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몸 납시는데…시장 분위기 왜 이래?
입력 2024.12.27 06:00
수정 2024.12.27 06:00
현대차‧기아, 신형 팰리세이드‧아이오닉 9‧타스만 등 '비싼 차' 잇달아 출시
잇단 화제몰이로 출시 전 빌드업…소비심리 위축, 고가 차종 판매에 불리
팰리세이드는 하이브리드 인기 힘입어 첫 날 사전계약 3만3567대로 선방
야심차게 신차 프로젝트를 준비해 놓고 소비자들의 관심을 유도하며 ‘빌드업’을 해 나가던 현대자동차와 기아가 12‧3 비상계엄과 그로 인한 탄핵 정국이라는 악재를 만났다. 새해 출시 예정인 신차들이 고가 차종이 많은 상황에서 정국 불안정에 따른 소비 침체를 어떻게 돌파할지 관심이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내년 상반기 준대형 SUV 팰리세이드 풀체인지(완전변경) 모델, 준대형 전기 SUV 아이오닉 9을 잇달아 출시한다. 기아는 중형 픽업트럭 타스만을 출시 예정이다.
현대차‧기아는 이들 차종의 성공적인 론칭을 위해 국내외에서 티저 이미지 공개, 실물 디자인 공개, 미디어 신차발표회 등 다양한 사전 마케팅을 진행해 왔다. 현대차그룹 미딩 채널인 HMG 저널을 통해 각 차종별로 적용된 디자인과 신기술, 상품성을 부각시키는 콘텐츠를 공개하며 신차에 대한 기대감을 고조시키기도 했다.
당장 출시가 가시회된 차종은 팰리세이드 풀체인지 모델인 ‘디 올 뉴 팰리세이드’다. 현대차는 지난 20일 팰리세이드 사전계약에 돌입했다. 2.5 터보 가솔린 모델은 내년 1월 중순부터 인도되며, 하이브리드 모델은 인증 절차 등을 거쳐 내년 상반기 중 출고를 예정하고 있다.
기존 팰리세이드는 3열 7~8인승 좌석 배치의 전형적인 준중형 SUV였으나, 모델체인지와 함께 덩치를 키우고 9인승 모델을 추가하면서 미니밴 수요층까지 흡수할 조건을 갖췄다.
팰리세이드 9인승 모델은 1열 가운데에 시트, 혹은 센터콘솔로 사용할 수 있는 접이식 멀티콘솔을 장착한 덕에 3+3+3의 좌석 배치를 갖췄고, 6인 이상 탑승할 경우 버스전용차로 이용도 가능해진다.
하이브리드 모델을 추가한 것도 신형 팰리세이드의 장점이다. 현대차그룹 내 처음으로 2.5 터보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갖춰 합산출력 334마력의 우수한 동력성능을 제공하면서도 높은 연료 효율성을 제공한다. 아직 연비 인증 전이지만 1회 주유시 1000km 이상의 주행거리를 확보할 것이라고 회사측은 밝혔다.
내연기관 플래그십 SUV와 함께 현대차의 전기차 플래그십 SUV 자리를 책임질 아이오닉 9도 내년 상반기 출시가 예정돼 있다.
아이오닉 9은 선행 콘셉트 모델인 ‘세븐’ 시절부터 ‘차원이 다른 실내공간’을 중점으로 내세웠었다. 동급 최고 수준의 휠베이스와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기반으로 3열까지 확장된 플랫 플로어를 통해 넓은 실내 공간을 제공한다.
지난해 출시된 기아 EV9과 동급 모델이지만, 현대차는 아이오닉 9에 늦은 만큼 더 충실한 경쟁력을 담았다. 디자인에도 상당한 신경을 썼고, 크기도 EV9보다 조금이나마 키웠다. EV9이 나올 때까지만 해도 존재하지 않았던 각종 첨단 편의사양도 아이오닉 9에 담았다.
무엇보다 아이오닉 9에 EV9 배터리보다 셀을 48개 추가한 고용량 배터리를 장착하며 전기차 성능 평가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1회 충전 주행 가능 거리도 늘렸다. 동력성능도 끌어올렸다.
아이오닉 9에는 현대차그룹 전기차 중 최대 용량인 110.3kWh의 고전압 배터리가 모든 트림에 동일하게 탑재됐다. 이는 EV9(99.8kWh)보다 10%이상 높은 용량이다. 그 덕에 아이오닉 9의 1회 충전 주행 가능 거리는 532km(2륜구동 항속형 기준)로, EV9(최대 501km)보다 30km이상 길다. 최고출력 역시 아이오닉 9이 160kW 214hp로 EV9의 150kW 201hp를 소폭 상회한다.
비록 EV9이 국내 시장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상품성이 한층 뛰어난 아이오닉 9은 좀 더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것으로 현대차는 기대하고 있다.
