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입은 공연①] 195만원 패키지도 완판, ‘가치’ 파는 공연들
입력 2025.07.28 14:01
수정 2025.07.28 14:01
"단순 관람 넘어 유대감·희소성 강화"
VIP 마케팅 공연계 새 성장 동력으로 부상
지난 7월 고양종합운동장 주경기장 콘서트에서 최고가 195만원의 호텔패키지를 매진 시킨 아이돌 그룹 블랙핑크. ⓒYG엔터테인먼트
“요즘 VIP 패키지는 단순한 ‘상품’이 아닙니다. 팬과 아티스트가 함께 만드는 하나의 ‘이벤트’이자, 평생 기억될 ‘추억’을 파는 거죠. 가격표에 찍힌 숫자를 넘어서는 가치를 어떻게 설계하고 전달하느냐가 성공의 관건입니다.” (케이팝 공연 관계자 A씨)
‘프리미엄화’는 최근 공연계에서 하나의 중요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VIP 패키지가 출시와 동시에 매진되고,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특별한 경험들이 새로운 수익 모델로 자리 잡았다. 이는 단순히 좋은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을 넘어, 돈으로 살 수 있는 ‘특별한 경험’과 ‘희소성’에 기꺼이 지갑을 여는 소비자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의 정점에는 케이팝(K-POP)이 있다. 그룹 블랙핑크는 지난 7월 고양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열린 월드투어 콘서트에서 최고가 195만원의 ‘호텔패키지’를 선보였다. 5성급 호텔 2박 싱글룸 숙박권과 공연 1회 관람권, 공식 굿즈 1개 증정 등이 포함된 해당 패키지 상품은 전석 매진됐다. 티켓 예매처인 놀 티켓이 지난해 초 도입한 ‘플레이 앤 스테이’(PLAY&STAY)의 일환으로, 주로 케이팝 해외 관객을 위한 패키지로 선보였다가 지금은 국내에서도 판매된다.
해외 아티스트들의 내한 공연 역시 VIP 마케팅의 각축장이다. 지난 4월 내한 가수 중 역대 최다 회차(6회), 최다 관객(32만명)을 동원했던 밴드 콜드플레이는 1장당 108만원짜리 ‘얼티밋 스피어스 익스피리언스 패키지’ 티켓을 판매했다. 25만원 상당의 지정석 관람권 1매와 공원 전 무대 위 사진 촬영, 백스테이지 투어, 한정판 굿즈 등이 제공되는 티켓이다.
같은 장소에서 올해 10월 내한 공연을 앞둔 미국 힙합 스타 트래비스 스캇은 사전 파티 참여와 한정판 굿즈를 포함한 ‘프리 쇼 파티 패키지’를 100만원에 판매 중이고, 같은 달 내한하는 밴드 오아시스 콘서트도 일반 스탠딩석 입장권(18만7000원)에 23만원을 얹은 41만7000원에 스탠싱석 티켓 1매, VIP 한정 머천다이즈 아이템, VIP 팔찌를 포함한 VIP 패키지를 판매했다.
세종 대극장 로비에서 진행된 최현석 셰프의 파인 다이닝. 만찬 다음날 서울시국악관현악단 창단 60주년 공연과 연계한 특별 이벤트로, 식사와 공연을 포함한 가격 20만원 티켓 50장이 완판됐다. ⓒ세종문화회관
백스테이지를 보고, 사전 파티에 참석하는 등의 ‘경험 마케팅’은 클래식, 뮤지컬, 연극 등 다른 장르로 빠르게 확산하며 각 장르의 특성에 맞게 진화하고 있다.
국내 최초 뮤지컬 전용 극장인 샤롯데씨어터의 ‘레스토랑 몽드샬롯 패키지’는 편의성과 고급화를 결합한 고전적인 성공 사례다(현재는 몽드샬롯 대신, 뮤지컬펍 ‘커튼콜’과 협업한 ‘커튼콜인샬롯’을 운영 중이다). 공연 전후의 동선 낭비 없이, 공연과 결합한 콘셉트로 꾸며진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한 이후 공연을 관람하는 식이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커튼콜인샬롯’ 역시 마찬가지다.
세종문화회관이 올해 새롭게 선보이고 있는 ‘세종인스피레이션’도 극장 공간을 ‘경험의 확장’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공연예술의 경계를 넘어 공간, 장르, 감각을 확장하는 새로운 극장 경험을 주기 위해 시작한 실험적 시리즈로, 지난 4월 처음 시작됐다. 당시 서울시국악관현악단 창단 60주년을 맞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로비에서 최현석 셰프와 협업한 만찬을 선보였다. 4만원 상당의 공연 관람권 1회와 만찬을 포함해 50명 한정으로 판매한 인당 20만원의 사전 티켓은 금세 매진됐다.
지난 5일부터 시작된 예술 워크숍 ‘일무의 시간’도 ‘세종 인스피레이션’의 일환으로, 유네스코 세계인류무형유산인 종묘제례악의 의식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서울시무용단의 작품 ‘일무’와 연계된 워크숍이다. ‘일무의 시간’엔 분재 예술가 최문정 작가의 분재의 이론과 식재 방법 등을 소개하고, 참가자들은 ‘일무’ 중 ‘춘앵무’의 영감을 적용한 디자인으로 식재한다. 서울시무용단 한지향, 유재성 단원도 참석해 공연을 소개하고 무용수로서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세종문화회관은 분재 워크숍과 ‘일무’ VIP 티켓을 30만원에 내놓았다.
안호상 세종문화회관 사장은 “무대와 객석 간 경계를 넘어 미식과 음악의 융합, 자유로운 변주를 관객에게 소개하며 공연장의 새로운 패러다임 제시하려 한다”면서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영역의 예술을 융합하고 확장하며, 공연장뿐만 아니라 예술 간 문턱도 낮춰 진정한 복합 문화 공간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공연계의 VIP 마케팅은 교감, 희소성, 편의성, 지적 만족감, 친밀감 등 다층적인 가치를 설계하고 이를 타깃 고객에게 정확히 전달하는 정교한 전략으로 진화하고 있다. 단순히 객단가를 높이는 것을 넘어, 충성도 높은 팬덤을 공고히 하고,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핵심적인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는 셈이다.
한 공연 관계자는 “경험 제공 마케팅은 관객에게 공연 관람 경험을 더 풍부하게 하는 것을 넘어 작품과의 정서적 유대감을 강화하는 역할도 한다”면서 “기존 팬덤의 충성도가 높아지는 것은 물론, 새로운 관객층을 끌어들이는 데도 효과적”이라고 평했다. 이어 “이 같은 소통 방식의 다변화가 공연계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동력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