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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善終…‘사회적 약자’ 보듬고 개혁에 앞장

김상도 기자 (marine9442@dailian.co.kr)
입력 2025.04.21 18:50
수정 2025.04.21 20:16

교황청 “삶의 전부를 주님과 교회를 섬기는 데 헌신”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4년 8월 14일 오전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을 통해 입국해 영접 나온 인사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 뉴시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21일(현지시간) 선종(善終)했다. 88세. 역사상 첫 남미 출신으로 266대 교황에 선출돼 즉위한지 12년 만이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교황청은 이날 오전 폐렴과 기관지염 등으로 투병해오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상을 떴다고 발표했다. 교황청 궁무처장인 케빈 페렐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오늘 아침 7시 35분에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셨다”며 “그는 삶의 전체를 주님과 교회를 섬기는 데 헌신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교황은 신앙과 용기, 보편적 사랑을 갖고 복음의 가치를 살아가라고 우리를 가르쳤다”며 “가장 가난한 이들과 가장 소외된 이들을 지지했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전날인 20일까지만 해도 이탈리아를 방문 중인 JD 밴스 미국 부통령을 비공개로 만났고,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 2층 발코니에 휠체어를 타고 나타나 성베드로 광장에 모인 신도들을 향해 “부활절을 축하한다”고 말했다.


고인은 앞서 호흡기 질환이 호전되지 않아 지난 2월14일부터 입원 치료를 받아왔다. 추가로 폐렴을 진단받는 등 건강상태가 급속히 악화됐지만 역대 최장 기간인 38일 간 입원 치료를 마치고 퇴원했다. 이후 산소마스크를 쓰고 휠체어에 앉아 공개일정을 수행해 건강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지만 끝내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00년 가톨릭 역사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는 인물이다. 고인이 유럽 출신이 아니라 남미 출신인 까닭이다. 가톨릭 역사를 통틀어 교황은 이탈리아인의 전유물이었다. 교황을 선출하는 추기경단의 대다수도 이탈리아인이다. 이탈리아의 벗어나 교황이 된 첫 사례가 요한 바오로 2세(폴란드)다. 이후 베네딕토 16세(독일)로 이어졌지만, 여전히 유럽 출신이 교황이 됐다.


유럽을 벗어난 첫 교황이 바로 아르헨티나 출신의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고인은 2013년 건강상의 문제로 자진 사임한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이어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됐다. 보수적이며 전통적이었던 베네딕토 16세와 진보적이며 개방적인 프란치스코의 관계는 2019년 '두 교황'이라는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가톨릭교회를 개혁하기 위해 파격적으로 선택됐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사회의 변화하는 현대상을 포용한 교황으로 꼽힌다.


교황의 본명은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로 1936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이탈리아 이민자 출신 철도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1958년 예수회에 입문한 고인은 1986년까지 신학을 공부하며 박사과정을 마쳤다. 학업을 하던 도중인 1969년 그는 사제서품을 받게 돼 아르헨티나 지방을 돌며 사목활동을 하기도 했다. 마약이 유통되고 폭력이 흔한 우범지대여도 교황은 개의치 않고 동행하는 사람 없이 빈민촌을 찾았다.


ⓒ 연합뉴스

이 기간 동안 탁월한 지도력을 인정받게 되어 고인은 1980년 산미겔 예수회 수도원 원장을 맡게 됐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을 거쳐 2001년 추기경으로 서임된 뒤 아르헨티나 가톨릭의 주교회장을 역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소탈한 행보로 커다란 감동을 안겼다. 허름한 구두를 신고 순금 십자가 대신 철제 십자가를 가슴에 걸고 소형차에 몸을 싣는 겸손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아르헨티나 추기경 시절에도 고인은 교구에서 제공되는 자동차와 운전기사를 거절했다.


대신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다녔다. 교황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알려면 지하철에 끼여서 다니기도 하고, 사람들이 밀면 밀려도 봐야 한다. 대중이 사는 걸 똑같이 살아봐야 한다. 그래야 대중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느끼는지 알 수 있다.”


교황은 한국과의 인연도 각별하다. 즉위 다음 해인 2014년 8월 제6회 가톨릭 아시아청년대회 및 윤지충 바오로 등 124위 시복식 집전을 위해 닷새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당시 ‘이웃집 할아버지’처럼 소탈하고 자애로운 모습이 한국인들에게 깊은 울림을 줬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하면서 차기 교황이 누가 될 것인지에 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콘클라베(교황 선출회의) 투표권을 가진 추기경은 모두 138명이다. 진보적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임명한 추기경이 110명이지만, 그중에도 보수 성향의 추기경이 많다는 분석이다.


진보 진영에선 프란치스코 교황과 비슷한 개혁성향으로 분류되는 현 가톨릭 2인자 피에트로 파롤린 교황청 국무원장이 유력한 후계자 중 한 명으로 거론되고 있다. 보수 진영의 추기경 후보로는 전임 교황이던 베네딕토 16세 측근이던 게르하르트 뮬러 추기경과 레이먼드 버크 추기경이다. 이들은 동성애를 포용하자고 주장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태도를 맹비난한 성직자다.

김상도 기자 (marine9442@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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