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 돈 날려야 수익 난다"는 거래소 못 막는 이용자 보호법[기자수첩-산업IT]
입력 2024.09.25 07:00
수정 2024.09.25 09:30
커뮤니티서 "B모 거래소 주 수익원은 투자자 청산금" 폭로
B모 거래소 등, 국내 당국에 등록도 안 한 채 사실상 불법영업
허점투성이 현행법 개선 안 하면 비슷한 사례 계속 나올 것
국내 투자자들에게 B모 해외 가상자산 거래소는 '악질'로 알려져 있다. 투자자 커뮤니티를 돌아보면 이 거래소 괴담이 끝없이 나온다. 얼마 전엔 우리 돈 300억원대 해킹 사건까지 터졌지만 피해자 규모는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B모 거래소의 주요 수법은 SNS를 활용한 마케팅으로, 언론에 보도되는 사기업체들의 그것과 똑 닮았다. 수천만원대 수입 시계를 차고 수억원대 수입차를 모는 사진을 올린다. 자기 부를 과시하면서 거래소 홍보도 같이한다.
가상자산 투자자들을 겨냥한 마케팅도 있다. BJ OO, OO TV 하는 소위 '인플루언서'를 활용한 식이다. 먹는 방송, 게임 방송, 대리 심부름 등 온갖 가십성 이슈들을 다루던 채널들이 어느 날 갑자기 코인 선물 투자를 한다며 B모 거래소와 유사한 곳들을 홍보한다. 가진 돈은 100만원인데 그 돈으로 5000만원치 투자를 해 몇 분, 몇 초 만에 수익이 나는 걸 보여준다. 노련한 투자자들은 "저런 건 거래소에서 뒷돈(가짜 돈)을 입금해 준다"고 한다. 이런 판이다.
최근 B모 거래소가 다시 주목받은 이유도 있다. 해당 거래소 내부자가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한 텔레그램 채널에서 "B모 거래소의 사업 모델은 이용자들의 청산금에서 나온다"는 폭로가 나온 것이다. 청산금이란 가상자산 선물 거래에서 가격이 베팅한 방향의 반대로 움직여 투자자가 날린 돈을 의미한다. 가상자산 거래소는 10배에서 심한 경우 125배 레버리지까지 제공한다. 100배 레버리지를 활용한 포지션을 가진 경우, 자신이 베팅한 반대 방향으로 1% 움직이면 가진 돈을 모두 날릴 수 있다. 극도로 위험한 투자 방법이다. 이런 고레버리지 활용 투자방법은 수십억원대 연봉을 받는 전문 트레이더들도 꺼리는 방식이다. 폭로가 사실이라면 B모 거래소는 여러 자극적인 방법으로 투자자들을 끌어들여 높은 레버리지를 쓰도록 자극한 뒤 청산시키는 게 주요 돈벌이 방법이라는 얘기가 된다.
이용자를 보호하겠다며 시행하고 있는 국내법은 저런 모객 행위와 청산을 막지 못한다. 지난 7월부터 시행 중인 '가상자산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은 사실상 국내에 등록된 가상자산사업자(VASP)만을 대상으로 한다. 국내 투자자들의 거래 활동이 대부분인 것으로 알려진 B모 거래소의 경우 당국 규제 범위에서 벗어난 셈이다.
국내 당국인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은 한국인 대상 영업 기준을 ▲한국어 서비스 지원 여부 ▲국내 투자자 대상 마케팅·홍보 여부 ▲원화 거래 지원 여부 등으로 제시한 바 있다. 몇몇 해외 거래소들은 국내 등록도 하지 않은 채 내국인 대상 마케팅을 하지만 실제 적발, 처벌 사례는 몇 안 된다. FIU는 2022년 8월 미신고 가상자산사업자 16곳을 불법 영업 행위 등을 이유로 수사기관에 처벌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2년이 넘게 지난 현재까지도 불법행위는 현재진행형이다. 수사 진척 여부도 알려지지 않았다.
당국은 허점투성이인 이용자 보호법을 개선하고 비슷한 사례가 더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감독 절차를 강화해야 한다. 사실상 등록 업체만을 대상으로 하는 현행법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실제 더 큰 사기 행위가 나타나는 곳은 아예 감독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B모 거래소와 같은 곳에 돈을 입금한 투자자들은 자극적인 홍보 문구와 수익 가능성에 눈이 먼 상태였을 것이다. 나중에 돈을 다 날리고 난 뒤 듣는 소리는 "그러니까 그런 델 왜 썼어" 정도일 수밖에 없다. 가상자산 이용자(투자자) 보호가 전혀 되지 않고 있는 법을 뜯어고치지 않는다면 해외 사기 업체들의 국내 투자자 '호구' 취급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