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에 고운임·고환율까지…전방위 악재로 수출 기업 비명
입력 2025.01.21 11:54
수정 2025.01.21 14:07
트럼프 대통령, 캐나다·멕시코 25% 관세 부과 언급
관세 전쟁에 밀어내기 물량 전망…해상운임 상승 우려
고환율로 원자재 수급 불안…기업 공급망 재배치 고심
삼성·LG 등 국내 대표 수출 기업들이 올 초부터 관세, 고운임, 고환율 등 트리플 악재로 신음하고 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세운 관세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기업들은 현지 투자 등 공급망 재배치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관세 시행 이전 밀어내기 물량이 몰리며 해상운임도 덩달아 뛸 전망이다. 이같은 불확실성은 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이어져 기업들의 원자재 비용 부담도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 임기 시작하자마자 캐나다·멕시코 25% 관세 부과 언급
21일 업계에 따르면 20일(현지시간)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속전속결로 '미국 우선주의' 기치를 내건 다양한 행정명령 폭탄을 쏟아내고 있다.
이날 그는 기자회견에서 멕시코와 캐나다에 대한 25% 관세를 묻는 질의에 "2월 1일에 (부과)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앞서 그는 모든 수입품에 10~20%의 보편관세를, 중국산엔 6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었다. 멕시코와 캐나다에는 25%의 추가 관세를 매기겠다고 했다.
관세는 그의 핵심 공약이었던터라 실현 가능성이 높았지만 시장이 예상했던 것 보다 더 빠르게 진행되는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4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 '투르스소셜'을 통해 관세 징수를 전담으로하는 '대외세입청(ERS)'를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관세 카드는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계에 다각도로 영향을 미친다. 수출 기업들은 현지 판매가격이 높아지니 경쟁력이 떨어진다. 중국에 공장을 두고 중간재를 수출하는 업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미국 수출길이 막힌 중국이 한국 등에 자국산 밀어내기를 할 경우 부담은 더욱 커진다.
산업연구원은 '트럼프 보편관세의 효과 분석' 보고서를 통해 대미 수출은 9.3~13.1% 감소하고 이로 인한 국내 부가가치는 약 7조9000억원~10조6000억원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국내 기업으로서는 트럼프발 관세가 현실화되고 해당 수치도 높아질수록 현지 투자, 수출선 다변화 등 공급망 재배치 압박을 받게될 수밖에 없다. 특히 이번 관세 언급으로 멕시코에 진출한 한국 기업으로서는 돌파구가 절실해졌다.
이들은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MSCA)을 근거로 무관세로 미국 시장에 제품을 수출해왔다. 지난해 멕시코 기아 공장이 생산한 25만2000대 중 60%가 넘는 약 15만5000대가 미국으로 수출됐다. 삼성전자는 멕시코 케레타로와 티후아나에서 가전 공장과 TV 공장을 각각 운영 중이며, LG전자도 레이노사(TV), 몬테레이(냉장고), 라모스(전장) 등에 생산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멕시코에 사업장을 둔 기업들은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타개책을 고민하고 있다. 삼성은 "글로벌 여러 지역에 거점을 운영하고 있어, 글로벌 물량 재배치 등으로 유연하게 대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조주완 LG전자 최고경영자(CEO) 사장은 이달 열린 ‘CES 2025’에서 "같은 모델을 여러 군데서 만드는 체제, 우리만의 플레이북을 가지고 시나리오별 방안을 준비해 놨다"고 말했다.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미 생산기지를 증설하는 방안도 고려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LG전자는 테네시주에 세탁·건조기 공장을 운영 중으로 이 생산능력을 늘리는 방식이다.
관세 전쟁에 밀어내기 물량 전망…해상운임 상승 우려
관세 자체도 부담이지만 물류비 상승, 고환율 등 파급 효과도 예상된다. 특히 트럼프 2기 정부는 대중국 제재에 가장 방점을 두고 있는 만큼 전방위로 중국 옥죄기에 나설 전망이다.
수출업계에서는 대중국 관세 60% 부과가 현실화한다면 시행을 앞두고 밀어내기 물량이 폭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트럼프 1기 정부 당시 미국이 2018년 3월 대중국 관세부과 계획을 예고하자, 2017년 6월 1800 달러였던 북미운임지수는 2018년 1월 2200 달러로 치솟았다.
미국은 대중국 관세 상향 외에도 중국산 선박 수수료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제재를 가할 가능성이 있다.
중국산 선박 제재는 미국 무역법 301조에 근거한 것으로, 미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해 4월부터 조사에 나섰다. 조사 결과에 따라 미국은 중국 조선업에 관세를 부과할 전망이다. 또한 중국산 선박이 미국에 입항할 경우 선주에 상관없이 컨테이너당 50달러(약 7만원) 수준의 항만 이용 수수료를 걷는 방법도 고려하고 있다.
수출 기업들은 관세, 수수료 부담을 중국 선사들이 고스란히 전가할지 우려하고 있다. 가뜩이나 관세로 제품 경쟁력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화주들이 고운임, 수수료를 떠안도록 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다.
작년 컨테이너선 운임은 중동지역 지정학적 리스크로 전년 대비 2.5배 늘어난 2507을 기록했는데, 올해에도 국제 정세 및 공급망 불확실성 증가로 작년 수준을 상회할지 수출 기업들은 우려하고 있다.
고환율로 원자재 수급 불안…기업 공급망 재배치 고심
고환율도 악재다. 탄핵 정국과 미 통상 정책 변화 조짐에 환율은 큰 등락폭을 보이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20일 기준 1451.7원으로 비상 계엄 사태 전인 12월 3일(1402.9원)과 비교해 48.8원(3.5%) 올랐다.
환율 상승(원화가치 하락)은 기업 수출 측면에서 긍정적이나 장기적으로 보면 원자재값 상승으로 부담이 커진다. 해외에서 구매해오는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오를수록 제조원가가 커져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해외에 생산 거점을 짓고 있는 기업들의 비용 부담도 커진다.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짓고 있는 삼성전자는 향후 장비·설비 반입 시 비용 부담이 늘어날 전망이다.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최근 환율상승으로 국내 대기업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5점 척도로 조사한 결과(최소 1점~최대 5점), ‘원자재 및 부품 조달비용 증가’(3.70점)가 가장 큰 어려움으로 지목됐다.
이어 ‘해외투자 비용증가’(3.30점), ‘수입결제시 환차손 발생’(3.15점), ‘외화차입금상환부담 증가’(2.93점) 순으로 나왔다.
대한상의는 “전통적으로 환율상승은 수출가격이 하락하는 효과가 있어 수출 주도형인 우리 경제에 유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엔 해외 현지생산 비중이 증가하고, 환헷지 달러화 결제가 늘어나면서 효과가 제한적”이라며 “특히 우리 대기업들은 가격보다는 기술과 품질 경쟁이 치열한 상황인데 고품질 원자재 수입가격이 오르면서 영업이익에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