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시에 찾아올 수 있는 재난의 트라우마, 한의학으로 보듬다
입력 2025.01.08 07:00
수정 2025.01.08 07:00
연말연시를 준비하던 지난해 12월 29일 아침에 무안공항에 착륙하던 여객기가 불의의 사고로 179명이 희생되고 2명이 생존했다. 착륙 과정에서 발생한 폭발로 인해 비행기가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파손돼 현장을 목격한 유가족분들은 물론 현장 구조대원들조차 충격이 컸다.
이러한 대형 재난에는 재난을 겪은 생존자뿐만 아니라 소중한 사람을 잃은 주변인과 수습에 나선 사람들, 혹은 사고를 접하고 몰입하게 된 일반인까지도 트라우마를 겪을 수 있다.
트라우마는 개인적인 사고에서부터 재난, 전쟁, 성폭력, 폭력 등과 같이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을 겪은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트라우마에 대한 반응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데, 내가 대응할 수 없을 정도의 일로 인해 압도적인 공포와 무력감으로 사로잡혀서 아예 모든 것을 차단하고 무력하게 반응하지 않거나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오히려 과민반응하는 상태가 될 수 있다. 이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사고에 대해 회복하기 위해 가지는 당연한 수순이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도 트라우마 사건으로부터 나타난 불편감이 지속되고 내가 안전하지 못하다고 계속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느낌이 한 달 이상 지속되는 것을 외상성 스트레스 장애(PTSD)라고 한다. 대표적인 증상으로는 트라우마 사건에 대한 기억이 반복되거나 관련된 꿈을 반복해서 꾸거나 이러한 기억을 고의적으로 피하려고 하거나 이로 인해 예민해져서 불면이나 통증, 피로 등 신체증상까지 나타날 수 있다.
특히 일반적으로 트라우마 사건을 겪은 뒤 외상성 스트레스 장애로 이어지는 경우는 보통 11%이지만 항공사고를 겪은 경우 최대 46%까지 높아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러므로 트라우마를 겪은 피해자가 외상성 스트레스로 장애로 진행되지 않도록 즉각적으로 신속한 지원이 필요한 경우가 많은데 이때 즉각적으로 활용 가능한 효과적이고 안전하고 경제적인 비약물적 심리적 방법으로 한의학적 치료가 효과적이다.
지난해 2월에 미국의학협회 정신의학회지에서 군인 PTSD 환자를 상대로 칩 치료를 한 결과 자율신경계 균형을 조절하고 대뇌 연결성을 재구성해 줘서 증상을 완화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 2017년 포항지진으로 인한 이재민을 대상으로 한 이침(耳針) 시술에서도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 증상을 조절했다고 한다.
감정자유기법(EFT)은 경혈을 두드리면서 트라우마 기억을 효과적으로 다루는 치료법이다. 환자의 주관적인 심리적 상황을 받아들이면서도 객관적으로는 안전한 상황이고 치료 목표로 하는 증상에 대해 나아질 것이라는 확언을 하면서 얼굴과 손에 있는 경혈을 두드려서 뇌 내측 전두엽이 편도체를 조절하도록 도와주는 치료법이다.
그 외에도 동일본대지진 당시 생존자들에게 효과적이었던 시호계지건강탕(柴胡桂枝乾薑湯)이나 2008년 쓰촨(四川) 대지진 생존자들에게 심리적 안정에 도움이 되었던 한약 가미소요산(加味逍遙散) 등의 한약 치료도 도움이 된다.
갑작스럽게 발생한 재난으로 유가족과 구조 및 수습 중인 분들, 그리고 국민들에게도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다. 하지만 트라우마에 어떻게 대응하고 극복해 나가냐가 무엇보다 중요한 만큼 재난에 대한 심리지원 매뉴얼을 점검하고 한의학적 의료지원이 적극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하길 바란다.
글/ 이한별 한의사·구로디지털단지 고은경희한의원 대표원장(lhb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