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전기차 화재? 걱정 없다"… 미래 준비 마친 BMW '부품 기지'
입력 2024.11.11 16:26
수정 2024.11.11 18:03
BMW그룹코리아 안성 부품물류센터 방문기
전국 8도 핵심 허브… '수입차 1위 물류센터' 규모 더 키운다
오전에 들어온 부품 주문, 오후 도착 '당일배송' 시스템 구축
고전압 배터리 등 전기차 부품 창고, 독립공간으로 갖춰
11일 오전 10시, 몇 없는 승용차들 마저 완전히 가린 채 도로를 꽉 메운 화물차들. 전국 8도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완벽한 지리적 특성으로 온갖 물류 이동의 허브로 자리잡은 탓에, 경기도 안성의 오전은 늘 화물차로 붐빈다. 독일 태생의 수입차 브랜드 BMW가 안성의 시골 자락에 뿌리를 내린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정신없는 도로를 겨우 뚫고 도착한 안성의 조일저수지 근처. 한적한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창고가 'BMW'라는 로고를 뽐내며 우뚝 서있었다.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커다란 몸집을 자랑하는 이 곳은 국내 BMW그룹 정비소에서 사용되는 BMW, 미니(MINI)의 부품 6만여 개를 보관하는 물류 창고다.
이미 국내 수입차 브랜드 중에선 가장 큰 규모에도 불구하고, 이날 BMW는 창고 옆에 텅 빈 공터를 가리키며 커다란 건물을 또 짓겠다고 발표했다. 이미 지어진 1만7000평의 건물 옆에 약 1만평 규모의 창고가 하나 더 지어지는 건데, 여기에 투입되는 돈만 650억원에 달한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정체기) 이후 전기차가 많이 팔려나갈 때 부품 센터를 짓기 시작하면 늦는다는 판단이 깔렸다.
안성을 제외하고도 2곳의 물류센터를 가진 BMW가 안성 물류센터에 유독 매달리는 것은 전국 BMW 부품망의 허브로 자리잡을 수 있는 지리적 이점에 근거한다. 전국 정비소에서 아침에 주문한 부품을 저녁에 받을 수 있는 '새벽배송'이 가능한 유일한 부품센터이기 때문이다.
BMW는 안성 부품센터를 통해 쌀이나 세제 뿐 아니라, 자동차 부품도 새벽배송이 가능한 시대를 열었다. 오전, 오후, 새벽 등 3번에 나눠 부품이 필요한 곳으로 배송을 해주는 시스템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정비소에서 필요한 부품이 없어 발주를 하지 않았어도 각 정비소의 재고 상태와 주문 데이터를 분석해 자동으로 부품을 배송하는 AI 기반 수요 예측 시스템도 갖췄다.
정상천 BMW코리아 AS총괄본부장은 "물류를 비행기나 배로 이동하는데 걸리는 시간과 비용은 큰 부담이다. 한국으로 들어올 때 정확한 수요 예측과, 받은 부품을 보관할 수 있는 커다란 창고가 필요한 이유"라며 "오전에 발주하면 오후 5시이내에는 배송이 완료된다. 배송 거리로 따지면 1년에 지구 50바퀴 정도, 200만km정도 된다. 부품 가동률은 95%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부품 센터 내부를 둘러보면서 가장 눈에 띈 것은 '안전'과 '화재 예방'에 많은 금액이 투입됐다는 점이다. 안성 부품센터의 잘 갖춰진 배송 체계는 이 부품센터가 멈춰서면 전국 BMW 부품망에 큰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보관 또는 배송 중 위험물로 분류될 수 있는 부동액 등의 부품들은 야외에 독립적으로 떨어진 보관실에서 관리되고, 부품을 쌓아두는 랙에는 층마다 스프링클러가 달렸다. 하나로 뻥 뚫린 창고같지만, 화재 시 공간마다 분리해서 내릴 수 있는 셔터도 준비됐다. 불이 났을 때 부품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다.
내부를 크게 한 바퀴 둘러보고 나니 BMW가 증축에 나서는 건 공간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공간이 부족할 정도로 부품이 꽉꽉 들어찬 모양새가 아니라, 오히려 어딘가 비었다고 느껴질 정도로 남은 공간이 넉넉했다. 이 넓은 공간에 들어찬 부품들의 유사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선 공간을 분리할 필요성이 커진 것이다.
특히 전기차 부품의 경우가 그렇다. 고전압 배터리 등 화재시 창고 전체를 태울 정도로 피해 규모를 키우는 전기차 부품은 이번 증축을 통해 별도로 전용 건물이 세워진다. 또 클래식카 등 부품 수급이 어려운 모델들의 부품도 증축된 창고에 채워질 예정이다.
전기차 캐즘이 채 지나지 않은 시기에 탄탄하게 갖춰진 전기차 부품들은 향후 전기차 시대가 열렸을 때 BMW의 판매 및 정비에 큰 도움이 돼 줄 예정이다. 또 전기차 화재, 리콜 등의 변수에서도 충분한 부품을 확보한 만큼 빠른 대응이 가능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 본부장은 "안전을 담보하는 것이 정비서비스이고, 정비 서비스를 담보하는 것이 빠른 부품 공급과 수급"이라며 "미래는 항상 변하기 때문에,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에 관심을 갖고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