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먹거리며 "사퇴한다"는 이임생 이사, 마지막 남긴 말에 '여야 한숨'
입력 2024.09.25 10:15
수정 2024.09.25 10:46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 선임 작업을 주도했던 이임생 대한축구협회 기술총괄이사가 국회 현안 질의 도중 돌연 사퇴 의사를 밝혔다.
이 기술이사는 24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현안 질의에 증인으로 출석해 “홍 감독 선임 전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 5명에게 모두 동의를 받았다. 이것은 거짓 없는 사실”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내 명예가 달린 일”이라며 “내가 사퇴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5월 축구협회 행정의 핵심인 기술 분야의 총책임자 역할을 한 지 약 4개월 만에 나온 사퇴 발언이다.
사퇴 발언의 발단은 이렇다.
이 기술이사는 정해성 전 전력강화위원장이 홍명보, 거스 포예트, 다비드 바그너 3명의 최종 후보를 추린 뒤 급작스럽게 물러나자 그 대신 감독 선임 작업을 이끌었다. 유럽으로 날아가 7월 3일 스페인·독일에서 외국인 후보들에 대한 면접을 진행한 데 이어 한국으로 돌아와 같은 달 5일 홍 감독을 만났다. 이 기술이사는 홍 감독을 만나기 전 전력강화위원 5명에게 동의를 구했다고 기자회견 등을 통해 설명해왔다.
이에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현안 질의에서 이 기술이사와 한 전력강화위원이 나눈 카카오톡 대화 캡처본을 자료 제시했다. 대화는 축구협회가 홍 감독을 대표팀 사령탑으로 낙점한 이튿날인 7월 8일 오후 오갔다.
공개된 대화를 보면 이 기술이사는 “XX기자에게 내가 최종 결정하겠다고 전화 드리고 동의 받은 부분만 컨펌(확인)해 주면 됩니다”라고 전력강화위원 A씨에게 9시 38~39분에 걸쳐 메시지를 보냈다. 6분 뒤 A씨는 “저는 제외하고 진행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답했다.
이런 대화는 홍 감독과 면담 전 전력강화위원 5명으로부터 ‘최종 결정에 대한 위임’을 받았다는 이 기술이사의 주장과 배치되는 대목이다.
감독 선임 과정에서 이 기술이사가 전력강화위원들을 회유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 배경도 드러났다. 민 의원이 “5명에게 모두 동의 받았느냐”고 묻자 머뭇거리던 이 기술위원은 명료한 답변 대신 “유선상으로요?”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민 의원은 “(동의 받았다면서) 왜 저렇게 동의해 달라고 하나? 이분(A씨)은 내가 물어봤더니 당신에게(이) 동의를 구한 적이 없다더라”며 “왜 그렇게 회유하려고 했나”라고 지적했다.
그러자 이 기술이사는 자신이 각 위원에게 위임을 분명히 받았다고 밝혔다. A씨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는 회유가 아니라 자신에게 위임한 것을 기자에게 확인해주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참고인으로 참석한 박주호 전 전력강화위원은 “(이 기술이사와) 전화 통화를 1분가량 한 것으로 기억한다. 동의를 구하는 이야기는 나눴지만 제가 느끼기에는 통보에 가까웠다”고 답했다.
문체위 의원들의 질타가 계속되자 이 기술이사는 사퇴를 갑작스럽게 발표했다.
이 기술이사는 “내가 사퇴하겠다”라며 “내 명예가 걸린 일이라 꼭 말씀드리겠다. 내가 (감독을)결정하게끔 부탁을 드려서 동의를 다섯 분으로부터 다 받았다”고 밝혔다. 또 “박주호 위원은 1분이라고 했지만 내가 2분 44초를 통화했다. 내가 사퇴하겠다. 하지만 내가 통화를 안 하고 동의를 안 받은 것은 절대 동의 못 하겠다”라고 잘라 말하면서 울먹거리거나 손을 가슴에 얹기도 했다.
이 기술이사는 선임 발표 기자회견에서 이해하지 못할 말을 내놓으면서 여론 악화를 초래했다. 대한축구협회가 국회까지 불려온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 인물 중 하나다.
감독으로서 프로축구 수원 삼성을 이끌던 2020년 7월에도 팬, 구단과의 마찰로 지휘봉을 내려놓았던 이 기술이사는 문체위 위원들의 절차적 정당성 추궁 속에 축구 행정가로서도 불명예스럽게 협회를 떠날 수도 있는 위기에 몰렸다.
이 기술이사는 24일 현안 질의 도중 ‘하고 싶은 말이 더 있냐’는 전재수 위원장 말에 “대표 선수들이 한국에 와서 잔디 상태가 정말 뛰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위원님들이 한국 축구를 위해 우리 선수들에게 좋은 잔디에서 좋은 경기를 보여줄 수 있도록 도와주셨으면 한다”고 말해 여야 의원들의 실소를 자아냈다.
손흥민도 우회적으로 지적했던 잔디는 분명 축구대표팀 앞에 놓인 문제이긴 하지만, 현안 질의와는 관련 없는 내용이었다.
전재수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은 "(그 문제에 대해) 진짜 도움을 줘야 할 사람들은 앉아 있는 분들이다. 대한축구협회가 책임을 지고 진심 어린 반성을 하는 게 필요하다. 마지막 발언 기회를 줬는데 책임을 돌리고 회피하는 듯한 발언은 굉장히 실망스러웠다"고 강하게 질책했고, 축구팬들은 협회 행정 수뇌부의 무능을 새삼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