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대출 규제 '실수요자 예외' 확산…'갈지자' 당국 주문에 '오락가락'(종합)
입력 2024.09.10 16:35
수정 2024.09.10 16:35
주담대 차단 확산에 불안 커지자
예비 부부 등 제한 대상서 빼기로
혼란 키운 금융위·금감원 메시지
은행들이 가계대출 규제 대상에서 예비 부부 등 실수요자를 제외하는 내용의 예외 규정을 잇따라 발표하고 나섰다. 가계대출을 옥죄야 한다는 금융당국의 압박에 대출 문턱을 크게 높였다가, 실수요자가 불편을 겪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재차 주문에 부랴부랴 대응책을 내놓은 것이다. 금융당국의 갈지자 메시지에 시장이 오락가락하면서 혼란만 커진 모습이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날 국민은행은 실수요자의 혼선을 방지하고 원활한 자금 계획 수립을 돕기 위해 기존에 시행 중인 가계대출 제한 예외 조건을 다시 안내했다. 국민은행은 전날부터 1주택자 세대의 서울·수도권 내 추가 주택 구입 자금 대출 신규 취급을 제한키로 했다.
우선 서울이나 수도권에 주택 한 채를 갖고 있더라도, 기존 주택을 처분하고 새로운 주택을 구입하는 경우에는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다. 또 대출 실행일 6개월 이내 결혼 예정자가 주택을 구입할 때나, 대출 신청 시점에서 2년 이내 주택을 일부 또는 전부 상속받는 경우에도 주담대를 받을 수 있다.
전세보증금 반환 목적 생활안정자금대출 한도에도 예외가 허용된다. 임차인에게 전세보증금 반환하는 목적인 주담대 생활안정자금은 연간 1억원 한도를 초과해 취급이 가능하다. 지난 3일부터 시행된 임대인의 소유권 이전 등 조건부 전세자금대출은 올해 10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제한할 예정이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가계대출 전문가로 구성된 실수요자 심사 전담반을 운영, 판단 기준을 지속 업데이트해 불편함이 없도록 지원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신한은행도 같은 날부터 이날부터 주택 신규 구입 목적의 주담대를 무주택 세대에만 허용키로 했다. 기존 1주택자의 주택 처분 조건부 주담대도 취급하지 않는다.
다만 신규 주택 구입 목적 주택담보대출 실행 '당일'에 기존 보유 주택을 매도하는 조건으로 주택 매수 계약을 체결한 경우 대출이 가능하다. 대출자는 보유주택 매도계약서와 구입주택 매수계약서를 제출해야 한다.
아울러 이날부터 원칙적으로 신용대출도 최대 연 소득까지만 내주지만, 본인 결혼이나 직계가족 사망, 자녀 출산 등의 경우 연 소득의 150%(최대 1억원)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지난 3일부터 시행된 생활안정자금 목적의 주택담보대출 한도 1억원 규제에도 임차보증금 반환 목적 생활안정자금 주담대의 경우 1억원을 초과할 수 있도록 예외를 뒀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가계 여신 위험 관리 강화 조치로부터 실수요자를 보호하고 금융소비자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출 취급 예외 요건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우리은행 역시 지난 8일 주담대·전세대출 취급 시 예외 요건을 안내했다. 서울 등 수도권에 주택을 추가로 구입하기 위한 목적의 대출을 전면 중단하는 내용의 가계부채 효율화 방안을 9일부터 시행하기에 앞서 실수요자의 혼선을 최소화하기 위한 목적이다.
결혼 예정자가 수도권에 주택을 구입·임차하려 할 때에는 주담대와 전세대출을 모두 받을 수 있다. 이는 부모 등 세대 구성원이 주택을 소유한 경우에 대한 예외 사항이다. 또 대출 신청 시점으로부터 2년 이내에 주택을 일부 또는 전부 상속 받은 케이스도 주담대와 전세대출이 가능하다.
아울러 유주택자여서 주담대는 받을 수 없게 되지만 전세대출이 가능한 경우는 ▲수도권 지역의 직장으로 취업·이직하거나 발령이 났을 때 ▲자녀가 수도권 지역 학교로 진학·전학할 때 ▲본인 또는 가족이 1년 이상 치료나 요양을 위해 수도권 소재 병원 통원이 필요할 때 ▲60세 이상의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수도권 지역 주택을 임차할 때 ▲이혼 소송 중일 때 ▲분양권 또는 입주권 보유자이면서 그 외 주택을 소유하지 않았을 때 ▲행정기관 수용 등 부득이한 경우로 분양권을 취득했을 때 등이다.
은행들의 가계대출 제한 조치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발언에서 비롯됐다. 이 원장은 지난 달 은행권의 대출 금리 인상을 강도 높게 비판하며 개입을 더 세게 해야 할 것 같다고 발언했다. 가계대출을 억제할 필요가 있다는 금융당국의 요청에 금리를 올려 대응하는 건 적절치 않다는 취지였다.
문제는 이로 인해 은행들이 대출 요건을 강화하자 실수요자들의 불안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불거졌다. 그러자 이 원장은 "최근에는 가계부채 관리 속도가 늦어지더라도 실수요자들에게 부담을 줘선 안 된다"고 기조를 바꿨다.
그럼에도 시장 혼란이 가중되자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지난 6일 예정에 없던 기자단 브리핑을 열고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 기조는 확고하다. 은행이 자율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교통정리에 나섰다.
그리고 이 원장은 10일 은행장들과 만난 자리에서 "감독당국의 가계대출 규제는 기본적으로 준수해야 하는 최소한의 기준"이라며 "은행이 각자의 리스크관리 차원에서 자율적으로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한 발 물러섰다. 아울러 "급증하는 가계대출 관리와 관련 저희가 조금 더 세밀하게 메시지를 내지 못해 국민들께 여러 불편과 어려움을 드려서 송구하다"고 공식 사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