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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량 규제의 덫에 좌절하는 '내 집 마련'의 꿈 [기자수첩-금융]

정지수 기자 (jsindex@dailian.co.kr)
입력 2025.12.05 07:06
수정 2025.12.05 07:06

정책이 삼켜버린 기회의 문

"퇴직금 깨고 주식도 팔아"

금융 건전성 스스로 해쳐

ⓒ데일리안 AI 삽화 이미지

서울에 거주하는 30대 박 모씨의 한숨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신혼집 입주를 목전에 두고 잔금을 치르기 위해 신용대출을 받으려 했던 그가 연말을 맞아 대출 창구가 닫혔다는 냉정한 통보를 받으면서다.


금융 당국이 가계대출 총량 관리에 고삐를 죄자 은행들이 연말에 가까워질수록 대출 휴업에 들어가고 있다.


박 씨는 "정 안 되면 주식을 다 팔고 퇴직금도 중도 해지 해야 한다"며 "이렇게까지 대출이 안나올 줄 몰랐다"고 토로했다.


그의 한숨은 비단 그 한 개인의 고통만 담은 것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보통의 실수요자들이 겪는 불안과 좌절을 대변하는 목소리였다.


정부가 올 하반기 연이어 대출 규제를 강화하고 나섰다. 금융 당국은 가계대출 총량 증가세를 확실히 막아 금융 시스템의 건전성을 확보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에 은행들은 올해 실행 예정인 주택구입용 주택담보대출을 막고 전세대출, 심지어는 생활안정자금 목적의 주담대도 틀어막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가계대출 목표치를 초과하는 은행은 내년도 대출 총량까지 삭감해야 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은행들이 연말까지 아예 빗장을 걸어 잠그면서, 실수요자들은 금리 수준을 차치하고라도 아예 돈을 빌릴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사라져 버렸다.


물론 한국 경제를 짓누르는 가계대출의 관리는 금융 안정성을 위해 필수적인 과제다.


실제 가계대출의 증가세는 일정부분 잡힌 모습이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국내 5대 은행의 지난달 말 기준 주담대 잔액은 610조9284억원으로 한 달 새 2823억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올해 들어 가장 적은 순증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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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문제는 규제의 칼날이 주택 마련이라는 생애 최대의 과제를 앞둔 실수요자들에게까지 향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무자비한 규제는 모든 실수요자들을 일률적으로 '잠재적 위험 집단'으로 간주하면서 금융 시장에서 퇴출시킨다는 우려를 낳았다.


투기 수요를 억제하려던 규제가 정작 내 집 한 채만 보고 성실하게 저축해 온 서민들의 꿈을 짓밟은 것이다.


박 씨처럼 급하게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이들은 결국 본인의 금융 건전성을 스스로 해치는 선택지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안전한 미래 자산을 위해 모아둔 퇴직금을 당장의 구멍을 메꾸기 위해 끌어다 쓰면 장기적인 빈곤 위험을 키울 수 있다.


또한 주식 등 투자 자산 급매는 개인의 장기적 재정 계획 자체를 송두리째 흔든다.


이마저도 여력이 되지 않는 서민들은 결국 제도권 밖 금융으로 내몰릴 수도 있다.


강력한 규제로 가계대출의 총량 증가는 일정 부분 억제됐다.


당국이 오로지 총량 관리에 집중하는 동안, 자금을 가장 절실히 필요로 하는 실수요자들의 숨통은 조여들었고 미래는 불안정해졌다.


정부는 금융 건전성 확보라는 정책의 목표를 위해 실수요와 투기 수요를 명확하게 분리하는 정교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


각 자금의 최종 목적을 면밀히 파악해, 내 집 마련의 꿈이 좌절되고 미래 자산마저 흔들리는 실수요자들의 희생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된다.

정지수 기자 (jsindex@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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