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원 목전’ 강 달러에 물가도 ‘빨간불’…스태그플레이션 ‘가시화’
입력 2025.01.03 06:00
수정 2025.01.03 06:00
원·달러 환율 1470원대 등락
소비자물가↑…장바구니 위협
“금리인하 속도 유연하게 결정”
최근 원·달러 환율이 1500원 가까이 급등하는 등 고환율이 이어지면서 소비자물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고환율은 수입 원자재 가격 상승을 이끌기 때문에 향후 서민들의 장바구니가 위협 받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고환율이 장기화 될 수 있다는 진단 속에 한국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경기 둔화 속 물가 상승)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된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보다 5.9원 내린 1466.6원으로 주간 거래를 마감했다. 같은 날 원·달러 환율은 1473.0원으로 출발한 후 1470원대에서 등락하며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첫 거래일부터 마지막 거래일까지 약 13.2%가량 상승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인 지난 1997년 기록한 101.1%와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난 2008년 34.5% 이후 세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지난해 초 1300원 수준이었던 환율은 연말이 되면서 1400원대를 훨씬 웃돌며 치솟았다. 지난해 12월 27일 원·달러 환율은 장중 1486.7원을 기록하며 1490원을 위협했다. 환율이 장중 1480원을 넘은 건 지난 2009년 3월 16일(1488.0원) 이후 처음이다. 이는 15년 9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기도 하다.
환율이 급등한 배경은 지난해 11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서 강 달러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어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가 상승 압력에 기름을 부었다. 이밖에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 우려,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금리인하 속도조절 등도 원·달러 환율의 상승을 부추겼다.
시장 전문가들은 올해도 원·달러 환율이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점치고 있다. 일각에선 1500원대까지 상단을 열어놔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문제는 고환율에 따른 서민들의 먹거리 물가도 오를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1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년 전보다 1.9% 상승했다. 정부는 넉 달 연속 1%대를 유지했다고 평가했지만, 이를 바라보는 불안은 지속되고 있다.
1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소폭 오른 것은 환율 상승으로 석유류 가격이 높아진 영향이다. 고환율은 석유를 비롯해 달러로 결제되는 수입 원자재 가격을 끌어올려 전체 물가를 자극한다. 12월 석유류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1.0% 올라 4개월 만에 상승 전환했다.
김웅 한국은행 부총재보는 지난해 12월 31일 주재한 ‘물가상황 점검회의’에서 “1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최근 고환율 등으로 좀 더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후로는 유가·농산물 가격의 기저효과, 낮은 수요 압력 등에 영향을 받아 당분간 2%를 밑도는 수준에서 안정 기조를 이어갈 전망”이라고 예상했다.
일각에선 고환율이 장기화하면 물가를 다시 자극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환율은 수입물가를 끌어올리고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도 밀려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로 인해 소비 심리가 얼어붙으며 내수 부진 장기화로 이어지고 곧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수 있다는 목소리가 더해진다.
잠재성장률(2%)보다 낮은 국내총생산(GDP) 성장이 유력한 가운데 물가 관리 목표(2%)를 웃도는 인플레이션은 스태그플레이션 상태라고 볼 수 있다.
금융권에선 불안한 정치 상황이 안정돼야 경기 하방 리스크를 해소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금융권 관계자는 “탄핵 정국으로 인한 원화 가치 하락, 경기 둔화가 나타나고 있다”며 “국내 정치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는 한 경기 하방 리스크는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전날 신년사를 통해 “전례 없이 정치·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통화정책은 상황 변화에 맞춰 유연하고 기민하게 운영될 필요가 있다”며 “입수되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대내외 리스크 요인들의 전개 양상과 그에 따른 경제 흐름 변화를 면밀히 점검하면서 금리 인하 속도를 유연하게 결정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