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차 잘 팔리는 한국 공략'…르노, 스포츠카 '알핀' 2026년 론칭
입력 2024.10.16 15:00
수정 2024.10.16 15:48
필립 크리프 알핀 CEO, 2024 파리모터쇼 현장서 밝혀
포르쉐에 필적하는 스포츠카 브랜드…고급차 선호하는 한국 시장 정조준
르노그룹 산하의 고성능 스포츠카 브랜드 ‘알핀(Alpine)’이 2026년 한국 시장에 상륙한다. 올해 ‘맛보기’ 정도로 기존 내연기관 스포츠카를 소량 한정 판매한 뒤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프리미엄 이미지를 각인시킨 이후 2년 뒤 신형 전기차 라인업을 갖춰 정식으로 론칭한다는 방침이다.
필립 크리프(Philippe Krief) 알핀 브랜드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4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024 파리 모터쇼’ 알핀 부스에서 인터뷰를 갖고 “2026년 알핀 브랜드를 한국에 론칭할 계획”이라며 “우선 올해 말 A110 20대 정도 한정 판매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알핀은 7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프랑스의 스포츠카 브랜드로, 당초 르노의 부품을 사용해 스포츠카와 경주용 자동차를 제작하는 독립 브랜드였으나, 1973년에 르노에 인수됐다. 국내에는 생소하지만 국제 모터스포츠 분야에서 명성이 높다.
새 모델을 출시하지 않은 채 1995년 기존 모델들을 모두 단종하며 명맥이 끊기는 듯 했으나, 2016년 A110 출시로 부활을 알렸다.
현 시점에서 알핀의 유일한 양산 내연기관 모델인 A110은 국내 시장에 이미 상륙했다. 크리프 CEO가 언급한 대로 20대 가량이 공급돼 시승·구매 플랫폼앱 ‘라이드나우’를 운영하는 ‘라이드’에서 사전계약을 받고 있다. 애프터서비스는 르노코리아가 담당한다.
알핀 A110은 고배기량 엔진에 무지막지한 파워를 내는 ‘슈퍼카’는 아니다. 르노의 양산 엔진을 튜닝해 성능을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가볍고, 경쾌하며, 운전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콘셉트의 스포츠카를 만들어 온 알핀의 태생적 특성답게 직렬 4기통 1.8ℓ 가솔린 터보 엔진과 7단 듀얼클러치 변속기로 파워트레인을 구성했다.
레이싱 만화 이니셜D에 등장하는 일본의 경량 스포츠카와 비슷한 콘셉트로 볼 수 있다. 크리프 CEO는 “프랑스 알프스 산맥의 구불구불한 좁은 도로를 운전하는 공도 레이싱을 계기로 알핀 브랜드가 탄생했다”고 설명했다. 이니셜D의 배경과 일치하는 부분이다.
르노의 고성능차 메간 RS와 같은 엔진을 사용하지만 최고출력은 A110이 조금 더 높다. 메간 RS는 292마력, A110은 300마력을 낸다. 가속성능(0→100kmh) 역시 A110이 4.2초로 메간 RS(5.7초)보다 우위에 있다.
르노코리아의 마지막 세단 SM6 TCe 300 모델도 이들과 같은 계열의 엔진을 사용했었다. 다만 세단에 적합한 엔진 세팅으로 최고출력은 225마력에 불과했다.
엔진 배기량을 제외하면 A110은 슈퍼카로 불릴 만한 모든 조건을 갖췄다. 엔진을 좌석 뒤에 배치해 무게 배분을 최적화했고, 차체 96%를 알루미늄으로 만드는 등 극단적인 경량화로 공차중량 1200kg 수준의 날렵한 몸집을 지녔다.
가격 역시 슈퍼카 브랜드에 필적한다. A110의 국내 판매가는 트림 및 색상에 따라 1억3000만원에서 1억4850만원으로, 포르쉐 카이맨 GTS(1억3050만원)와 비슷한 수준이다.
