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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륜이 무기다”… 무대 중심에 선 시니어 스타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5.11.05 08:17
수정 2025.11.05 08:19

과거 조연이나 극의 무게를 잡아주는 역할에 머물렀던 시니어 배우들이 당당히 무대 중심으로 나서며 흥행과 담론을 이끌고 있다. 신구, 박근형, 손숙, 박정자 등 대한민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원로 배우들이 올해 쉴 틈 없이 무대를 채우고 있다. 단순히 원로 배우에 대한 예우에서 그치지 않고 관련 기획 공연과 연극제들이 연이어 기획되며 시니어층을 문화계의 핵심 주체로 하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원로배우 신구와 박근형의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 장면 ⓒ파크컴퍼니

2025년 연극계는 그야말로 ‘거장들의 해’라 불릴 만하다. 시니어 배우들은 단순한 출연을 넘어, 자신들의 연기 인생 전체를 응축한 듯한 작품들로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전달한다.


대표적인 무대는 지난 5월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다. 이 작품에서 신구와 박근형은 각각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로 분해, 인간의 끝없는 기다림과 존재의 부조리함을 노련한 호흡으로 풀어냈다. 반세기가 넘는 두 배우의 연기 경력이 더해져, 작품이 담고 있는 실존적 고뇌를 압도적인 깊이로 전달했다는 평을 받았다.


박근형은 이에 앞선 1월엔 손숙과 ‘세일즈맨의 죽음’으로 부부 호흡을 맞췄다. 현대 비극의 고전으로 꼽히는 이 작품에서 두 배우는 평범한 가장 윌리 로먼과 그의 아내 린다 로먼의 삶과 꿈, 그리고 좌절을 절제되면서도 폭발적인 연기로 그려내며 관객들의 공감을 샀다.


지난 10월에는 신구, 박정자, 손숙, 이호재 등 한국을 대표하는 원로배우가 총출동한 연극 ‘생(生)연극-이것은 살아있는 연극이다’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무대에 올랐다. 작품은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자신의 실제 삶과 연기 인생을 반추하는 형식으로, 배우 본연의 모습과 극 중 인물이 교차하며 ‘삶 자체가 연극’임을 증명하는 감동적인 메시지를 선사했다. 이호재는 이에 앞서 2024년 말 연극 ‘퉁소소리’에서 늙은 최척 역을 맡아 해설자로서 극을 이끌며 관록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러한 거장들의 활약과 더불어, 시니어 세대의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운 기획들도 잇따르고 있다. 서울시뮤지컬단이 제작한 창작 뮤지컬 ‘다시, 봄’은 50대 여성들의 삶을 진솔하게 다룬 작품으로, 실제 50대 배우와 시민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갱년기, 가족을 위한 헌신 등 중년 여성의 현실을 ‘생활밀착형 수다 뮤지컬’이라는 유쾌한 형식으로 풀어냈다. 2022년 초연 이후 호평을 받으며 올해 지역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현재(11월 3일~9일) 서울 대학로에서는 ‘제5회 할무이 연극제 락(樂)’이 한창이다. ‘날좀보소’ ‘토티’ 등 4개의 시니어 극단이 참여하는 이 연극제는 시니어 배우들이 과거를 회상하는 것을 넘어,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예술가’로서의 자신을 증명하는 무대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이 외에도 서울시 민간축제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올해 처음 진행된 ‘제1회 시니어 뮤지컬 페스타 – 싱어게인’처럼 시니어 세대가 주인공이 돼 무대에 오르는 등 아마추어 시니어들이 전문 무대에 설 기회 또한 확대되고 있다.


시니어 배우와 콘텐츠가 문화계 중심으로 부상하는 현상은 두 가지 사회 변화와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먼저 대중문화 주 소비층의 연령대 상승이다. 과거 10~20대에 집중되었던 문화 소비 지형이 변화하며, 이들 스타와 함께 나이 들어간 40~60대가 탄탄한 구매력을 갖춘 핵심 관객층으로 자리 잡았다. 또 시니어 스타들의 적극적인 소통 행보다. 이들은 권위적인 원로의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방송, OTT, SNS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젊은 세대와 스스럼없이 소통한다는 것이다.


한 공연 관계자는 “시니어 배우들은 이제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는 상징에 머무르지 않고 수십 년간 쌓아 올린 연륜과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바탕으로 현세대와 공감하고, 문화 콘텐츠의 폭을 넓히는 주체로 활약하고 있다”면서 “이들의 무대가 더욱 풍성해질 수 있도록, 세대를 아우르는 깊이 있는 콘텐츠 기획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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