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보사 장기보험 '고공행진'…의심받는 호성적 '속앓이'
입력 2024.09.09 06:00
수정 2024.10.06 17:15
관련 손익 올해 들어 30% 넘게 성장
새 회계 시행 계기로 '부풀리기' 논란
상품 재편 결과일 뿐…'억울' 반응도
국내 대형 손해보험사들의 장기보험 실적이 고공행진을 벌이고 있다. 문제는 새로운 국제회계기준(IFRS17) 시행된 이후 장기보험을 중심으로 실적 부풀리기가 있다는 의심이 일면서 금융당국이 손질을 예고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만 손해보험업계에서는 달라진 제도에 맞춰 상품 포트폴리오를 재편한 결과일 뿐이라며 억울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삼성화재·현대해상·DB손해보험·메리츠화재 등 4개 손보사가 장기보험에서 거둔 손익은 총 3조349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3.8% 늘었다.
손보사별로 보면 삼성화재의 장기보험 손익이 9048억원으로 같은 기간 대비 5.3% 증가하며 최대를 기록했다. 메리츠화재 역시 8688억원으로, DB손보는 8416억원으로 각각 21.0%와 19.8%씩 해당 금액이 늘었다. 현대해상의 장기보험 손익도 7338억원으로 227.6% 급증했다.
이처럼 손보사들이 장기보험의 파이를 확대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역시 수익성이다. 장기보험은 표현 그대로 가입 기간이 비교적 긴 상품으로 질병보험과 상해보험, 운전자보험, 어린이보험 등이 대표적이다.
손보사 입장에서 장기보험은 길게 20년까지 지속적인 수입을 기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아울러 어떻게 상품을 설계하느냐에 따라 보험료 수준이 자동차보험이나 실손의료보험보다 훨씬 높아질 수 있다. 더구나 1년 마다 갱신 기간이 돌아오는 단기보험은 늘 고객 이탈로 인한 수입보험료 감소를 걱정해야 한다.
여기에 더해 지난해부터 본격 가동된 IFRS17은 장기보험을 둘러싼 각축전에 더욱 불을 붙였다. IFRS17이 적용되면서 보험사의 부채 평가 기준은 원가에서 시가로 바뀌었고, 이로인해 보험사의 보험금 부채 부담은 크게 늘었다. 요즘 보험업계가 자본 확충과 더불어 이익 확대에 그 어느 때보다 신경을 쓰고 있는 이유다.
특히 장기보험은 IFRS17과 함께 도입된 수익성 지표인 보험계약마진(CSM) 확보에 유리한 상품이다. CSM은 보험사가 보유한 계약을 통해 미래에 얻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익을 현재 가치로 추산한 값이다. 회계 상 CSM은 부채로 인식했다가 계약 기간이 지날수록 일정 비율을 상각해 보험수익으로 반영하는 구조여서, 장기보험이 미치는 영향이 비교적 크다.
그런데 금융당국은 IFRS17이 시행된 이후 보험사들이 지나치게 자의적인 가정을 적용해 미래에 생길 이익을 끌어 쓰는 행태를 보이는 측면이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CSM을 산정할 때 산정하는 미래 이익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추정해 당장의 이익을 확대 해석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금융당국의 회계제도를 개선하겠다는 방침이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이번 달 열린 보험개혁회의에서 "연말까지 매월 회의를 개최해 판매채널, 회계제도, 상품구조 등의 종합 개선 방안을 검토하겠다"며 "최근 국민의 관심이 높은 실손보험과 IFRS17 쟁점 사항의 경우 가급적 연말 전에 빠르게 개선 방안을 도출·확정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손보업계에서는 반론도 나온다. IFRS17에 대비해 장기간 장기보험 영업에 주력한 성과일 뿐, 회계 상 보이는 실적을 억지로 부풀린 게 아니란 얘기다. 생명·손해보험협회는 지난 6월 보도 참고자료를 통해 "보험사의 재무제표는 독립된 감사인의 엄격한 확인을 거쳐 공개되는 정보로서 인위적인 조작은 어렵다"는 입장을 낸 바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IFRS17은 장기간의 예고를 거쳐 실행된 제도인 만큼, 보험사들로서는 전략적 사전 대응 방안을 수립할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며 "상품 영업도 이에 맞춰 구조 개선을 해 온 것인데, 단지 회계가 바뀌고 나니 실적이 크게 불어났다는 이유로 의심을 받는 건 다소 억울한 측면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