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겪어본 적 없는데 끌리는…가요계, 레트로 바람 여전 [D:가요 뷰]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5.06.23 14:01
수정 2025.06.23 14:01

올해 국내 가요계는 눈부신 글로벌 성과와 함께 한편으로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는 ‘레트로’ 바람이 여전히 거세다. 최첨단 사운드와 비주얼로 무장한 아이돌 그룹이 세계 시장을 호령하는 지금, 역설적이게도 대중의 시선은 1990년대와 2000년대의 감성으로 향하고 있다.


크리에이터 랄랄은 최근 ‘율(YUL)’이라는 부캐릭터로 가요계에 당당히 출사표를 던졌다. 율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활동했던 R&B 디바의 모습을 완벽하게 재현한다. 과장된 헤어스타일과 반짝이는 의상, 세기말 감성이 물씬 풍기는 뮤직비디오는 물론, 음악적으로도 그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는 데 성공했다.


율의 데뷔곡 ‘아니라고 말해요’는 1990년대 유행했던 소울 R&B 장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곡이다. 애절한 멜로디와 폭발적인 고음, 다소 과장된 듯한 창법은 당시 디바들의 전형적인 특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음원은 발매 직후 주요 차트 상위권에 올랐다. 이는 단순히 유튜버의 팬덤에 기댄 성과가 아닌, 10대와 20대 초반의 젊은 세대에게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밈(meme)’이자 놀이 문화로 소비된 것이다.


2000년대 ‘둘이서’ ‘다가와’ 등의 히트곡으로 대한민국을 휩쓸었던 가수 채연은 유튜브를 통해 자신의 전성기를 직접 재현하며 다시 한번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그는 ‘2005채연’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당시의 스타일링과 말투, 행동을 그대로 보여주는 콘텐츠로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특히 채연의 히트곡 ‘둘이서’를 요즘 스타일로 편집해 부른 영상은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하며 큰 화제를 모았다. 단순한 추억팔이에 그치지 않고, 과거의 자신을 현재의 플랫폼으로 당당히 끌어와 젊은 세대와 소통하는 장을 마련했다. ‘레트로’가 단순히 과거를 복제하는 것을 넘어, 현재의 트렌드와 결합했을 때 얼마나 큰 파급력을 가질 수 있는지를 증명한다.


아이유는 레트로를 가장 세련되고 성공적으로 활용하는 아티스트로 손꼽힌다. 그가 선보이고 있는 리메이크 앨범 시리즈 ‘꽃갈피’는 단순한 재현을 넘어, 원곡에 대한 깊은 존중과 자신만의 독창적인 음악적 해석을 더해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발매된 ‘꽃갈피 셋’ 역시 발매와 동시에 음원 차트를 석권하며 아이유의 막강한 영향력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이 앨범에서 아이유는 박혜경의 ‘빨간 운동화’, 부활의 ‘네버 엔딩 스토리’(Never Ending Story) 등 시대를 풍미했던 명곡들을 자신만의 청아한 음색과 섬세한 감성으로 재탄생시켰다.


아이유의 ‘꽃갈피’가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옛 노래를 다시 부르는 데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는 편곡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원곡이 가진 고유의 매력은 살리되, 동시대적 감각을 잃지 않는 균형을 유지한다. 랄랄과 채연이 ‘콘셉트’로서의 레트로를 전면에 내세웠다면, 아이유는 음악 그 자체의 힘으로 시대를 초월하는 레트로의 가치를 증명해낸 셈이다.


가요계에 부는 레트로 바람은 사회문화적 현상과도 맞물려 있다. 복고를 새롭게 즐기는 경향을 의미하는 뉴트로가 1020세대에게서 두드러지는데, 이들에게 과거의 문화는 촌스럽거나 낡은 것이 아닌, 희소하고 독특한 경험으로 인식된다. 디지털 시대에 태어나 아날로그 감성을 접해보지 못한 이들에게 LP판, 카세트테이프, 90년대 패션 등은 흥미로운 놀이의 대상이 된다.


또 ‘재미’와 ‘B급 감성’의 추구다. 랄랄의 ‘율’과 채연의 유튜브 콘텐츠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그 안에 담긴 ‘병맛’ 혹은 ‘B급 감성’에 있다. 완벽하고 세련된 것만을 추구하는 주류 문화에 대한 피로감을 느낀 젊은 세대는 다소 어설프고 과장되더라도 솔직하고 유쾌한 콘텐츠에 열광한다. 이는 완벽하게 계산된 아이돌 그룹의 세계관과는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한 가요 관계자는 “가요계 레트로 열풍은 지나간 유행의 반복이라기 보다, 현재의 대중문화 트렌드와 소비자의 심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물”이라며 “경험해 보지 못한 세대에게는 신선함으로, 그 시절을 추억하는 세대에게는 아련함으로 다가서는 레트로 코드는 이제 가요계의 확고한 흥행 공식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고 분석했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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