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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휘트니 박물관의 2004 비엔날레

이신호 기자 (SL348@yahoo.com)
입력 2004.04.27 15:53
수정 2004.04.27 15:53

5월 30일까지 뉴욕 휘트니 박물관에서 열리는 2004 비엔날레(Biennial)를 지난 주에 둘러보았다. 1932년부터 시작된 휘트니 비엔날레는 미국 현대 미술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이며 올해의 비엔날레에는 모두 108명의 아티스트들이 참여하였다.

특히 올해에 주목할 만한 것은 휘트니 박물관 뿐만이 아니라 센트럴 파크에서도 다양한 상설 전시회가 열린다는 점이다. 비록 많은 시간을 할애해 둘러보지는 못했지만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고 보았던 몇몇 작품들을 여기에서 소개하고자 한다.

메디슨 애비뉴와 75가에 위치한 휘트니 박물관 앞은 주중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방금 퇴근한 듯 정장차림으로 휴대폰을 들고 서있는 남자, 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 목에 카메라를 맨 관광객… 모두들 들떠 있는 분위기였다.

미술에 조예가 깊은 것은 아니지만 평소 현대 미술에 남다른 관심이 있었던지라 비엔날레는 나를 흥분시키기 충분했다. 따뜻한 봄기운을 느끼며 한 20분쯤 기다리자 박물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번 전시회에서 눈에 띄는 점은 비디오와 디지털 미디어를 이용한 작품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 중 나의 관심을 끈 작품은 끌로에 피엔(Chloe Piene)의 ‘블랙마우스(Blackmouth)’다.

폭력과 섹슈얼리티로 요약될 수 있는 그녀의 다양한 작품들 중에서도 돋보이는 이 비디오 작품은 작가 자신이 직접 속옷차림에 끈적끈적한 진흙을 뒤집어쓰고 카메라 앞에서 몸부림치며 절규하는 모습을 반복되는 슬로우 모션과 일그러진 효과음으로 보여준다. 처음엔 낯설고 무섭기도 하지만 망가져가는 작가의 모습 속에서 인간의 동물적 본능을 느낄 수 있다.



다양한 그림과 사진들을 디지털로 스캔하여 짜집기한 비디오 작품인 제레미 블레이크(Jeremy Blake)의 ‘오시 클라크 읽기(Reading Ossie Clark)’도 몽환적 색채와 음악으로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60년대 영국의 유명 패션 디자이너인 오시 클라크의 일기를 짜집기한 이 작품은 그녀의 작품관과 인생관을 큐레이터 클라리사 달림플(Clarissa Dalrymple)의 목소리와 함께 파격적으로 보여준다. 달림플이 읽는 클라크의 일기 내용과 빠른 템포로 절묘하게 조합을 이루는 화려한 이미지들은 클라크의 일상을 엿볼 수 있게 하며 그녀의 재치와 고뇌를 느낄 수 있다.



수많은 비디오 작품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작품은 이브 서스만(Eve Sussman)의 ‘알카자에서의 89초(89 Seconds at Alcazar)’였다.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 박물관에 걸려있는 유명한 디에고 벨라스케즈(Diego Velazquez)의 ‘라스 메니나스(Les Meninas)’를 8mm 카메라로 재현한 이 비디오 작품은 원작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세밀하게 360도 회전하는 카메라 안에 담아낸다.

관객의 궁금증을 자극시키며 클로즈업으로 시작되는 인물들의 움직임, 점점 줌아웃되며 확대되는 이미지와 간간이 들려오는 인물들의 대사와 숨소리, 역사적으로 고증된 그들의 아름다운 옷차림… 라스 메니나스를 기억하는 관객들이 원작을 떠올리며 작품의 실체를 파악하는 순간 비디오 영상은 원작과 같은 각도에서 잠시 고정되고 궁정 화가의 캔버스 뒤를 스쳐 지나가며 끝난다. 계속 반복되는 이 작품을 여러 번 지켜보며 작가 이브 써스만의 예리한 통찰력과 아름다운 섬세함에 감동했다.



일본의 설치미술 작가 야요이 쿠사마의 ‘물위의 반딧불(Fireflies on the Water)’은 줄을 서서 한명씩 관람할 수 있는 특이한 작품이다. 거울로 둘러싸인 작은 방 안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천장에서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조명 장식과 이를 비춰주는 바닥의 물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환상적인 무한대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혼란스러우면서도 영적인 이 작품을 통해 그녀의 독특한 예술 언어를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그녀는 수백개의 은빛 공들을 물위에 띄우고 직접 퍼포먼스도 가미한 작품인 ‘나르시스 정원(Narcissus Garden)’을 비엔날레 기간 중 72가 근처 센트럴 파크의 컨서버토리 워터(The Conservatory Water)에서 선보인다.



그 밖에 캘리포니아 해변에서 서핑을 하는 서퍼들의 모습을 먼발치에서 찍은 사진 작품 캐서린 오피(Catherine Opie)의 ‘Surfers’와 각기 다른 나이대의 네 명의 모델들을 통해 작가 자신의 모습을 성찰하는 사진 작품 잭 피어슨(Jack Pierson)의 ‘자화상(Self Portrait)’, 눈밭 위에 누워있는 여성들의 치마를 텐트로 변형시킨 특이한 모습을 그림에 담은 에이미 커틀러(Amy Cutler)의 ‘캠프사이트(Campsite)’, 기하학적 형상의 인간의 모습을 대형 풍선으로 표현한 옥외 설치 작품 폴 맥카티(Paul McCarthy)의 ‘아버지의 큰머리(Daddies Bighead)’ 등도 주목할 만한 작품들이었다.

이신호 기자 (SL348@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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