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웅 스타디움 공연 이정표 된 이유
입력 2024.09.21 06:06
수정 2024.09.21 06:06
최근 서울시가 스타디움 공연 역사상 의미 있는 결정을 내렸다. 바로 내년부터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콘서트 등 문화행사를 할 경우에 그라운드석 판매를 제외하고 대관하겠다는 발표를 한 것이다.
이게 의미 있는 결단인 이유는 요즘 들어 서울 월드컵경기장 잔디 훼손 논란이 격화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열린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K팝 슈퍼 라이브 콘서트' 때부터 축구팬들이 잔디 문제를 제기해왔다. 이런 공연을 할 때마다 월드컵경기장 잔디가 훼손돼 선수들이 제대로 경기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서울월드컵경기장이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홈구장이라서 더 논란이 커졌다. 국가대표팀이 졸전을 벌이면 국민적 분노가 터지는데 그럴 때마다 잔디 문제가 제기됐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최정상급 팀이어서 기술적으로 상대를 압도하는데, 그런 한국의 기량 발휘를 투박한 잔디가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반면에 상대 아시아팀은 보통 밀집수비로 한국 공격을 막는데 이런 상황에선 안 좋은 잔디 상태가 상대팀을 돕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래서 축구팬들이 월드컵경기장 공연에 분통을 터뜨려왔다. 그 바람에 서울 월드컵경기장은 공연 대관을 거의 하지 않았다. 하지만 서울에 대형 공연장이 없는데 그나마 대형 공연을 소화하던 잠실올림픽주경기장이 수리에 들어가자 어쩔 수 없이 올해 서울월드컵경기장은 다시 공연 대관에 나섰다. 그러자 축구팬들의 분노가 치솟았다.
이런 가운데 이달 5일 월드컵 예선 경기 이후 대표팀 주장인 손흥민이 직접 서울 월드컵경기장 잔디 상태에 아쉬움을 표명했다. 10일 경기 이후 손흥민은 잔디 문제를 또 거론했다. 서울 월드컵경기장보다 오만의 경기장 잔디 상태가 더 좋다는 내용이었다. 그러자 안 그래도 부글부글 끓던 넷심이 폭발하고 말았다. 그 전에 진행된 아이돌 공연 때문에 잔디가 망가졌다며, 앞으로 예정된 아이유 공연을 취소하라는 민원까지 제기됐다. 아이유 팬들은 반발했다.
이런 분위기면 앞으로 서울 월드컵경기장 공연 대관이 매우 어려워질 수 있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했듯이 잠실올림픽주경기장이 수리에 들어가면서 지금 서울에 스타디움 공연장이 없는 상황이다. 이럴 때 서울월드컵경기장마저 문을 닫는다면 케이팝 공연사정이 너무 어려워진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서울시가 그라운드석 판매 제한이라는 절충안을 내 숨통을 틔운 것이다. 이런 방식이라면 앞으로 부담 없이 공연 대관이 이루어져 초대형 공연이 활성화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자 지난 5월에 진행된 임영웅의 서울 월드컵경기장 공연이 다시 주목 받았다. 최근 그렇게 잔디 논란이 거세게 일어났는데도 임영웅 공연에 대해선 아무도 비난하지 않았었다. 왜냐하면 당시 임영웅이 그리운드석을 완전히 비웠기 때문이다.
임영웅은 지난해에 시축과 축하공연을 하면서도 잔디보호를 위해 공연단 전원에게 축구화를 신게 해 찬사를 받았었다. 올 5월 공연 땐 무려 수십억 원의 손해를 무릅쓰고 그라운드석 판매를 포기했다. 뿐만 아니라 고가의 잔디 보호재로 잔디를 덮었는데, 심지어 그런 공사를 실시간으로 했다. 미리 덮어두면 잔디가 상할까봐 공연 당일 관객 입장시에 실시간으로 잔디 보호 시공과 중앙 무대 설치작업을 했다. 1회 공연이 끝난 후엔 바로 그라운드 위의 모든 시설을 철거했고, 2회 공연 직전에 다시 실시간 시공했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이렇게 한 적이 없었다. 아예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다. 스타디움 공연할 때 그라운드석에 관객을 받고, 무대설치를 미리 해놓고 공연기간 내내 보존하는 건 상식 중의 상식이다. 임영웅의 상상을 초월한 결정에 모두가 경악했다. 그러면서 ‘아 이런 방식도 있구나’ 하는 깨달음도 얻었다.
바로 그런 선례가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 서울시가 그라운드석 판매 제한이라는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건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임영웅 선례가 아니었다면 이런 결단이 나오기 힘들다. 이번 결단 덕분에 앞으로 서울 월드컵경기장 대관이 수월해져 다른 가수들도 혜택을 받을 것이다.
임영웅이 한국 스타디움 공연의 새 역사를 만든 것이다. 이제 임영웅식 공연장 설치가 월드컵경기장 공연의 전범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 현실에서 임영웅의 아이디어가 최선인 건 맞는데, 애초에 이런 답답한 상황이 아니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명색이 경제대국이며 문화대국이라는 한국의 수도에서 변변한 대형 공연장이 없어 월드컵경기장 하나 놓고 축구팬과 가수팬들이 대립하고, 스타디움 공연의 핵심인 그라운드 좌석을 텅 비워야 한다는 게 황당하다.
대형 공연장 정도는 기본 인프라로 당연히 설치가 되었어야 한다. 잠실 주경기장이 수리에 들어갈 때 이런 사태가 충분히 예견됐기 때문에, 월드컵경기장과의 조율을 마친 후에 수리를 시작했어야 한다. 서울 월드컵경기장의 잔디를 공연장과 경기장을 겸하는 형태로 바꿨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외국은 경기장에서 초대형 공연을 잘만 여는데 왜 한국에서만 잔디 문제가 터지는 것인가?
해외 경기장 사례를 참고해서 서울 월드컵경기장 잔디 시스템을 바꿔나가야 한다. 더 근본적으로는 대형 공연장을 새로 지어야 한다. 일본은 도쿄 권역에만 스타디움 4곳에 아레나급 공연장 14개가 있다. 대형돔도 당연히 있다. 필리핀에도 대형돔이 있다. 한국 서울은 사정이 너무 열악해 케이팝 가수들이 공연을 못하거나 또는 몸을 혹사시킨다. 3번만 해도 될 공연을 작은 데서 여러 번 하는 것이다. 임영웅도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6회 공연했고 올 연말엔 고척돔에서 6회 공연한다. 슈퍼스타가 공연할 만한 곳이 없으니 이렇게 몸을 갈아 넣게 된다.
우리는 항상 국가 차원에서 케이팝을 내세운다. 그러면 공연 인프라도 국가 차원에서 시급히 확충해야 한다.
글/ 하재근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