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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 돌아 '구의역 3번 출구' 앞에서 [D:쇼트 시네마(91)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4.09.09 07:10
수정 2024.09.09 07:10

김창민 감독 연출

OTT를 통해 상업영화 뿐 아니라 독립, 단편작들을 과거보다 수월하게 만날 수 있는 무대가 생겼습니다. 그 중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부터 사회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메시지까지 짧고 굵게 존재감을 발휘하는 50분 이하의 영화들을 찾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선희(김예은 분)와 승구(오동민 분)는 부부관계를 완벽하게 정리하러 구의역 3번 출구에서 만나 법원으로 향한다. 조정 기간을 6개월 동안 가졌던 터라 법원에서 크게 에너지를 쏟을 일은 없다. 서류 도장으로 세상에서 가장 가까웠던 사이는 이제 남이 된다.


승구는 이대로 헤어지기 아쉬운지 선희에게 근처 맛있는 집이 있다며 밥을 먹고 가자고 제안한다. 한낮에 시작된 두 사람의 이혼 날 점심 식사는 술이 한 두 잔들 어가면서 길어지기 시작한다. 술에 취해 선희가 넘어져 구두가 망가지자 승구는 발 사이즈에 맞는 운동화를 사 오고, 선희는 운동화를 신겨주는 승구의 셔츠가 더러워져있음을 본다. 버스 시간까지 기다리며 다시 술을 마시는 두 사람. 선희는 요리사인 승구에게 된장찌개 레시피를 부탁한다. 승구가 알려준 대로 된장찌개를 끓어봤지만 도무지 그 맛이 나지 않았다. 승구는 투덜거리면서도 다시 된장찌개 레시피를 적어준다.


지방에 사는 선희는 버스를 예약하는 일을 미루다 결국 좌석이 매진되어 버고 만다. 승구는 자신의 집에 가자고 제안하지만, 이혼한 전 남편 집에 가기는 싫은지 선희는 모텔로 향하고 그 곳에서도 두 사람의 티격태격은 계속된다. 선희는 승구가 잠들자 승구의 셔츠를 빨기 위해 옷을 뒤지다가 버스표를 모두 승구가 구입해 매진돼 있었음을 알게 된다. 선희는 욕실에서 더러워진 셔츠를 빨고, 깬 승구는 다시 잠에 쉽게 들지 못한다.


다음 날 아침, 두 사람은 제 갈 길을 가기 위해 다시 구의역 3번 출구로 향한다. 이혼한 부부의 하루에는 미련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마치 어딘가 정처 없이 떠돌면서도 서로에게서 멀어지지 못하는 미묘한 감정을 품고 있다.


이 영화의 매력은 바로 이런 관계의 모호함을 일상적으로 표현하는 데 있다. 두 사람은 분명 헤어졌지만, 여전히 서로를 배려하고 돌본다. 선희가 버스 좌석을 미리 예약하지 않은 것도, 승구가 모든 버스표를 미리 구입한 것도 그들이 관계의 끝을 제대로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들은 서로에게 지쳤으면서도, 미련이라는 감정에 묶여 완전한 단절을 하지 못하는 전형적인 이별 후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혼이라는 확실한 끝을 앞두고도, 그들의 행동에는 여전히 오래된 정과 익숙함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두 사람은 각자의 길을 가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같은 자리를 맴돌며, 마치 순환하는 2호선처럼 제자리걸음을 반복한다.


'구의역 3번 출구'는 짧은 시간 동안 미련과 익숙함에 갇혀 있는 두 사람의 복잡한 감정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마지막에 두 사람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떠나지만, 관객들은 이들의 인연이 정말로 끝났는지 확신할 수 없다. 선희와 승구는 여전히 서로의 세계 속에 존재하고, 그들의 마음은 쉽게 정리되지 못한 채 남아 있기 때문에 영화 끝난 후의 미래를 상상하게 만든다. 러닝타임 27분.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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