기아의 새해 기대주는 아웃도어에 특화된 픽업트럭 타스만이다. 지난 10월 사우디 제다모터쇼에서 공개된 타스만은 용도에 걸맞게 강인하고 탄탄한 외모로 자동차 마니아들 사이에서 일찌감치 화제를 모으고 있다.
샌드, 머드, 스노우 등 터레인 모드를 제공하는 4WD 시스템, 800mm 도하능력, 최대 3500kg까지 견인할 수 있는 토잉 성능 등 오프로드에 특화된 성능과 편의사양을 갖추면서도 픽업트럭에서는 사실상 포기해야 했던 2열 편의성을 높인 게 특징이다.
국내에서 픽업트럭의 시장성은 이미 KG 모빌리티 렉스턴 스포츠를 통해 증명된 바 있다. 2018년 렉스턴 스포츠 한 차종으로만 4만2021대가 팔린 시장이다. 그동안 다소 위축되긴 했지만 경쟁력 있는 신차가 나올 경우 충분히 회복 가능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이처럼 제조사는 물론, 소비자들에게도 큰 기대를 모으는 신차들이 내년 초부터 줄이어 나오지만, 문제는 시장 분위기가 고가 차종을 판매하기에 녹록치 않다는 점이다.
팰리세이드는 플래그십 SUV 답게 현대차의 SUV 라인업 중 가장 비싸다. 여기에 모델체인지가 되면서 가격이 더 올랐다. 신형 팰리세이드는 2.5 터보 가솔린 모델 시작가격이 4383만원이고 최상위 모델은 5794만원에 달한다. 구형 팰리세이드는 3.8 가솔린 기본트림이 3896만원이었다.
엔진 사양이 달라지긴 했지만 무려 500만원가량 오른 것이다. 더 이상 ‘싼타페 살 가격이면 옵션 좀 포기하고 펠리세이드로 차급을 올리자’라는 말이 나오기 힘들어졌다.
하이브리드 모델 가격은 더 높아진다. 기본트림이 5000만원에 육박(4982만원)하고, 최상위 트림은 6000만원을 넘어선다(6424만원).
아이오닉 9의 가격은 아직 공개되지 않은 상태다. 팰리세이드와 비슷한 덩치를 가졌지만 전기차인 만큼 가격도 월등히 높을 것으로 보인다.
같은 차급인 기아 EV9의 가격은 7337만~8397만원이다. EV9보다 배터리 용량도 크고 편의사양도 더 고급화된 아이오닉 9은 가격도 다소 높게 책정될 여지가 크다. 최상위 트림 가격이 9000만원에 육박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전기차 보조금을 감안해도 대중차 시장에서는 부담이 큰 가격이다.
타스만은 미국 픽업트럭 분류 기준으로 중형 픽업트럭이지만, 국내에 판매되는 준대형 SUV들과 비슷한 덩치를 지녔다. 가격이 팰리세이드보다 저렴하지는 않을 것이란 의미다.
타스만은 오프로드에 적합한 바디 온 프레임 구조를 갖췄다. 일반적으로 바디 온 프레임 차종은 팰리세이드와 같은 모노코크 바디 차종보다 제조 원가가 높다. 타스만과 같은 바디 온 프레임 플랫폼을 사용했던 기아의 준대형 SUV 모하비도 단종 직전 가격이 5054만~5993만원으로 팰리세이드보다 높았다.
현재 내수시장은 크게 위축된 상태다. 일 년 내내 지난해에 비해 침체된 모습을 보이다 연말 들어 조금 살아나는가 싶더니 계엄‧탄핵 사태가 터지며 다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았다. 5000만~6000만원, 심지어 9000만원에 육박하는 차를 구매하기에 망설임이 클 만한 시기다.
특히 준대형 SUV나 픽업트럭은 생애 첫 차 보다는 교체수요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 큰 차로 갈아타려던 소비자는,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원래 타던 차를 좀 더 유지하는 쪽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
다만, 이미 사전계약을 진행 중인 신형 팰리세이드의 경우 계약 첫 날인 지난 20일 3만3567대의 준수한 실적을 달성하며 좋은 스타트를 끊었다. 이는 현대차그룹 산하 브랜드 신차 중 현대차 아이오닉6(2022년 8월, 3만7446대), 기아 카니발(2023년 11월, 3만6455대)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첫 날 사전계약 대수다.
이같은 실적은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정체) 현상의 반작용으로 자동차 시장 전반에 불고 있는 하이브리드차 선호 분위기와 맞물린 것으로 풀이된다. 신형 팰리세이드의 첫날 사전계약 대수 중 70%는 하이브리드 모델인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에서는 출고 대기기간이 긴 기아 카니발 하이브리드와 하위 차급인 쏘렌토 하이브리드, 현대차 싼타페 하이브리드 수요의 일부가 팰리세이드 하이브리드로 유입된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