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기 드라마 ‘판타지’에 빠져들다
입력 2009.01.07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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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불황기를 맞이하고 있는 안방극장에서 ‘복고풍 드라마’들이 잇달아 등장하고 있다.
최근 드라마 시장의 면면을 보고 있노라면 소재와 기획 면에서 시계를 10년 전쯤 뒤로 돌린 느낌이다.
MBC <에덴의 동쪽>은 8~90년대 <사랑과 야망>, <모래시계>의 향수를 연상시키는 ‘복고풍 서사극’ 돌풍을 재현, 연일 최고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현대사를 배경으로 멜로, 액션, 복수, 치정극, 기업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한 작품 안에 포괄하고 있는 대형 서사극은 2000년대 들어 미니시리즈 열풍에 가려 다소 주춤했지만 <에덴의 동쪽>으로 다시 중흥기를 맞이하고 있다.
최근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화제를 모으고 있는 드라마 <아내의 유혹>(왼쪽)과 <너는 내 운명> <에덴의 동쪽>.
최근 몇 년간 하향세를 겪었던 ‘트렌디 드라마’들도 잇달아 새롭게 선보이고 있다.
한류스타 최지우를 내세운 SBS <스타의 연인>, 와인을 소재로 한 SBS <떼루아>, 동명의 해외 인기 만화와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KBS <꽃보다 남자> 등은 모두 전형적인 트렌디 드라마의 구성을 따르고 있는 작품들.
이 작품들은 대개 인지도 높은 한류스타 혹은 젊은 신인스타들을 앞세워 10~20대 취향의 멜로와 신데렐라 스토리를 결합했으며, 해외시장까지 염두에 둔 기획 상품형 드라마에 가깝다. 실험적인 시도보다는 스타파워나 독특한 소재, 삼각관계 등 기존 트렌디 드라마의 전형적인 공식을 답습하는 이야기라는 것도 닮은꼴이다.
그런가하면 일일극이나 주말극으로 대표되는 홈드라마는 요즘 ‘막장 드라마’라는 별명에서 보듯, 점점 자극적인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KBS <너는 내 운명>, SBS <아내의 유혹> 등은 전통적인 가족제도의 미덕이나 일상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하던 홈드라마와는 차이가 있다. 불륜, 복수, 고부갈등, 치정관계, 출생의 비밀 등 자극적인 소재와 설정 등이 난무하며 갈등을 통해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으려는 드라마 등이 득세하고 있다.
사극은 최근 몇 년간 점점 ‘정통’에서 퓨전으로 진화하고 있는 분위기다. 지난해 방송된 SBS <바람의 화원>을 비롯해 KBS <바람의 나라>, <천추태후> 같은 작품들은 철저한 시대적 고증이나 역사의 재현보다는 현대적인 시각으로 시대와 인물을 재구성하는 ‘퓨전사극’이 주류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작품들의 공통점은, 불황기를 맞이한 최근의 드라마 시장이 일상의 디테일한 재현에서 벗어나 점차 ‘판타지’로 흐르고 있는 경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최근의 드라마들은 고단하고 팍팍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기보다는 화려한 신데렐라 스토리나 진취적인 영웅 사극, 혹은 자극적인 갈등을 통한 권신징악 스토리 등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현실에서 맛볼 수 없는 대리만족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데 비중을 두고 있다.
서민적인 홈드라마나 전문직 드라마 열풍이 최근 주춤하고, 실험적인 구성보다는 이해하기 쉽고 단순명료한 스토리, 자극적이면서도 확실한 볼거리, 스타파워와 흥행공식에 의존하는 ‘공산품 드라마’들이 대거 늘어난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것은 최근의 드라마들이 서민들의 일상적 이야기나 시대적 고민을 외면하고, 지나치게 현실 도피적으로 흐르는 경향을 우려하게 한다.
단막극의 멸종과 제작비 상승 등으로 인해 드라마의 다양성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기존 드라마들이 점점 안전한 스타나 장르 위주로 흐르다보면, 한국 드라마의 질적 완성도는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
TV 드라마를 켤 때마다 보통 사람들의 삶과는 전혀 거리가 먼 상류층의 사랑 놀음이나 판타지의 세계 속에서만 존재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며, 드라마가 우리 시대의 정서와 문화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상업적으로만 흐르는 풍토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데일리안 = 이준목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