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말한마디, 위력은 메가톤급?
입력 2009.03.02 18:50
수정
미디어법 놓고 대치중 ´야당 양보´ 한마디에 분위기 급반전
"균형추 역할 보여줬다" 평가속 "메시지 정치 한계" 지적도


“말 한마디 했을 뿐인데...”
여야가 2일 김형오 국회의장이 예고한 본회의 개회 20분을 앞두고 미디어 관련법의 쟁점사항에 대해 극적 타결을 이룬 과정을 지켜본 한 기자가 박근혜 전 대표를 두고 한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박 전 대표가 사실상 이날 여야가 극적합의를 이끌어 내는 데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평가가 대체적이다.
그간 박 전 대표는 쟁점법안 처리와 관련, “국민 공감대” 발언 등을 통해 ‘속도조절론’을 강조하면서 대야(對野) 강공을 펼치던 당 지도부와는 배치된 입장을 보여 왔던 터.
이 때문에 민주당 등 야당에선 최근 2월 입법전쟁 막바지에 박 전 대표의 입장표명을 공개적으로 압박하기도 했다. 민주당에선 사실상 박 전 대표를 든든한 우군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셈. 박 전 대표가 전날 김형오 국회의장이 제안한 중재안에 대해 호평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민주당 내에선 “직권상정을 막아줄 봄처녀”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였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민주당의 기대를 비껴갔다.
박 전 대표는 이날 민주당의 본회의장 진입 방해 등을 사전 차단하기 위해 로텐더 홀에서 점거농성 중이던 한나라당 의원들을 격려 방문한 자리에서 “한나라당이 국민 공감대 형성을 위해 내용면에서 많은 양보를 하는 등 노력을 많이 했다”며 “야당이 이 정도는 여당 안에 대해 협조해 줄 수 있는 게 아니냐”고 야당의 전향적인 자세를 촉구했다.
박 전 대표는 이어 “야당이 이렇게까지 거부한다면 다른 데 생각을 갖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냐”고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또 김 의장의 중재안에 대해선 “상당히 고심해 합리적인 안이 나온 듯하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한 뒤 “문제가 되는 것은 시기를 못 박는 것인데, 그 정도는 야당이 받아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야당이) 받아준다면 논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처리기한을 못 박자’는 한나라당의 입장에 무게를 실었다.
박 전 대표의 이날 언급은 ‘미디어 관련법 처리시한을 못 박자’는 한나라당 지도부에 힘을 실어줘 민주당의 입장 변화를 촉구하는 한편, 한나라당 지도부가 김 의장의 중재안을 상당 부분 수용하도록 우회적으로 강조한 것이었다.
묘하게 상황이 맞아 떨어졌지만, “사실상 야당 대표”라고 불리는 박 전 대표의 이날 발언은 여야 지도부에게 협상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하는 모양새가 됐다. 민주당은 박 전 대표가 한나라당 지도부에 힘을 실어준 탓에 한발 더 물러선 양보안을 제안했고, 한나라당도 민주당의 중재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한 친박(친박근혜)계 의원은 이날 <데일리안>과 통화에서 “우연이 많이 작용했는지 모르지만, 오늘 협상 타결 과정을 볼 때 박 전 대표의 발언과 거의 같은 결과가 도출됐다”며 “박 전 대표의 특유의 정치력이 발휘된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정치컨설팅 업체인 <포스 커뮤니케이션> 이경헌 대표도 "워낙 청와대와 당내 주류인 친이(친이명박)계가 강하게 밀어붙이던 상황에서 박 전 대표의 입장표명이나 적극적인 개입이 없었다면 극한 대립으로 치달았을 것"이라고 전제한 뒤 "결국 박 전 대표는 이날 발언을 통해 여당 내부의 분열을 절묘하게 덮으면서 당 지도부에게 명분을 주는 직접적인 계기를 마련해 여야의 갈등과 당 권력지형상에 있어 균형추 역할을 적절히 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고 평가했다.
이 대표는 이어 "그간 비주류의 수장으로서 당내 분열과 갈등에 있어 일정부분 책임지는 부정적 이미지를 희석시키는 효과는 분명하게 있을 것이기 때문에 당내 주요한 지도자로서의 정치적 위상을 확대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대표는 그러나 "박 전 대표는 그간 막판에 메시지를 던지는 방식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 왔는데, 이런 방식은 반복될수록 국민의 공감이 반감될 수밖에 없다"면서 "향후 당내 문제 등에 있어 처음부터 원칙과 기조를 제시하고, 그 과정에 있어서도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당내 화합에 있어서도 차기 대권주자로서 통 큰 모습을 보여줄 필요도 있다"고 지적했다. [데일리안 = 김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