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일easy] "설마 했더니 진짜 나왔네" 8천만원짜리 투명 TV
입력 2024.12.24 06:00
수정 2024.12.24 12:23
LG전자, 속 훤히 보이는 투명 OLED TV 출시
2017년부터 선보인 '시그니처' 6번째 시리즈
'무선·투명' OLED TV, 가정용 상용화 최초
벤츠 한대 값 맞먹는 가격은 복병
산업계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혹은 필연적으로 등장한 이슈의 전후사정을 살펴봅니다. 특정 산업 분야의 직‧간접적 이해관계자나 소액주주, 혹은 산업에 관심이 많은 일반 독자들을 위해 데일리안 산업부 기자들이 대신 공부해 쉽게 풀어드립니다.
#포지티브적 해석: 원한다면... "기존에 없던 것도 만든다"
#네거티브적 해석: 벤츠 한 대가 벽에 걸려 있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설마 진짜 나오겠어?' 했던 제품이 현실에 튀어나왔습니다. LG전자가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투명한 TV를 시장에 선보인 것인데요. 바로 세계 최초 '무선'이자 '투명'한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TV 'LG 시그니처 올레드 T(모델명 77T4)'가 그 주인공입니다.
올해 초 세계 최대 가전 및 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4'에서 이게 나왔을 때 다들 놀라기는 했지만 "설마 양산 제품으로 나오겠어"라는 반응이 있었습니다. 당분간은 프로토타입(시제품)에서 그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죠. 그런데도 LG전자는 '연내 출시'를 예고하더니만, 결국 일을 저질렀네요.
우선 간단한 스펙부터 볼까요. '시그니처 올레드 T'는 77형 사이즈로 4K(3840×2160) 해상도를 구현, OLED 특유의 고화질을 자랑합니다. 영화, 게임 등의 콘텐츠도 즐길 수 있습니다. 여기까진 다소 뻔한 설명인데 핵심은 이제부터입니다.
투명한 스크린과 함께 무선 AV 송∙수신 기술을 탑재한 것이 포인트입니다. 백라이트가 필요없는 OLED 패널의 특성을 살려 얇으면서도 투명한 화면을 만들었는데, 뒤에 시커먼 전선이 보이면 낭패겠죠. 투명한 화면 주변의 전원을 제외한 모든 선(線)을 없앴습니다.
'재밌긴 한데 좀 불편하지 않을까' 걱정도 넣어둘 수 있을 것 같네요. 리모컨 조작에 따라 차광막이 오르내리며 일반 블랙 스크린과 투명 스크린 등 두 가지 버전으로 활용이 가능하기 때문이죠. 특히 '투명 모드'일 때는 화면 뒤가 훤히 비치는 개방감이 있어 고급 오브제 역할도 거뜬히 해냅니다.
그.런.데. 이쯤되면 "그래서 얼마냐"고 모두가 외칠 겁니다. 정답은 5만9999달러(한화 약 8700만원, 북미 출하가 기준)입니다. 환율을 감안하더라도 쉽지 않은 금액이네요. 아직 유럽 및 한국 시장 출하가는 미정입니다. 아마도 이보다는 더 낮은 가격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참고로 이 돈이면 벤츠 E클래스를 삽니다.
2020년 버전 LG 시그니처 올레드 TV였던 '롤러블(화면이 말리는) TV'가 북미 기준 1억 4000만원, 국내 기준 1억원의 출하가로 책정된 바 있기 때문인데요. 가격은 해당 시장 상황에 따라 고려되는 만큼, 북미 출하가인 5만9999달러 이하로는 떨어지지 않을까 추측해봅니다.
아, 물론 그렇다고 8000만 원짜리가 800만 원이 될 순 없겠지요. 일반적인 수요를 기대하긴 어려운 가격입니다. 그렇다면 LG전자는 왜 이러한 제품을 내놨을까요? 해답을 찾으러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CES 2024가 열렸던 지난 1월로 거슬러 가보겠습니다.
