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한 국민 70% "노태우 300억은 불법비자금"…이혼소송 2심 판결과 간극 커
입력 2024.09.12 07:01
수정 2024.09.12 09:40
노소영 이혼에 꺼낸 노태우 비자금…국민 67% "회수해야"
불법 비자금 딸에게 주는 것이 정의인가…엄중처벌 요구도 42.8%
여론과 동떨어진 법잣대…대법원서 국민 눈높이 간격 메우길
우리 국민 10명 중 7명은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 과정에서 새롭게 드러난 김옥숙 여사의 메모에 적힌 돈을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불법 비자금'으로 추정했다. 이에 이를 국고로 환수해야 한다는 의견도 67.4% 달했다. 노 전 대통령의 '불법 비자금'일 수 있는 돈을 그의 딸인 노 관장의 '기여'로 인정한 법원의 잣대와 국민의 법감정이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확인된 셈이다.
12일 데일리안이 여론조사 공정에 의뢰해 지난 10일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김옥숙 여사의 메모를 통해 새롭게 밝혀진 904억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70.2%가 "불법 비자금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이 돈의 처리 방식에 대해서는 "엄중 처벌하고 회수해야 한다"가 가장 높은 37.4%를 차지했고 30.0%는 "처벌과 관계없이 회수해야 한다"고 답했다. 국민의 67%이상이 환수하는 것이 필요히다고 본 것으로,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국민 여론 '싸늘'… 67% "노태우 300억 회수해야", 42% "엄중처벌해야"
특히 메모에 등장한 돈의 실제 주인은 누구인지를 묻는 질문엔 노태우 30.1%, 기타 다른 사람 14.4%, 김옥숙 13.5%, 노소영 13.3%, 노재헌 3.5% 순으로 나타났다. 이는 아직 추징되지 않은 노 전 대통령의 불법 비자금이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가족들과 관련자들에 의해 은닉 관리되고 있다고 보는 인식이 정치적 성향과 관계없이 국민 사이에 번지고 있음을 방증한다.
여론조사 공정 관계자는 "김옥숙 여사가 공개한 메모의 돈은 불법 비자금일 가능성이 크다가 압도적으로 70.2%로 나타났으며 아닐 가능성으로 보는 응답은 16.4%에 불과했다"며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라는 판결이 있었다는 점과 소액이 아닌 거액의 돈이라는 점, 알려진 경제활동으로 그만한 돈을 벌기 어렵다는 점이 복합적으로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앞서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 소송 항소심 재판부는 지난 5월 말 노소영이 제기한 300억의 선경 경영자금 유입에 대해 인정하고 1조 3808억원의 재산을 분할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 비자금의 존재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됐다. 노 전 대통령이 뇌물죄로 징역 17년을 받은 사실을 감안하면 그 비자금 역시 '검은돈'이었을 가능성이 작지 않은데, 그 돈을 딸의 '지참금'으로 인정해 이혼 시 재산을 분할해 주는 것이 맞냐는 지적이다. '불법 비자금을 개인재산으로 인정해 주는 것은 헌법 정신에 위배된다"는 주장이다.
여론과 동떨어진 이혼소송 2심 판결…대법원서 국민 눈높이 간격 메우길
법조계 관계자는 "여전히 국민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에 대해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으며 은닉 재산에 대해선 반드시 회수하고 처벌해야 할 대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며 "여론의 눈으로 볼 땐 항소심 재판부가 부정한 재산을 분할 대상으로 인정한 것 자체가 상식적이지 않은 판결"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과 이로 인한 노 관장의 재산 기여도 등 전례 없는 쟁점이 포함된 만큼 이번 이혼 소송을 심리 중인 대법원의 고민도 깊어지게 됐다"고 덧붙였다.
특히 국민 여론이 이번 조사로 명확하게 제시됨에 따라 정치권 및 사정권에서 추진하고 있는 '노태우 비자금 몰수법'(범죄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도 힘이 실리게 됐다.
최근 정치권에선 김옥숙 여사의 메모에 등장한 '돈'에 대한 재조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은 상황이다. "쿠데타로 헌정질서를 파괴한 전직 대통령이 추징금 납부를 거부하고 그 가족들은 엄청난 부를 누리는 현실에서 법 감정상 이를 용납할 수 없다"는 게 그 이유다.
실제 더불어민주당 장경태 의원은 헌정질서를 파괴한 범죄자가 얻은 범죄수익에 대해선 당사자가 사망해 공소 제기가 불가능한 경우에도 이를 몰수·추징할 수 있게 하는 이른바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몰수법'(범죄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장 의원은 개정안을 제안하는 이유로 "최근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자녀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이혼 소송 과정 중 재산분할을 요구하며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의 존재를 밝힌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어떠한 조사나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정치권만이 아니다. 과세 당국은 노 전 대통령 비자금을 '상속 자산'으로 보고 증여세가 아닌 상속세를 물리는 쪽으로 검토하고 있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수천억원에 이르는 상속세 부과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성재 법무부장관 역시 지난 5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 일가의 은닉 재산 의혹과 관련해 "세금포탈이 확인되면 형사적으로 처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