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업 너머를 보라 [기자수첩-금융]
입력 2025.07.17 07:02
수정 2025.07.17 11:54
성장 없는 분배는 '모래 위의 성'
반짝 랠리 후 현실 과제 직시해야
금융주의 주가가 연일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데일리안 AI 이미지 삽화.
바야흐로 금융주의 시대다.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등에 업고 주가가 연일 고공행진하면서, '만년 저평가주'라는 오명은 옛말이 된 듯하다.
각 금융지주는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해 수백억원에서 많게는 조단위의 자사주 소각 계획을 발표하고, 50%에 육박하는 주주환원율 로드맵을 발표했다.
회사가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하면 발행 주식 수를 줄이기 때문에 주당순이익이 높아지고, 주주 가치가 올라간다. 주주들의 환호가 연일 커지고 있는 이유다.
하지만 이 화려한 상승세의 뒤편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현재의 주가 상승은 '주주환원 확대'라는 목표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사주 소각은 즉각적인 주가 부양 효과를 낸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그룹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담보하는지는 의문이다. 배당 늘리기라는 단기적 결과에만 매몰돼, 미래 성장 동력 확보 등 현실적인 과제를 해결할 시간을 놓칠 수도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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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업의 환호성이 가리고 있는 첫 번째 현실은 이미 코앞에 닥친 생존 경쟁이다. 은행의 진짜 경쟁 상대는 타 은행이 아닌, 손안의 스마트폰을 장악한 핀테크·빅테크 기업이다.
간편결제와 송금 시장을 넘어 대출 비교, 자산관리 서비스 등 은행 주도 서비스를 파고들면서 은행의 미래 고객인 젊은 세대를 흡수하고 있다. 디지털 세대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기술 투자와 조직 문화의 혁신이 절실하다.
그러나 지금처럼 벌어들인 이익을 자사주 소각과 배당에 우선적으로 쏟아붓는 구조에서는 미래를 위한 투자가 상대적으로 약해질 수밖에 없다.
두 번째 현실은 '해외 시장 진출' 한계다. 업계에서는 이미 국내 시장이 인구 감소와 고령화 심화 등 구조적인 변화로 역성장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해외 시장 진출이 필수다. 그러나 동남아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금융지주가 글로벌 시장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해외에서 현지 은행 및 핀테크와 경쟁해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과, 국내에서 확보한 이익으로 주가를 관리하는 것 중 무엇이 진정한 밸류업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진정한 밸류업은 단순히 주주에게 이익을 얼마나 돌려주느냐는 분배의 문제를 넘어, 미래에도 지속적으로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성장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를 넘기 위해 자산을 줄이고, 주당순이익을 높이기 위해 자사주를 소각하는 식의 재무적인 기술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금의 주가 상승이 모래 위에 쌓은 성이 되지 않으려면, 금융사 경영진들은 밸류업 너머를 봐야 한다.
단기적인 주가 보다, 10년 뒤 어디에 서 있을 것인지를 증명해야 한다. 주주환원 축제가 끝난 뒤 마주할 진짜 미래에 대한 고민을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너무 늦을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