"프리미엄에 대한 수요는 반드시 있으며, 일단 발생된 수요를 대중화하는 것은 저희의 다음 목표입니다. 투명 디바이스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실제 쓸 수 있는 TV를 보여주고자 했어요. 기술만 보여주는 것과 실제 고객집으로 배송되는 '판매 제품'은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롤러블 TV보단 더 대중적인 상품이 될 거라 봅니다."
신기함에 투명 화면 뒤로 손을 넣었다 뺐다 하면서도, 가격과 수요에 대한 의문을 참지 못하고 나지막이 "팔릴까요...?" 하고 툭 내뱉어버린(?) 기자의 물음에 당시 오혜원 HE사업본부(현 MS사업본부) 브랜드커뮤니케이션팀 상무가 답변한 내용입니다.
LG전자는 이번 'LG 시그니처 올레드 T'를 통해서 두 가지를 강조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첫째는 "고객이 원하면 만든다"라는 실험 정신입니다. LG전자에서 독특하고도 파격적인 가전 제품이 많이 나오는 근본적인 이유죠.
둘째는 "사라지는 가전" 기조 입니다. 기존 공간을 많이 차지하던 전통 가전, 특히 기능 만을 중시했던 제품 대신 최근엔 올인원·올타임·인테리어 오브제 가전이 대세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인데요. 구매 욕구를 확실히 자극하는 근사한 제품이라면, 비싸다고 안 팔릴 이유는 없을 것이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실제로 LG전자는 지난 2017년부터 꾸준히 'LG 시그니처 올레드'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그림이 벽에 붙어 있는 듯한 '월페이퍼(올레드 W)', 화면을 말았다 펼치는 '롤러블(올레드 R)', 복잡한 연결선을 지운 무선(올레드 M) 등이 있었네요. 이번엔 무려 6번째 시도입니다.
OLED 강점을 살려 TV 폼팩터 진화를 주도해 온 것인데, 사실 여기에는 시장 상황이 가장 큰 배경으로 자리합니다. 요즘 국내 기업의 TV 사업은 정체기, 조금 더 강하게 말하면 하향세를 타고 있습니다. 금액·수량 기준으로 중국 업체들이 점유율을 크게 늘리고 있는 탓인데요. 요즘 뉴스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TCL, 하이센스 등이 대표 업체죠.
당초 '저가 공세'로 시작했던 중국 업체들의 추격은 점유율 확대에 힘입은 기술 투자, 그로 인한 기술력 향상이라는 순환 구조를 만들어내며 프리미엄, 즉 고급 제품 분야에서도 국내 기업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국내 업체들은 어떻게든 자사의 '수준'을 시장에 끊임없이 증명해야 합니다.
LG전자가 TV라는 단일 제품을 떠나 최근 전사 차원의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단행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이네요. 회사는 제품 제조를 넘어 B2B(기업간거래) 및 플랫폼 기반 서비스 사업을 강화하는 등 다양한 방안의 성장동력을 확보하겠단 포부를 밝히기도 했죠.
1947년 '국내 최초' 럭키 화장품을 시작으로 최초 세탁기 등을 만들어 낸 LG전자의 내일이 이번 세계 최초 무선·투명 OLED TV '시그니처 올레드 T'에 담겼다고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대중화가 실현돼서 수익 활로까지 뚫린다면 금상첨화겠죠.
당장 돈을 버는 일도 중요하지만, 계속 벌기 위해선 소비자들에게 내일을 위한 새로운 기술을 제시하는 게 기업이 오래도록 살아남을 비결 아닐까요. 가까운 미래에 많은 소비자들이 다양한 제조사 로고가 찍힌 투명한 TV(물론 지금보다 많이 저렴해진)를 각각 리뷰하는 게 일상화된다면 LG 시그니처 올레드 T에는 '선구자'라는 훈장을 달아줘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