경 변화에 대한 집단적 대응으로 해석된다.


ⓒ쇼박스, 카카오엔터테인먼트, 플러스엠

팬데믹 이후 급증한 제작비는 기존 시장의 취약성을 더욱 노출했고, OTT 성장세 둔화와 투자 위축까지 겹치며 프로젝트 초기 자본 조달이 불안정해졌다. 극장 관객은 팬데믹 이전의 수준을 회복하지 못해 배급·상영 수익 기반이 약해졌고, 글로벌 OTT 경쟁에서는 한국 제작사의 협상력이 예전만 못한 상황이다.


한 영화 관계자는 “지금은 어느 회사든 혼자 버티기 어렵다. 제작비는 계속 오르는데 회수 구조는 더 불안정해졌고, OTT 변수도 커졌다. 서로 부족한 지점을 채우지 않으면 프로젝트를 굴리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이어 “국내 시장만으로는 오래 버티기 힘들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상황이라 각 회사가 활로를 찾기 위해 다양한 방식의 파트너십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연합별 개별 협약을 뜯어보면 제작–투자–배급–극장–해외시장이라는 다섯 축 모두에서 구조적 요인이 확인된다.


하이브미디어코프–마인드마크 연합은 제작과 투자·배급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현재 시장이 요구하는 ‘안정적 포트폴리오’ 전략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하이브미디어코프는 ‘내부자들’을 시작으로 ‘덕혜옹주’ ‘곤지암’ ‘남산의 부장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서울의 봄’ ‘하얼빈’ 등 굵직한 흥행·화제작을 꾸준히 선보인 제작사다. 마인드마크는 ‘데시벨’ ‘달짝지근해: 7510’ ‘30일’ ‘보통의 가족’ 등 중·대형 상업영화와 함께 A24의 ‘시빌 워: 분열의 시대’를 국내 배급하며 투자·배급 역량을 확장해 왔다.


다만 최근 몇 년간 제작비 상승과 흥행 변동성이 커지면서, 개별 프로젝트 단위의 리스크를 감당하기 어려워졌다는 공통된 현실도 이들을 묶은 배경으로 작용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연합을 “히트 경험이 있는 제작사조차 단독 운용이 버거워진 시장의 단면”으로 본다.


KT스튜디오지니–쇼박스 연합은 배급사와 플랫폼 기반 스튜디오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사례다. 쇼박스는 ‘도둑들’ ‘암살’ ‘택시운전사’ ‘파묘’ 등 한국 영화 흥행사를 대표하는 메이저 투자·배급사지만, 최근에는 대형 프로젝트 중심 구조가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해 왔다. KT스튜디오지니 역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신병’ 등 드라마 히트작을 보유했음에도, 영화 영역에서는 ‘안정적인 제작 모델 구축’이란 과제가 남아 있었다.


두 회사는 제작비 분담과 동시에 AI 기반 제작 효율화, 신인 창작자 발굴을 전면에 내세우며 기존 블록버스터 중심 구조와 다른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이는 흥행 성과를 쌓아온 기업들조차 제작 방식의 전환 없이는 지속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공유했음을 보여준다.


극장 산업 역시 독자 생존이 힘든 국면이다. 극장 업계 2위인 롯데시네마와 3위 메가박스가 내년 통합을 목표로 추진 중인 결합은, 관객 수 정체와 특별관 유지비 증가, 지역관 노후화로 악화한 수익 구조에 대응하기 위한 선택이다. 단순 점유율 경쟁이 아니라, 배급 협상력과 운영 효율을 동시에 끌어올리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어려운 환경이라는 위기 인식이 통합 논의의 출발점이 됐다.


해외 협력 강화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배급사 플러스엠과 일본 KDDI의 협업은 한국 영화가 국내 흥행만으로 제작비를 회수하기 어려워진 현실을 반영한다. 플러스엠은 ‘서울의 봄’과 ‘범죄도시3·4’를 통해 최근 극장가에서 가장 강력한 흥행 성과를 거둔 배급사지만, 동시에 ‘대도시의 사랑법’ ‘리볼버’ 등 성과가 엇갈린 작품들도 경험했다. KDDI는 일본 통신 대기업으로, 영화 레이블 KDDI 픽처스를 통해 ‘청설’, ‘에스파: 마이 퍼스트 페이지’ 등 한국 영화의 일본 배급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양사의 협업은 흥행 성공 여부와 무관하게 수익 창구를 다변화하지 않으면 구조적 한계를 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 출발했다.


일본의 한 콘텐츠 업계 관계자는 “한국 영화는 일본에서 안정적인 팬층이 있지만, 기존처럼 개봉까지 6개월 넘게 걸리면 관심이 식는다. 한국과 직접 협업하면 개봉 시점을 조율할 수 있고 한국 배우 프로모션과도 연계할 수 있다”며 “결국은 매출 확대를 위해 새로운 수익 창구를 확보하는 것이 모든 기업의 공통된 목표”라고 설명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바벨 레이블 협업은 제작 설계 단계부터 글로벌을 전제하는 방식의 변화다. ‘신문기자’, ‘에고이스트’ 등을 연출한 후지이 미치히토 감독이 이끄는 바벨 레이블은 일본 내에서도 감독 중심 제작 시스템을 대표하는 스튜디오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웹툰·웹소설 기반 IP 확장과 플랫폼 자원을 결합해, 단일 국가 성과에 의존하지 않는 구조를 구축하려 한다. 이는 개별 프로젝트 흥행 성패보다 제작 구조 자체를 재설계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이러한 연합 체제의 확산은 선택지라기보다 시장의 지속 가능성을 회복하기 위한 필수 재편 과정으로 받아들여진다. 제작비 상승, 수익구조 불안정, 글로벌 경쟁 심화 등 복합적 불확실성 속에서 개별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리스크를 파트너십을 통해 나누는 방식이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는 국면이다.


한 배급 관계자는 “지금의 협력은 단기 처방이 아니라 앞으로 영화·콘텐츠 산업을 움직일 기본 구조가 될 것”이라며 “어떤 조합이 생겨나는가에 따라 향후 시장의 권력 구조도 바뀔 수 있다”고 전망했다.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댓글 0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