알핀이 2026년 국내 시장에 정식 론칭할 때는 A110과 같은 내연기관차가 아닌 전기차 라인업을 선보일 예정이다. 알핀 브랜드 자체가 급진적인 전동화 전환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크리프 CEO는 “앞으로 알핀은 7대의 신차를 내놓을 예정인데, 7대가 전부 전기차”라며 “그 중 3종은 현재 양산 단계”라고 밝혔다. 그는 또 “2026년에는 100% 전동화가 될 것으로 보면 되고, A110도 (전기차로) 새롭게 탄생할 것”이라고 했다.
알핀 브랜드의 국내 론칭 첫 모델은 이번 파리모터쇼에서 선보인 전기 스포츠 패스트백 콘셉트카 ‘A390_β(베타)’의 양산 모델 ‘A390’이 될 것으로 보인다. 크리프 CEO는 “A390이 양산되면 유럽뿐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에 출시하고 이후 미국에도 출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A390은 2025년 출시 예정으로, 올해 판매를 시작한 핫 해치 모델 A290과 함께 알핀의 순수 전기차 라인 ‘드림 개러지(Dream Garage)’에 합류한다.
알핀은 전동화 전환과 함께 스포츠카 브랜드의 틀에서 벗어나 SUV나 해치백 등 패밀리카로 영역을 확장한다는 방침이다. 국내 출시 라인업에도 패밀리카가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크리프 CEO는 “기존 A110이 스포츠에 중점을 뒀다면, 앞으로는 패밀리카도 만들 것”이라며 “출시 예정인 7종의 전기차에는 패밀리카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르노그룹의 알핀 국내 론칭은 브랜드 가치와 상품성만 뒷받침된다면 높은 가격에도 쉽게 지갑을 여는 국내 소비자 성향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수입차 시장은 럭셔리 브랜드가 오히려 대중차 브랜드보다 판매량이 월등히 높은 구조다.
프리미엄 브랜드의 대명사 메르세데스-벤츠와 BMW는 연간 7만~8만대씩 팔리고 슈퍼카 브랜드 포르쉐도 지난해 국내에서 1만대 이상이 팔렸다. 초고가 브랜드인 벤틀리도 지난해 800대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한, 세계적인 고급차 선호 시장이다.
대중차 브랜드 르노의 무난한 차종을 들여오는 것 보다 고성능, 프리미엄 지향의 알핀 브랜드를 별도로 론칭하는 게 한국 시장에서 승산이 높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크리프 CEO는 “알핀의 위치는 포르쉐와 아우디 스포츠라인의 중간 정도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브랜드 포지션이 포르쉐에는 다소 못 미치지만 아우디 RS 라인업보다는 우위에 있다는 의미다. 앞으로 출시하는 전기차 모델들도 '억'대 가격표를 달고 나올 여지가 크다.
이를 감안하면 알핀 브랜드 론칭 이후 르노코리아에 판매를 맡기지 않고 별도의 판매망을 구축할 가능성이 높다. 크리프 CEO는 “알핀의 한국 판매를 위한 별도 법인을 설립할지 여부는 아직 이르다”고 말했다. 다만 인터뷰에 배석한 상희정 르노코리아 커뮤니케이션 본부장은 “르노그룹의 기존 전세계 딜러망을 보면 70~80%는 알핀 단독 딜러를 운영하고 있고, (르노와 알핀이) 협업하는 딜러가 20~30%”라고 말했다.
르노는 국내 시장에서 기존 르노삼성자동차 시절의 완성차 기업 이미지를 벗고 ‘프랑스 정통 브랜드’임을 강조하는 마케팅에 주력하고 있다. 그럼에도 르노코리아가 판매하는 자동차가 수입차 프리미엄을 인정받는 데는 어려움을 겪는 모습이다. 이런 상황에서 슈퍼카 브랜드에 준하는 알핀이 르노코리아를 통해 판매된다면 소비자들에게 높은 가격이 수용되긴 힘들다.
다만, 알핀 브랜드가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해 수요가 많아질 경우 생산은 르노코리아 부산공장에 맡길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와 관련 크리프 CEO는 “부산공장에서 (알핀 차량을) 생산할지 여부에 대해서는 내년에 답변드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한편, 크리프 CEO는 오는 11월 방한 계획을 밝혔다. 한국 소비자들 앞에 직접 나서 기존 판매 중인 A110의 경쟁력을 어필하는 한편, 2026년 알핀 브랜드 정식 론칭과 관련한 상세한 계획을 공개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